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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건희 회장, 고려불화 꼭 되찾자 당부...경합하면 불패"

중앙일보 2021.06.02 05:00 종합 1면 지면보기

‘컬렉터 이건희’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의 회고〈상〉

199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고(故) 이건희 회장이 한화 약 25억원에 낙찰받은 고려자기(12세기). 지난 4월 28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사진 크리스티]

199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고(故) 이건희 회장이 한화 약 25억원에 낙찰받은 고려자기(12세기). 지난 4월 28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사진 크리스티]

1996년 10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297만2500달러(당시 약 25억원)에 고려자기를 낙찰받은 사람이 고(故) 이건희(1942~2020·사진) 삼성 회장인 것으로 밝혀졌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팔린 고려자기로는 역대 최고가였다. 당시 낙찰자의 신원은 미스터리였다. 그리고 이 고려자기는 지난 4월 이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고미술품에 포함됐다. 20여 년간 ‘이건희 컬렉션’의 형성 과정을 가까이서 도운 화상(畫商) 이호재(66) 서울옥션·가나아트 회장을 중앙일보가 단독 인터뷰했다.  
 

20년간 매주 1번 이상 만난 이 회장
지독하게 공부, 스스로 감정할 정도

“국가 못 나서는 부분에 내 역할 있다”
도록에 ○ 표시, 2개면 ‘무조건 사라’

경쟁 상대가 한국인이면 무리 안 해
‘한국에 들어오면 된다’ 이 회장의 뜻

정말 가치 있다면 가격 논하지 않고
구입 작품은 다시 내다 팔지 않아

고(故) 이건희 회장

고(故) 이건희 회장

지난 4월 삼성가 유족들은 이건희(1942~2020) 회장이 평생 모은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국·공립 기관에 기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증품만 2만1693점. 막대한 규모에 국보·보물이 60점이나 포함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회장은 왜 이토록 많은 미술품을 모은 것일까. 그에게 컬렉션은 어떤 의미였을까.
 
지난달 네 차례에 걸쳐 가나아트·서울옥션 회장 이호재(66)씨를 만났다. 이씨는 ‘이건희 컬렉션’의 내막을 아는 몇 안 되는 주변인 중 하나다. 이 회장과 미술품을 거래한 주요 화상(畫商)중 한 명으로 1980년대부터 20년간 이건희 컬렉션 형성 과정을 함께하고 옆에서 지켜봤다. “나는 그분의 (미술품) 심부름꾼이었다”는 그는 인터뷰 요청을 거듭 거절하다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세상이 그를 너무 모른다. 이건희 컬렉션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면서 “제가 얘기를 해도 괜찮을까 고민하고 망설였다. 그러나 이건희라는 분이 어떤 생각으로 작품을 모았는지 알리는 일이 내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런 컬렉션은 돈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다. 그의 수집은 시간이 남을 때 한 게 아니라 엄청난 시간과 공(功)을 들인 것이었다”면서다.
 

“이건희 회장, 고려불화 꼭 되찾자 당부 … 경합 나서면 불패”

“독하게 공부하며 수집한 사람”
 
1999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함께 자리한 이건희 회장(왼쪽)과 이호재 가나아트·서울옥션 회장. [사진 이호재]

1999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함께 자리한 이건희 회장(왼쪽)과 이호재 가나아트·서울옥션 회장. [사진 이호재]

이 회장과 그렇게 자주 만났다고.
“20년 동안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났다. 두 번 이상일 때도 있었다. 이렇게 만났다는 것을 누가 믿을까 싶더라. 단순히 작품을 보고 사는 식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됐을 거다. 그분을 만나러 갈 때면 ‘살 것’뿐만 아니라 ‘함께 공부할 것’도 준비해야 했다. 보통 저녁 8시에 만났는데, 한 번에 3~4시간은 걸리곤 했다. 저녁 8시에 만나 새벽 4시에 헤어진 적도 있다.”
 
왜 그래야 했나.
“스타일이다. 제가 40년 동안 많은 고객을 만났지만, 이분은 달랐다. 지독하게 공부하고, 깊이 들어갔다. 치밀한 공부로 늘 화상을 긴장시키는 분이었다. 도자기 공부도 많이 해 스스로 감정할 수 있을 정도였다. 기증된 컬렉션을 보며 사람들은 돈으로 환산한 가치에 놀라던데, 여기에 들인 시간은 잘 모르더라. 이 컬렉션에 그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분량의 시간을 바쳤다. 남는 시간으로 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해외에 흩어진 문화재 찾아오자”
 
이씨가 이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1979년. 이 회장이 이병철(1910~1987) 선대 회장의 컬렉션을 모아 경기도 용인에 호암미술관 개관을 준비하던 시절이다. 당시 고려화랑 소속으로 미술품 거래를 위해 이 회장과 만난 이씨는 미술관이 개관하고 고려화랑이 해체된 뒤 1984년부터 이 회장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그는 ‘이건희 컬렉션’ 형성 기간을 세 시기로 나눈다. 이 회장이 겸재의 ‘인왕제색도’를 소장한 1970년대 초부터 1982년 호암미술관 개관까지가 1기, 개관 후부터 2001년까지가 2기다. 3기는 2002년부터 삼성미술문화재단이 나서 미술품을 구매하기 시작한 이후다. 이씨는 “1기가 미술관 개관을 위해 선대 회장의 컬렉션을 보충하는 시기였다면, 2기엔 자신의 컬렉션을 구축해 갔다. 저는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만났다. 이번에 기증된 작품 상당 부분이 이때 수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이 해외에서 국내로 사들여온 고려불화 중 하나인 수월관음도.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은 “해외 문화재를 찾겠다는 이 회장의 열정은 대단했다”고 했다.

이 회장이 해외에서 국내로 사들여온 고려불화 중 하나인 수월관음도.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은 “해외 문화재를 찾겠다는 이 회장의 열정은 대단했다”고 했다.

이 회장의 수집 목적이 뚜렷했다는데.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가 얼마나 많나. 우선 해외에 있는 ‘국보급’ 미술품을 찾아 국내로 들여오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다. ‘국가가 나서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내가 할 역할이 있다’고 말씀하곤 했다. 특히 고려불화는 국내에 거의 전해지는 게 없다는 걸 알고 고려불화가 나오면 꼭 찾아오라고 했다. 주로 일본에서 나왔는데, 사려고 나서면 서양미술관과 경합이 붙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그렇게 애써 들여온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 자수 아미타여래도 등 고려불화 10여 점이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이 중 수월관음도는 이전에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유물이다. 통일신라시대 회화와 서법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인 사경(寫經·손으로 베껴쓴 불경)도 기증됐다.
 
통일신라시대 초기인 7세기 말의 보살상.

통일신라시대 초기인 7세기 말의 보살상.

작품은 어떻게 고르고 구매했나.
“1980년대 중반부터 뉴욕, 런던, 파리의 미술품 경매시장에 ‘심부름’ 다니기 시작했다. 회장께선 도록을 직접 꼼꼼히 보고 사야 할 작품엔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동그라미 두 개는 ‘무조건 사라’ ‘희생을 해서라도 놓치지 말라’, 동그라미 하나는 ‘가능하면 사라’는 뜻이었다. 경합 상대가 한국인이면 무리해서 경쟁하지 말라고 했다. ‘일단 한국으로 들어오면 된다’는 뜻이다. 재산을 불리기 위한 수집이었다면 그렇게 했을까. 애초부터 목적이 달랐다.”
 
그는 이 회장에 대해 “국보급 문화재를 국내로 들여와야 한다는 신념이 정말 투철했다”며 “일본에서 나온 작품은 다시 일본인 소장자가 사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인왕제색도, 삼성가의 자부심이었다”
 
신라사경(新羅寫經). 754~755년 통일신라시대에 화엄경을 필사한 것으로 이건희 회장이 인왕제색도와 더불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 유물이다.

신라사경(新羅寫經). 754~755년 통일신라시대에 화엄경을 필사한 것으로 이건희 회장이 인왕제색도와 더불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 유물이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하다고 한다.
“인왕제색도는 저를 만나기 훨씬 전인 1973년부터 이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께서 함께 소장해 온 것이다. ‘이 그림을 손에 넣은 것은 행운이다’ ‘인왕제색도와 신라사경이 있어서 호암미술관이 미술관으로서 체면을 세우게 됐다’고 말씀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전에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던 손홍(소전 손재형의 아들)씨에 대해서도 늘 고마워하셨다. 이 사연을 잘 알기에 지난 4월 유족들이 인왕제색도와 신라 사경을 기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놀랐다. 이 두 점을 다 내놓은 건 이건희 컬렉션의 상징 자체를 내줬다는 의미다.”
 
이 회장의 컬렉션은 미술관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했는데.
“작품을 살 때부터 하나하나가 미술관에 전시될 것이란 큰 그림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돈이 되느냐는 그분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미술사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느냐를 따졌다. 삼국시대~조선시대를 망라한 불교미술 관련 유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역사, 풍속에 관한 것을 주로 수집했고 초상화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다. 풍속화 하면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만 쳐주던 시기에 해외 시장에 나온 기산 김준근 풍속화도 꾸준히 사들였다.”
 
청동기시대 방울인 청동팔주령. 기원전 4~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청동기시대 방울인 청동팔주령. 기원전 4~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그는 “고미술 수집가들은 일반적으로 도자기에서 시작해 회화, 그다음엔 금속(불상 등)으로 관심이 깊어진다”면서 “이분은 도자기에 관한 한 박사급이고 관심이 금속까지 갔다. 그만큼 다 공부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청동팔주령(국보 146호), 금동보살삼존상(국보 134호), 금동보살입상(보물 780호) 등은 전문가들이 감탄하는 대표적인 금속 유물이다. 청동팔주령은 기원전 4~3세기 가장 우수한 유물 중 하나이고, 금동보살삼존상과 금동보살입상은 각각 삼국시대인 6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 초기인 7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우리나라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학술자료이기도 하다.
 
이건희 회장만의 수집 원칙을 꼽는다면.
“첫째, 정말 소장해야 할 필요가 있고 가치가 있다면 가격을 논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에서 기존 소장가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다. 둘째, 작품을 내다 팔지 않는다는 것. 삼성가에 작품이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이전 소장가들이 귀한 작품을 넘긴 건 삼성가가 그 작품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가능했다.”
 
비자금 조성과 미술품 수집을 연관 짓는 부정적 시각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제가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회장님도 늘 돈 걱정을 하시면서 작품을 모았다는 사실이다. ‘미스타 리, 내가 돈이 없다면 믿겠어?’라며 늘 돈 걱정을 하셨다.”  
 
◆이호재=1983년 가나화랑 설립, 1998년 가나아트센터 개관, 서울옥션 설립, 인2001년 인사아트센터 개관, 2000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수훈, 2017년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수상. 현재 가나아트·서울옥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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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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