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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이 걷은 돈, 정부 마음대로 쓴다? 국민성금 배분 논란

중앙일보 2021.06.02 05:00 종합 16면 지면보기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가 호우피해가 발생한 대전 정림동의 한 아파트를 찾아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뉴스1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가 호우피해가 발생한 대전 정림동의 한 아파트를 찾아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뉴스1

"성금이 세금인가? 예산처럼 쓰려는 정부" 

최근 국회에 상정된 재해구호법 개정을 놓고 재난구호 모금 전문기관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등이 “민간이 걷은 성금을 정부가 입맛대로 사용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한정애 장관, 지난해 의원 때 발의
행정부 장관이 지명한 인사들
재해협회 배분위원회에 참여
사업계획도 사전 장관승인 받아야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재해협회)는 1일 성명을 내고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재해구호법 개정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해협회가 언급한 ‘재해구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재해협회 배분위원회에 행안부 장관이 지명하는 사람들이 참여토록 하는 게 골자다. 재해협회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회계연도 시작 2개월 전까지 행안부 장관에게 제출해 승인받도록 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재해협회 측은 “배분위원회 임명 조항, 사업계획과 예산안에 대한 행정안전부의 사전 승인 등 개정안 내용은 행안부가 협회를 산하기관처럼 만들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재해협회는 태풍이나 호우 같은 자연재해 때 국민성금을 모아 이재민을 돕는 민간단체다. 대한적십자사와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더불어 대표적인 3대 구호단체로 꼽힌다. 민간 구호활동이 척박하던 1961년 언론사와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전국 수해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설립됐다. 
 
재해협회 지원금은 행안부 장관의 허가를 받은 단체가 성금을 모아 재해협회로 전달하면, 재해협회 배분위원회가 행안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피해조사를 바탕으로 피해액을 산정해 이재민 계좌로 입금한다.  
 

개정안, 행안부가 배분위원 지명하고 사업계획 승인

연도별 의연금 모금 및 배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연도별 의연금 모금 및 배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현재 국회에 상정된 개정안은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이던 지난해 말 대표 발의로 이뤄졌다. 당시 한 장관은 “배분위원회가 전국재해구호협회로 단일화돼 있어 의연금을 모집한 기관조차 배제되는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없는 독점 구조”라고 대표 발의 이유를 밝혔다. 당시 재해협회가 받은 성금보다 배분한 금액이 적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에 대해 재해협회 측은 “최근 5년 치를 갖고 성금이 모인 것보다 사용된 액수가 적어 협회가 돈을 쌓아두고 있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10년 치를 보면 모금액보다 나간 돈이 더 많다”고 말했다. 
 
재해협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0~2019년) 모금 총액은 1476억7500만원, 배분 총액은 1644억 9000만원이다. 협회 관계자는 “행안부가 개정안을 밀어붙이면서 이런 왜곡된 자료를 근거로 의원들에게 설명을 하고 다닌다”고 주장했다.  
 
행안부의 이런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게 재해협회 측 입장이다. 2007년과 2018년에도 재해협회를 공공기관으로 만들거나 배분위원회 위원 절반가량을 행안부 장관이 임명하게 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했다가 ‘국가의 국민성금 장악’이란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행안부 "국회서 추진하지만 취지엔 공감한다" 

재해협회는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배분위원의 3분의 2가량을 행안부 측 사람들로 채울 수 있다”면서 “배분위원을 정부가 임명하면 성금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재해 상황에 맞는 지원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대상과 규모가 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전국재해구호협회가 이재민을 위해 지원하는 생수, 체육복, 양말, 컵라면 등 구호물품. 뉴스1

전국재해구호협회가 이재민을 위해 지원하는 생수, 체육복, 양말, 컵라면 등 구호물품. 뉴스1

재해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7~8월 호우피해 당시 ‘조기 지급하라’는 행안부의 압박에 따라 이재민 1만1253세대에 정부 재난지원금보다 빠르게 성금을 지원했다”며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피해조사가 부정확해 650여 세대에 잘못 지급되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이번 개정안은 국회에서 추진된 것”이라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다. 다만 개정안은 국회에서 추진하지만 개정취지에는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정부와 여당이 함께 개정안을 추진한다는 표현은 사실과 다르다”면서도 “일부 의원들이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요청해서 설명을 드렸고, 국민들의 소중한 성금이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기본취지에는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민간 구호단체 전문성 신뢰해야"

전문가들은 “배분위원회 등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이창길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과거 재해 상황에서 구호물품이 제공되는 데에 재해협회의 역할이 가장 컸고, 해당 분야에서 오랜 시간 축적해온 전문성과 노하우가 있다"면서 "이 전문성을 신뢰하고 인정하면서, 피해조사를 신속하게 해주고 민간과 공적기금이 조화롭게 활용될 수 있는 조정의 역할을 정부가 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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