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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 누르면 색깔 변하는 ‘전자피부’ 개발…몰디브 플랑크톤서 영감 얻었다

중앙일보 2021.06.02 00:00 경제 4면 지면보기
영화 '승리호'에서 승리호 승무원들이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처음 발견하고 놀라는 장면. [사진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에서 승리호 승무원들이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처음 발견하고 놀라는 장면. [사진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는 대량 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도로시)이 우주선(승리호)에 우연히 탑승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승리호 승무원들은 도로시를 발견하고 사람인지 로봇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로봇의 피부가 사람의 피부가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똑같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피부처럼 누르는 힘에 반응  

전자피부는 마치 사람의 피부처럼 온도·습도·압력 등을 감지해서 반응하는 탄력 있고 부드러운 전자 장치다. 국내 연구진이 누르거나 당기는 힘의 변화에 따라 빛의 밝기가 달라지는 전자피부를 개발했다. 서강대·한양대 공동연구팀은 ‘스마트 발광형 전자피부’를 개발했다고 1일 밝혔다. 
 
욕지도 야포 앞바다에 물을 뿌리자 잔물결이 일며 발광 플랑크톤이 푸른 빛을 내고 있다. [중앙일보]

욕지도 야포 앞바다에 물을 뿌리자 잔물결이 일며 발광 플랑크톤이 푸른 빛을 내고 있다. [중앙일보]

 
기존 압력을 감지해 빛을 내는 전자피부는 압력 감지장치와 빛을 내는 발광장치가 별개로 필요했다. 이에 따라 감지장치와 발광장치를 연결하는 복잡한 회로를 설계·구축해야 했다. 또 압력이 가해지는 위치를 미세하게 구분하려면 높은 집적도로 감지·발광장치를 배치할 필요가 있었다. 
 
촉감을 시각화하는데 어려운 기술적 문제는 또 있다. 낮은 전력만으로 압력을 감지하는 센서와 디스플레이 장치를 구동하기도 어렵다. 저전력으로 구동하는 시스템은 힘의 유무 정도만 구분할 뿐, 그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반응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진이 주목한 건 해양 플랑크톤이다. 이번 연구의 교신저자인 강문성 서강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는 해양 플랑크톤에서 힌트를 얻었다.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해양 테마파크 ‘씨월드’를 찾았던 그는 몰디브에서 자라는 해양 플랑크톤(와편모조류·dinoflagellates)의 색깔 변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플랑크톤이 담겨있는 수조의 물을 휘저으면 플랑크톤에 압력이 가해지고, 압력을 받은 플랑크톤의 빛이 달라졌다.
 
힘의 변화에 따른 전자피부 내부이온 분포 변화.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힘의 변화에 따른 전자피부 내부이온 분포 변화.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플랑크톤 원리 주목…이온성 발광 소재 사용 

바닷물의 흐름이 만드는 자극에 반응해 플랑크톤의 발광 세기가 달라지는 건 플랑크톤의 체내에 있는 ‘이온 채널’ 때문이다. 단백질의 일종인 이온 채널은 평소엔 닫혀 있다가 밟히거나 압력을 받으면 열리면서 이온이 빠져나온다. 이때 이온이 함유한 화학물질(루시페린)이 산화하면서 발광한다.  
 
연구진은 이 플랑크톤과 유사한 신축성 있는 고분자 발광 소재를 활용했다. 이 소재에는 이온이 분포돼 있어, 누르는 힘의 세기가 달라지면 이온의 분포가 변한다. 달라진 이온의 분포는 단위 면적당 빛의 세기(휘도)를 바꾼다. 외부에서 봤을 때 누르는 힘에 따라 빛이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이렇게 개발한 전자피부는 소재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전자 장비에 적용할 수 있다. 인체 친화적인 소재만 쓴다면 사람의 피부와 유사한 전자피부 제작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도환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새로운 구동 방식의 전자피부 연구”라며 “휘어지는 터치스크린이나 버튼이 없는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사물인터넷(IoT)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한 이번 연구의 성과는 재료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스’가 2일 온라인으로 게재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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