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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아가씨의 마지막 호객…60년 수원역 홍등가 불꺼졌다

중앙일보 2021.06.01 15:39
1일 0시 자진 폐쇄를 앞두고 문을 닫은 수원역 집창촌의 성매매업소들. 최모란 기자

1일 0시 자진 폐쇄를 앞두고 문을 닫은 수원역 집창촌의 성매매업소들. 최모란 기자

5월 31일 오후 6시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1가 수원역 주변의 골목엔 붉은 불빛이 켜져 있었다. 골목 안 일부 점포 유리문 안에 여성들이 있는 집창촌이었다. 여성들은 바깥을 향해 “오빠”라고 호객을 했다. 
 

1일 0시 자진폐쇄 수원역 집창촌 르포

영업을 하느냐고 한 남성이 묻자, 한 여성은 "오늘까지만 영업한다"고 말했다. 매장 방향으로 이끌린 그는 이 업소의 마지막 손님이 될 수도 있다. 지난주까지 수원역 집창촌에서 영업한 곳은 전체 110여개 업소 중 30여곳. 하지만 이날은 10여곳만 문을 열었고, 실제 영업은 3~4곳 정도에서만 이뤄졌다. 한 업소의 관계자는 "마지막 날이라 가게 문을 열긴 했지만, 주변 업소들이 전부 문을 닫았는데 손님이 오겠느냐"고 말했다.
자진 폐업을 앞둔 수원역 집창촌. 마지막 영업을 앞두고 전체 110여개 업소 중 10여곳이 문을 열었다. 최모란 기자

자진 폐업을 앞둔 수원역 집창촌. 마지막 영업을 앞두고 전체 110여개 업소 중 10여곳이 문을 열었다. 최모란 기자

60년 만에 사라진 수원역 집창촌 

수원역 집창촌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60년대 수원역과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던 팔달구 고등동과 매산로 1가에 조성된 지 60여년 만의 일이다. 편리한 교통 등으로 한때 서울이나 충청지역에서 ‘원정’을 올 정도로 붐볐던 곳. 평택역 삼리, 파주 용주골, 동두천 생연7리 등과 함께 경기 지역 집창촌으로 이름을 떨쳤던 시절은 이제 막을 내린다.
 
폐쇄를 앞둔 집창촌 골목은 을씨년스러웠다. 업소들은 대부분 커튼으로 창이 가려져 있거나, “은하수 마을 발전을 위해 자진 폐쇄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은하수 마을'은 주민들이 지은 수원역 집창촌의 새로운 이름이다.
 
일부 업소의 유리문엔 붉은 스프레이로 X자와 자진 폐업이라고 적혀 있었다. '업종 변경'이라고 적힌 스티커도 보였다. 한 성매매 업주는 인근에 포장마차를 차렸다고 한다.
 
도로변엔 매트리스와 선반 등 가구와 쓰레기를 잔뜩 넣은 쓰레기봉투가 가득했다. 이사한 사람들이 버리고 간 것이다. 인근 편의점 주인은 "오전부터 용달차가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짐을 뺐다"며 "오늘 문을 연 업체들도 전부 이사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자진 폐업을 앞둔 수원역 집창촌. 길 한쪽에 이사한 업소들이 버리고 간 가구 등이 버려져 있다. 최모란 기자

자진 폐업을 앞둔 수원역 집창촌. 길 한쪽에 이사한 업소들이 버리고 간 가구 등이 버려져 있다. 최모란 기자

영업 부진에 수원시의 보상 제안 받아들여

수원역 집창촌이 사라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영업부진'이다. 2001년 시외버스터미널이 이전하고 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집창촌의 규모가 줄었다. 여기에 수원시가 2019년 1월 수원역 가로정비추진단을 신설, 올해 1월부터 집창촌 내 소방도로 개설공사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폐쇄 논의에 불이 붙었다. 
 
지난해부터 유행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찾는 사람도 적었다. 여기에 경찰도 단속에 박차를 가하자 업주와 종사자들이 자발적으로 문을 닫겠다며 수원시의 보상 제안을 받아들였다. 업주들은 5월 말까지만 영업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장사 안되면 어쩌나" 걱정 반, "개발될 것" 기대감 반 

인근 상인들은 시원섭섭하다고 했다. 집창촌으로 인한 문제도 많았지만, 성매매 관련 종사자와 손님은 상인들의 주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인근 음식점 사장은 “낡은 상가가 그나마 집창촌 때문에 먹고 살았는데 내일부터는 장사가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1일 0시 자진 폐쇄를 앞두고 문을 닫은 수원역 집창촌 성매매업소들. 최모란 기자

1일 0시 자진 폐쇄를 앞두고 문을 닫은 수원역 집창촌 성매매업소들. 최모란 기자

인근의 다른 상점 관계자는 "수원시에서 유일하게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은 곳이 수원역 집창촌인데 얼마 전 시에서 도시가스 신청을 받았다"고 기뻐했다. 그는 "도시가스가 들어오고 집창촌이 정비되면 상권도 살아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지난해 수원시가 소방도로 개설공사를 위해 집창촌 부지를 감정평가한 결과 도로변은 3.3㎡당 3100만원, 집창촌 골목 쪽은 1700만원이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아직 매매된 부지가 없어서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지만, 시가 감정평가한 금액보다는 훨씬 높다"고 말했다.
 
수원시는 올해 말까지 소방도로 개설공사를 마무리하고 매입을 마친 일대 부지를 상업지구로 개발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이곳에 주민 커뮤니티사업과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할 거점 공간도 마련할 계획이다.
 

경찰, 풍선효과 방지 위해 계속 단속 

경찰은 집창촌 폐쇄가 오피스텔 등에서의 변종 성매매로 이어지는 풍선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집중 단속에 나설 예정이다.
1일 0시 자진 폐쇄를 앞두고 문을 닫은 수원역 집창촌 성매매업소들. 최모란 기자

1일 0시 자진 폐쇄를 앞두고 문을 닫은 수원역 집창촌 성매매업소들. 최모란 기자

오후 8시 20분. 거리는 여전히 인적이 드물었다. 수원역 집창촌의 마지막 불을 밝히던 10여개 업소 중 4~5곳이 문을 닫았다. 나머지 업체들도 오후 11시 20분쯤 모두 영업을 끝냈다. 영업 종료 약속 시각인 1일 0시를 채우지 않고 수원역 집창촌의 불은 모두 꺼졌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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