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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포스트론' 다시 꺼낸 日…"문제는 한국" 대미 여론전 나서나

중앙일보 2021.06.01 14:08
지난달 25일 의회에 출석해 답변 중인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 AP=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의회에 출석해 답변 중인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 AP=연합뉴스

일본이 과거사 문제로 한국을 저격하며 다시 ‘골포스트(골대)론’을 꺼내 들었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한ㆍ미ㆍ일 안보 협력 복원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만, 3각 구도의 한 축인 한ㆍ일관계는 구조적 갈등 고착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우려가 나온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은 지난달 31일 참의원 결산위원회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의해 ‘골포스트’가 움직여지는 상황이 늘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역사 문제에 대해 정확한 사실관계와 (일본)정부의 생각을 여러 형태로 국제 사회에 설명하고 있다. 계속해서 확실히 대응하겠다”면서다.

모테기 "위안부, 한국이 늘 골포스트 옮겨"
일본, 오바마 행정부 때 대미 설득 논리
"아무리 사죄해도 한국이 입장 계속 바꿔
골포스트 옮기니 어떻게 골인시키나"
바이든 향해 "한국이 해결책 내야"
한ㆍ일 관계 악화 책임 돌리려는 듯

 
모테기 외상의 발언은 아리무라 하루코(有村治子) 자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아리무라 의원은 “기원전 전쟁에서부터 성병 줄이기 관련 기록이 남아 있는데, 한국 정부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전시 여성의 인권유린’이라는 등의 새로운 딱지를 붙여 일본을 부당하게 깎아내린다”고 위안부 피해에 대해 왜곡된 주장을 펼쳤다.  
일본 내에서도 극우로 분류되는 아리무라 의원이 묻고 모테기 외상이 답하는 형식을 택해 한국을 비난한 셈인데, 사전에 조율이라도 된 듯이 자연스럽게 문답이 이뤄졌다. 일본 외상이 공식 석상에서 직접 골포스트를 거론한 게 더 의미심장한 이유다.  
 
일본은 과거에도 이런 논리를 대미 설득을 위해 활용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이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일본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이자, 일본은 워싱턴에서 본격적인 과거사 외교전에 돌입했다.  
핵심이 골포스트론이었는데, 일본이 아무리 사과를 해도 한국이 자꾸 기준을 바꾸며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한국이 자꾸 골대를 옮기니, 일본으로선 골인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식이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쫃)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이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중앙 포토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쫃)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이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중앙 포토

실제 이는 당시 오바마 행정부 인사들을 설득하는 데 주효했다. 미 국무부 관료들이 공공연히 과거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본의 책임과는 별개로, 한국도 이제 골대를 그만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을 표하곤 했다.  
2015년 12ㆍ28 위안부 합의에 ‘최종적 해결’이란 표현이 들어간 것도 미ㆍ일이 이런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본이 다시 골포스트론을 꺼내든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 인사들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대거 다시 기용됐다.  
2015년 2월 “한ㆍ일은 ‘이른바 위안부(so-called comfort women)’ 문제로 일본과 티격태격해(quarrel) 왔다.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어내는 일은 쉽지만, 이런 도발은 마비를 유발한다”고 말해 국내에서 큰 비판을 받았던 웬디 셔먼 당시 국무부 정무차관은 지금은 국무부 부장관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결국 한ㆍ일관계 악화의 원인은 한국에 있다는 점을 부각하는 게 일본의 의도로 읽힌다. 한ㆍ미ㆍ일 안보 협력에 집중하는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문제를 일으킨 건 한국이니 해결책 역시 한국이 내야 한다’는 입장을 관철하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출범 직후 위안부 합의의 하자가 크다며 사실상 이를 무력화하는 등 빌미를 준 측면이 있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뉴스1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뉴스1

또 코로나19 확산과 도쿄 올림픽 개최 강행 등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스가 정부가 ‘한국 때리기’를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럴 경우 양국 관계 개선의 해법을 찾기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결국 한ㆍ일 관계가 2015년 이전으로 회귀하고, 문재인 정부 내에서는 개선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갑자기 일본 외상이 골포스트를 다시 이야기한 건 국내정치적 요인에 더해 그간 한ㆍ미ㆍ일 협력 약화 및 한ㆍ일 관계 악화의 책임을 한국에 돌리려는 의도 등 복합적 요인이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 주장대로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이 골포스트를 옮겨 왔다면, 사실 일본은 ‘센터 라인’을 옮겨 왔다. 일본도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죄했던 입장을 부정하는 듯한 왜곡된 시각을 자꾸 보여선 안 되고, 한국도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등 균형감 있는 태도가 양국 모두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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