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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굽고, 찌고, 말리면 약이 되는 독성 식물

중앙일보 2021.05.31 07:00

[더,오래] 박용환의 면역보감(102)

"원장님, 채식이 좋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채식이 몸에 나쁘다는 의견이 있더라구요."
 
어느 날, 환자분이 치료받으러 와 나를 보자마자 흥분해서 이야기한다.
 
"아니 글쎄 토마토가 슈퍼푸드라면서 좋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몸에 엄청 안 좋대요. 렉틴이란 게 있다나? 그럼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게 다 거짓말이에요?"라며 말을 급하게 이어간다. 아, 또 렉틴이라는 것을 질문하는구나 싶다.
 
토마토를 쪄서 올리브 오일 두르고 먹으면 렉틴을 신경 안 쓰고 먹을 수 있다. 잘 조리해 먹으면 모든 채소는 슈퍼푸드가 된다. [사진 pxhere]

토마토를 쪄서 올리브 오일 두르고 먹으면 렉틴을 신경 안 쓰고 먹을 수 있다. 잘 조리해 먹으면 모든 채소는 슈퍼푸드가 된다. [사진 pxhere]

 
최근 이와 비슷한 질문이 늘어났다. 스티븐 건드리 박사의 『플랜트 패러독스』라는 책이 그만큼 많이 읽혔나 보다. 플랜트 패러독스, 말 그대로 지금까지 식물이 몸에 좋다고 이야기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다’라는 내용이다. 책의 내용이 맞다 틀리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한 방향의 내용만 읽고서 자칫 잘못 판단하는 오류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서양에서 하는 연구가 어마어마한 투자를 토대로 대단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면은 참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든 생각은 우리의 약초학과 조금 다른 견해가 있구나 하는 점이다. 그리고 현대의 과학적인 방식이 자본의 수혜를 입으며 진행된 결과에 견주어 수천년의 경험이 축적된 지혜도 엄청난 가치가 있다. 누가 더 잘 났느냐고 겨루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한 쪽의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다 보면 연구의 방향이 엉뚱하게 흘러갈 수도 있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약초학을 전공한 한의사의 입장에서는 이런 렉틴 같은 유해성 물질을 잘 이용해 사람의 몸에 이롭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 약한 독성이 있는 약초를 몸에 좋게 바꾸어 적용하는 학문이 약초학이고, 전통의학에서 약초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렉틴은 식물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 내는 물질이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뜨거운 땡볕을 견뎌내야 하며, 곤충과 새의 공격을 피하거나 역이용해 번식할 생각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식물 자신을 보호할 물질을 독소처럼 만들어 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물질이 비단 렉틴 하나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항산화 물질이 다 이런 이유로 있는 것이다. 즉, 지금 온갖 식품, 건강기능식품 광고에서 몸에서 좋다고 말하는 플라보노이드, 폴리페놀, 이런 종류 역시 식물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독소물질이다.
 
그런데 왜 이게 항산화 작용을 해 안티에이징 효과가 있고, 항염증 작용을 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며, 심지어 항암 작용까지 있다고 하는 걸까? 식물에는 독성물질이지만, 사람의 몸에 들어와서는 이롭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로운 점을 샅샅이 파헤친 것이 약초학인 것이다.
 
서양에서 약초를 쓰는 것을 보면 대부분 음식으로도 먹을 수 있는 열매와 잎에 국한되어 있는 것을 느낀다. 반면, 동북아시아의 약초학에는 뿌리와 뿌리껍질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다. 서양에서는 한 때 땅속에 자라는 식물을 악마의 덩어리라고 해서 감자조차 먹지도 않았을 정도로 두려워했다. 감자 싹을 먹고 중독된 사람이 생겨나서 그런 것일까? 그래서인지 뿌리에 관한 내용을 보면 항상 조심하라거나 임산부는 먹지 마라, 독성물질 경고 등의 문구가 붙는다.
 
서양에서의 약초는 거의 음식으로도 먹을 수 있는 열매와 잎에 국한되어 있다. 한 때는 땅 속에서 자라는 감자조차도 '악마의 덩어리'라고 해서 먹지 않을 정도로 두려워 했다. [사진 pxhere]

서양에서의 약초는 거의 음식으로도 먹을 수 있는 열매와 잎에 국한되어 있다. 한 때는 땅 속에서 자라는 감자조차도 '악마의 덩어리'라고 해서 먹지 않을 정도로 두려워 했다. [사진 pxhere]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사람이 산에서 약초를 캐 먹다가 중독되고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함부로 아무 약초나 캐 먹고 중독된 것을 병원에서 응급처치하며 물어보면 한약을 먹었다고 해 전문가 한의사가 처방한 한약과 구별이 안 되는 통에 진짜 좋은 한약이 통째로 오해를 받는 사태가 생긴다. 이런 뿌리는 아무렇게나 먹다가는 큰일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독한 뿌리들조차도 약초의 배합을 잘하고, 독성을 줄이는 방법을 쓰면 몸에 매우 큰 효과가 나게 변화시킬 수 있다.
 
다시 렉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콩류, 가지과 식물, 여러 곡식 특히 현미에도 렉틴이 있기 때문에 실상은 피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발효하거나, 익혀 먹으면 렉틴의 독성이 의미 없는 수준으로 줄어들어서 안심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약초학에서 여러 약초를 굽고, 찌고, 말리는 등 여러 과정을 거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성질이 강한 약초도 이렇게 한약처방으로 복용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다. 하물며 평상시 먹는 음식이야 찌고, 삶고, 발효하는 조리 과정을 거치면 더 안전한 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 환자분께 이렇게 안내해 드렸다. "맞아요. 렉틴 자체는 나쁠 수 있지만, 렉틴을 역이용하고, 아주 줄여 주면 오히려 몸에 좋게 먹을 수 있어요. 생토마토 씨 먹고 장에 탈 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은 씨앗을 빼고 먹으면 되고요. 토마토를 쪄서 올리브 오일 두르고 먹으면 렉틴을 신경 안 쓰고 먹을 수 있고 몸에 좋게 변한답니다. 이렇게 잘 조리해 먹으면 모든 채소는 슈퍼푸드가 돼요. 이제 걱정하지 말고 맛있게 드세요"라고.
 
전통 약초학의 지혜를 널리 알릴 곳이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서 한의사로서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하랑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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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환 박용환 하랑한의원 원장 필진

[박용환의 면역보감] 동의보감을 연구하는 한의사다. 한국 최고의 의학서로 손꼽히는 동의보감에서 허준이 제시하는 노년의 질환에 대비하는 방안을 질환별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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