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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준의 퍼스펙티브] 공영방송은 정파 벗어나 공론장 구심점 돼야

중앙일보 2021.05.31 00:32 종합 25면 지면보기

방송의 사회적 역할

손영준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손영준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뜨겁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문제는 해묵은 과제다. KBS를 비롯해 공영방송 이사진과 경영진 교체가 올 하반기부터 연이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공영방송 지배체제 개선에 앞서 해야 할 일은 공영방송 철학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그동안 공영방송 개혁을 요구하는 함성은 요란했다. 그러나 별다른 결실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공공선과 공정성을 해석하는데 아전인수인 경우가 많았다. 공영방송 철학과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이 차지하는 사회적 역할을 고려할 때 공영방송의 철학과 운영 원리를 다시 점검하는 것은 정당한 요청이다.
 

공영방송의 특정 가치 옹호가 옳다는 주장은 논리의 비약
공동선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폭력과 반도덕·비도덕 많아
공영방송이 시민의 신뢰 잃고 불신 받으며 공정성 논란 유발
다원적 가치 반영하려면 권력과 거리 두는 독립성 확보해야

우리의 언론 상황을 살펴보자. 지금의 공영방송은 정의와 공정의 기준을 임의로 적용한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사회이다. 그렇다면 공동체의 존립과 방향을 놓고 각자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토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공영방송이 사회의 다양성을 공정하게 대우하지 않는 배경에는 대부분 정부의 권위적 압력이 존재한다. 공영방송은 따라서 ‘들을 가치’가 없는 정치적 견해는 없다고 전제하는 것이 옳다. 정치적 다양성을 인정해야 정부로부터 독립적 자세를 견지할 수 있다.
 
시민의 정치적 견해 평등하게 존중
 
예를 들어 우리의 공영방송은 광화문이나 서초동 집회에 참여한 시민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아무리 높은 도덕적 열정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선악을 임의로 구분하는 것은 공정과 정의에 반한다. 서초동과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의 양심과 자유를 공영방송이 차별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서초동과 광화문 어느 한 곳을 편애한다는 것은 스스로 공정과 정의에 어긋났음을 드러낸 것이다. 공영방송은 시민의 정치적 견해를 평등하게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민들은 자기 생각과 ‘같은’ 뉴스를 많이 선호한다. 그래픽에 제시된 것처럼 OECD 국가를 포함한 세계 40개국과 비교해보면 우리 시민들의 뉴스 이용 행태는 많이 편향적이다. 이런 패턴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보편적이지 못하다. 편향적 뉴스 이용은 우나 좌로 정파적 입장이 강한 사람에게서 더 심하다.
 
뉴스를 음식에 비유하면 입맛에 맞는 음식 위주로 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개인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뉴스를 통해서 세상을 인식하고 있다. 편식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영국·독일·일본·프랑스 등 공영방송 위상이 정착된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의 정파적 뉴스 이용 편향성은 현저하게 높다. 로이터 조사에서는 우리나라 언론 신뢰도가 40개국 중 꼴찌로 발표된 바 있다.
 
사회의 공공선 추구가 존재 가치
 
우리의 언론 상황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왜 이처럼 극단적일까.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 진영 간 대결 구도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정치적·역사적 경험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조선이 망한 후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쳐 나라를 세운 지 이제 73년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를 생각할 때 100년이 겨우 넘는다. 강대국과 함께 남과 북은 서로를 겨냥해 전쟁을 치렀다. 남쪽은 남쪽대로 치열한 이념 투쟁이 전개된 지 오래됐다. 산업화와 민주화로 삶과 문화·의식에서 괄목할 발전이 있었지만, 뿌리 깊은 정파성은 여전하다. 정파적 언론 보도는 이런 사회 정파성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이제 언론의 정파적 대치는 고정값이 되었다. 온라인 매체로 정치적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공영방송의 방송 철학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공론장은 저마다 시대정신으로 가득하지만, 구심력은 취약하다. 원심력을 견제하는 힘은 절대 부족하다. 공영방송의 가치는 파편화된 공론장의 구심점이 되는 것이다. 공영방송은 또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의 공영방송은 지금 시민들로부터 신뢰와 불신을 함께 받고 있다. 공영방송은 스스로 공정성 논란의 당사자가 되고 있다. 지금 공영방송이 공공선을 추구하는 방식은 시민으로부터 포괄적인 동의를 받고 있지 못하다.
 
공영방송이 어떤 특정한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 정의롭다는 주장은 논리의 비약일 수 있다. 우리 역사에는 공동선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폭력과 반도덕·비도덕이 많았다. 공공선을 기준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도덕적 가치와 사려 깊은 숙고, 광범위한 동의가 필요하다. 물론 공영방송이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일상적인 경우가 아니다. 나라가 전쟁이나 재난에 해당하는 긴급 상황에 부닥친 경우이다.
 
개혁 첫걸음은 시민 평등하게 대우하기
 
KBS를 재난 주관 방송으로 선정한 것은 공영방송 KBS에 특별한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개인이 갖는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은 보장해 주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언론관이다. 과거 공영방송이 공공선으로 포장했던 뉴스들이 결국 자의적 해석에 불과했던 사례가 적지 않았음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의 정파적 편향성은 로이터 연구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편향적 뉴스 이용과 무관하지 않다. 공영방송이 다원적 가치를 반영하는 평등성·균형성, 권력과 거리를 유지하는 독립성을 확보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영방송의 미래를 논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공영방송 개혁의 첫걸음은 시민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다양한 의견을 균형 있게 처리하며, 그리고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런 공영방송 운영 철학에 대한 논의를 건너뛰고 지배구조를 변경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한국인의 뉴스 소비 편향성은 세계 최고 수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자기 관점과 같은 뉴스를 선호하는 비율이 44%이며, 특정 관점이 없는 뉴스 선호 비율은 52%이다. 반대되는 관점의 뉴스를 좋아하는 비율은 4%에 불과하다.
 
국가별 선호 뉴스 비율

국가별 선호 뉴스 비율

OECD 국가를 포함한 조사 대상 40개국의 평균은 각각 28%(같은 관점 뉴스), 60%(특정 관점 없는 뉴스), 12%(반대 관점 뉴스)이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시민들의 자기 관점 뉴스 선호 비율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이에 반해 반대 관점 또는 관점이 없는 뉴스 선호 비율은 최하위권이다.
 
우리 시민들은 자기의 정파적 시각과 부합하는 뉴스를 상당히 좋아한다. 그러나 특별한 관점이 드러나지 않는 뉴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고, 또 반대편 정파의 뉴스는 매우 싫어한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매우 특이한 상황이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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