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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헬, 리그 9위를 넉 달만에 유럽 정상에

중앙일보 2021.05.31 00:03 경제 6면 지면보기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고 기뻐하는 첼시 선수들. [로이터=연합뉴스]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고 기뻐하는 첼시 선수들. [로이터=연합뉴스]

“마치 영화 속 주인공 같았다. 그는 마법처럼 상대를 제압했다.” 독일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30일(한국시각) 스승이자 명장을 꺾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토마스 투헬(48·독일) 첼시(잉글랜드) 감독을 이렇게 묘사했다.
 

첼시, 맨시티 꺾고 챔스리그 우승
결승전서 스승 과르디올라 넘어
1월 부임한 이후 팀은 수직상승
직전에 이끌었던 PSG도 준우승

첼시는 이날 포르투갈 포르투 에스타디오 드라강에서 열린 2020~21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맨체스터 시티(맨시티)를 1-0으로 이겼다. 전반 42분 첼시 카이 하베르츠가 결승골을 터뜨렸다. 첼시는 2011~12시즌 이후 9년 만이자, 구단 통산 두 번째로 ‘빅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컵)를 들어 올렸다. 투헬은 감독이 되고서야 챔피언스리그 첫 우승을 맛봤다.
 
투헬과 과르디올라는 일종의 사제지간이다. 투헬이 도르트문트를 이끌던 시기(2015~17년), 과르디올라는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13~16년)이었다. 치열한 지략대결 끝에 우승컵은 매번 과르디올라가 가져갔다. 과르디올라는 이미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에 빛나는 명장이다.
 
부진한 첼시를 강팀으로 바꾼 투헬 감독이 우승컵에 입맞추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부진한 첼시를 강팀으로 바꾼 투헬 감독이 우승컵에 입맞추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투헬은 틈날 때마다 과르디올라를 찾아갔다. 축구 전술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저녁 식사 자리 토론이 밤샘으로 이어진 적도 있다. 투헬은 이 시절을 통해 유럽 정상급 지도자로 성장했다. 프랑스24는 맨시티를 넘어선 첼시의 우승을 가리켜 “‘학생’ 투헬이 ‘스승’ 과르디올라를 꺾었다”고 표현했다.
 
유럽 최고 클럽대항전인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모든 사령탑의 꿈이다. 평생 우승 한 번 못하고 은퇴하는 지도자가 수두룩하다. 스타 선수를 영입하고, 몇 년간 손발을 맞추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빅클럽이라도 신임 감독은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팀을 꾸리고, 조직력을 갖추는 데 최소 2~3년은 걸린다. 그런데 투헬은 그 모든 걸 4개월 만에 해냈다.
 
투헬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프랭크 램퍼드 감독 대신 1월 말 첼시 지휘봉을 잡았다. 첼시는 당시 리그 9위였다. 공격에 치중하다가 지는 경우가 잦았다. 투헬은 ‘실리 축구’를 펼쳤다. 탄탄한 스리백 수비를 토대로 안정적인 경기를 펼쳤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첼시 순위는 수직으로 상승했고, 최종 4위로 올랐다. 리그 성적만으로도 박수받을만했다.
 
열세 예상 을 뒤엎고 스승인 맨시티 과르디올라(왼쪽) 감독까지 넘었다. [로이터·EPA=연합뉴스]

열세 예상 을 뒤엎고 스승인 맨시티 과르디올라(왼쪽) 감독까지 넘었다. [로이터·EPA=연합뉴스]

투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고, 단숨에 유럽 정상까지 탈환했다. 영국 가디언은 “투헬 감독이 올 초 첼시에 왔을 때 목표는 리그 4위권이었다. 중도 부임한 그가 구단 역사상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성과를 낼 줄은 아무도 몰랐다”며 감탄했다.
 
투헬이 팀을 단번에 바꾼 비결은 지략과 소통이다. 투헬은 무명 선수 출신이다. 무릎 부상으로 25세에 은퇴했다. 2000년 27세의 나이로 일찌감치 지도자 길에 들어섰다. 슈투트가르트 유스팀, 아우크스부르크 2군, 마인츠(이상 독일)를 거쳤다. 유망주 발굴을 잘하는 데다 전술가의 면모를 갖췄다.
 
2015년 분데스리가의 강팀인 도르트문트 감독이 됐다. 거의 매 경기 전술을 바꾸는 등 리그에서는 전략가로 이름을 날렸다. 2018년 파리 생제르맹(프랑스)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겼다. 네이마르, 킬리앙 음바페 등 수퍼 스타가 즐비한 선수단을 장악했다. 스타 선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리 배워둔 프랑스어와 영어도 도움됐다. 파리 생제르맹 2년 차였던 지난 시즌, 팀을 구단 역대 최고 성적인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투헬을 ‘최고 소통가’로 소개한 BBC에 따르면, 훈련마다 선수에 1대1 과외 식으로 전술을 주문했고, 이들과 토론도 마다치 않았다. 믿는 선수의 경우에는 실수해도 개의치 않고 끝까지 믿고 기용했다. 물론 이름값만으로 자신을 얕잡아 보는 선수에는 불호령을 내렸다. 첼시 미드필더 마테오 코바시치는 “투헬 감독은 워낙 붙임성이 좋아서 (부임한 지 4개월밖에 안 됐지만) 마치 2년 전부터 팀을 이끈 느낌”이라고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첼시 구단은 투헬과 장기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투헬은 “야망을 가진 강력한 구단의 일원으로서 우승을 이뤄내 행복하다”면서 “재계약 논의를 위해 구단주를 만나면 난 늘 우승에 목마른 감독이라는 점을 강조하겠다”고 말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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