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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에 인어가 나오는 것 알고 계셨나요?

중앙일보 2021.05.29 10:00

손민호 레저팀장의 픽 : 여행기자가 읽은 『자산어보』

영화 '자산어보'의 한 장면. 흑산도로 유배간 조선 학자 정약전이 해풍에 말리는 생선을 만져보고 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의 한 장면. 흑산도로 유배간 조선 학자 정약전이 해풍에 말리는 생선을 만져보고 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는 손암 정약전(1758∼1816) 선생의 흑산도 유배 생활을 다뤘지요. 세상의 끝까지 쫓겨나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손암을 보며 힘을 얻었다는 관객이 많았습니다. 여행기자에게도 ‘자산어보’는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자산어보』는 여행기자가 갯마을에 들어갈 때 종종 열어보는 텍스트이어서입니다. 아시다시피 『자산어보』는 19세기 실학자가 쓴 해양생물 도감입니다. 그때 바다나 지금 바다나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200년 전 사대부의 물고기 관찰기를 오늘의 시선으로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영화 ‘자산어보’가 다루지 않은 도감 『자산어보』의 흥미로운 대목을 정리했습니다. 『자산어보』는 의외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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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는 어떤 책인가요

신유박해(1801)로 손암은 흑산도로 유배를 갑니다. 그 절해고도에서 손암은 16년을 살다 죽습니다. 세상의 끝에서도 그는 삶을 이어갑니다. 서당을 열고, 섬사람들과 어울립니다. 그 결과가 『자산어보』입니다. 사대부 양반이 비린내 나는 갯것들을 들여다보고, 만지고, 뜯어보고, 먹어보며 하나하나 기록했습니다. 『자산어보』에서 다룬 해양생물은 185종이나 됩니다. 『자산어보』를 완성하고 이태 뒤 죽었으니 손암의 유배 생활이 곧 『자산어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본은 전해지지 않으며, 모두 한문으로 쓰였습니다.
 

영화를 보면 ‘창대’가 생선을 알려주던데, 창대는 누군가요?

전남 신안군 흑산도 사리. 마을 오른쪽 가장 높은 곳에 정약전이 유배 중 제자들을 가르치고 『자산어보』를 저술한 사촌서당이 있다. 중앙포토

전남 신안군 흑산도 사리. 마을 오른쪽 가장 높은 곳에 정약전이 유배 중 제자들을 가르치고 『자산어보』를 저술한 사촌서당이 있다. 중앙포토

실존 인물입니다. 손암은 『자산어보』 서문에서 창대 덕분에 도감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화의 그 창대와 똑같습니다.
 
‘섬 안에 장덕순, 즉 창대라는 사람이 있었다. 두문불출하고 손을 거절하면서까지 열심히 고서를 탐독하고 있었다. 다만 집안이 가난하여 책이 많지 못하였으므로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건만 보고 들은 것은 넓지가 못했다. 하나 성격이 조용하고 정밀하여, 대체로 초목과 어조 가운데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모두 세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질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말은 믿을 만했다. 나는 드디어 이 분을 맞아 함께 묵으면서 물고기의 연구를 계속했다. 이리하여 조사 연구한 자료를 차례로 엮었다. 이것을 이름 지어 『자산어보』라고 불렀다.’  
 

도감이라면 설명이 상세해야 하는데 어느 정도인가요?

사대부 양반이 썼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설명이 꼼꼼하고 세세합니다. 해양생물의 이름부터 분포, 생태, 맛까지 아는 바를 최대한 다 적었습니다. 종류마다 편차가 크지만, 대부분은 설명이 치밀합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다음 생선이 무엇인지 알아맞혀 보세요.
 
‘몸이 매우 작고, 큰놈은 서너 치, 빛깔은 청백색이다. 유월 초에 연안에 나타나 서리 내릴 때 물러난다. 성질은 밝은 빛을 좋아한다. 밤에 어부들은 불을 밝혀서 ○○을 유인하여, 함정에 이르면 손 그물로 떠서 잡는다. 이 물고기로는 국이나 젓갈을 만들며, 말려서 포도 만든다. 때로는 말려 가지고 고기잡이의 미끼로 사용하기도 한다.’
 
아시겠습니까. 멸치입니다. 멸치의 생김새부터 생태, 잡는 방법과 먹는 방법까지 서술하고 있습니다. 지금 멸치에 관해 써도 이 이상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손암은 생선보다 고동·전복 같은 해산물, 해산물보다 미역·모자반 같은 해초를 훨씬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었던 걸 더 자세히 관찰해 기록했다고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를테면 고동은 13종류나 등장합니다. 모든 걸 다 내려놓은 손암도 ‘미천한 상놈’이나 만지는 생선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손암이 제일 맛있다고 한 생선이 무엇인가요

영화 '자산어보'에서 창대가 돗돔을 잡아오는 장면. 영화에서 나온 에피소드가 『자산어보』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상어를 미끼로 잡는 물고기. 돗돔 큰놈은 열 자 남짓이라고 적었다. 한 자가 30.3㎝에 이르니 3m가 넘는다는 얘기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에서 창대가 돗돔을 잡아오는 장면. 영화에서 나온 에피소드가 『자산어보』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상어를 미끼로 잡는 물고기. 돗돔 큰놈은 열 자 남짓이라고 적었다. 한 자가 30.3㎝에 이르니 3m가 넘는다는 얘기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여러 생선을 ‘맛있다’고 표현했는데, 으뜸은 숭어라 할 수 있습니다. ‘고기살의 맛이 좋고 깊어서 물고기 중에서 첫째로 꼽힌다.’ 당당히 1등이라고 썼습니다. 숭어 어란은 당시 사대부의 최고 안주였지요. 아는 맛이어서 더 맛있다고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혹평한 생선도 있나요?

감성돔에 관한 설명은 실망스럽습니다. 낚시꾼들이 ‘감생이’라 부르며 떠받드는, TV 예능 프로그램 ‘도시 어부’에서도 출연자들이 작정하고 달려드는 천하의 횟감을 손암은 겨우 다섯 글자로만 소개했습니다. ‘色黑而梢小(색흑이초소).’ 색이 검고 약간 작다. 맛에 대한 설명이 아예 없습니다. 손암이 안 먹어봤다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먹어봤다면, 이렇게 무성의하게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맛에 관한 한 감생이는, 손암에게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파랑새 얘기가 나온던데, 책에 있는 내용인가요?

영화 '자산어보'에서 갯것을 들여다보는 정약전.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에서 갯것을 들여다보는 정약전.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네, 있습니다. 손암은 실학자로서 관찰 결과를 기록했으나, 섬사람으로부터 들은 풍문과 전설도 꼬박꼬박 받아적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말똥성게(승률조개)입니다. 관련 대목을 인용합니다.
 
‘창대가 말하기를, 지난날 한 구합을 보았는데, 입속에서 새가 나왔다고 한다. 머리와 부리가 이미 형성되어 머리에 이끼 같은 털이 나려고 했다. 그것이 이미 죽은 것인가 의심하여 만져보았더니 움직이는 것이 평일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그 껍질 속의 모양은 보지 않았으나 이것이 변하여 파랑새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변하여 새가 된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율구조가 이것이라고 했다. 지금 이것을 경험한바, 과연 그렇다.’  
 
성게에서 파랑새가 나온다니. 이런 판타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손암은 맨 마지막 문장에서 ‘지금 이것을 경험한바, 과연 그렇다’고 적었습니다. 성게에서 파랑새가 나오는 걸 봤다는 뜻일까요. 정말 그렇다면, 저도 꼭 한번 보고 싶습니다.
 

다른 전설도 있을까요?

초여름 뭇 식객의 입맛을 다시게 하는 갯장어에 관한 설명도 떠도는 이야기를 수집한 것입니다. ‘뱀이 변한 물고기라고 한다(본 사람이 매우 많다). 그만큼 이 물고기는 매우 번성한다. 대개 석굴 안에서는 수없이 무리 지어 뱀으로 변한다고 하나 반드시 다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 
 
일부러 ‘본 사람이 매우 많다’고 부연까지 했습니다. 본인은 영 못 믿겠는데, 다들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다는 속내가 읽힙니다. 흥미로운 건, 손암이 장어가 맛이 좋다고 썼다는 사실입니다. 장어 편만 봐도 손암이 맛에 둔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감생이’는 못 먹어본 게 분명합니다.
 

『자산어보』에 인어가 나온다고요?

『자산어보』 표지. 중앙포토

『자산어보』 표지. 중앙포토

『자산어보』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대목입니다. ’모양은 사람을 닮았다…. 눈이 있어 곧잘 우는데 눈물이 구슬이 된다고 한다.’ 이 동화 같은 이야기를 물고기 편 거의 마지막에서 꽤 상당한 비중으로 다룹니다. 『산해경』 『본초강목』 등을 인용하며 인어를 설명하는데, 손암이 직접 봤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다 들은 얘기입니다.  
 
아시는지요. 서남해 섬에서는 인어의 우리말 ‘산지끼’를 봤다는 전설이 다양한 버전으로 내려옵니다. 모두 불길한 얘기들입니다. 인어가 나타나면 바다가 일어난다, 인어를 보면 물에서 못 나온다 등등…. 사실 안데르센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전에는 서양에서도 인어는 불길한 존재였습니다. 사이렌의 전설은 무려 오디세이의 모험에서 등장합니다.  
 
『자산어보』에서 인어 이야기가 중요한 건 사대부 손암이 무지렁이 민초들의 미신 같은 얘기에도 기꺼이 귀를 기울였다는 사실입니다. 영화에서처럼 손암이 혁명가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최선을 다해 제 삶을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건 알겠습니다. 저 먼바다, 세상 끝의 섬까지 쫓겨가 갇힌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손암은 죽기 직전까지 『자산어보』를 붙들었습니다. 
 
손민호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이 칼럼은 1977년 지식산업사에서 출간한 『자산어보』(정문기 옮김)를 텍스트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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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손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