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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긴축 시계 빨라져, 정부도 테이퍼 텐트럼 대비해야”

중앙선데이 2021.05.29 00:36 738호 3면 지면보기

[SUNDAY 인터뷰]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미국의 긴축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9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지난달 정례회의 의사록을 공개했다. 여기엔 일부 위원이 “경제가 계속 빠르게 회복할 경우 자산 매입 속도를 조정하는 계획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게 적절하다”며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내용이 있었다.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으로 연준 내에서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가능성이 언급된 것이다.
 

인플레이션 지속 여부 지켜봐야
미, 금리인상 2023년보다 빨라질 듯

긴축 본격화하면 부채 부담 커져
반시장적 정책 전환 모색할 때

시중에 돈 푸는 경기 부양책 한계
기업 족쇄 풀어 성장 동력 살려야

이에 대해 전광우(72)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24일 중앙SUNDAY 인터뷰에서 “연준이 금리 인상 시기를 당초 계획했던 2023년에서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 정부와 금융당국도 이를 염두에 두고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이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 인디애나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09년엔 금융위원장을 맡아 금융위기 극복에 기여, 이론·실무에 모두 능한 거시경제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미 소비자 물가지수 13년 만에 최대 상승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전 국민에게 나랏돈을 퍼주는 등 국가 부채를 늘리는 정책은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빈 기자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전 국민에게 나랏돈을 퍼주는 등 국가 부채를 늘리는 정책은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빈 기자

연준 내에서 테이퍼링 신호가 나왔다.
“경기 회복세가 그만큼 가파르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이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4%로 올 1월 전망치보다 1.3%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지난해 10월 낸 전망치보다는 3%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연준이 조바심을 낼 만큼 인플레이션 우려 상황인 건가.
“미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4.2% 올라 2008년 9월 이후 13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한 인터뷰에서 ‘연준이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는데, 연준은 공식적으로는 인플레이션 요인이 일시적이며 과도기에 있다는 입장이다.”
 
어느 쪽 의견에 동의하나.
“중간쯤이다. 최근 4~5개월의 흐름을 보면 인플레이션을 장기적 추세라 단언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지난해까지 억눌렸던 소비가 근래 들어 ‘보복 소비’로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일시에 몰린 경향이 있다. 원자재 값이 뛴 것도 당장은 경기 회복 수요가 늘어났다고 볼 수 있지만, 앞으로 오를 거니 미리 확보하겠다는 선반영의 차원으로도 볼 수 있다. 분기별로 추이를 더 봐야 한다.”
 
‘K형 회복’(차등 회복) 얘기가 많이 나온다.
“미국 등 일부 선진국의 가파른 회복세와 달리 인도와 브라질 등 신흥국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마다 백신 공급·접종 속도의 격차가 심한 상황이다. IMF도 올해 단기적인 ‘V형 회복’(빠른 반등) 가능성 외에 국가 간 회복 속도에 차이가 큰 K형 반등이 나타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테이퍼 텐트럼’(taper tantrum·긴축 발작)의 재현을 피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 더 생각할 것은 선진국이라고 앞으로의 경기 회복을 자신할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바이러스 변이(變異) 리스크가 여전한 데다, 미국의 경우 지난달 고용 지표가 기대에 못 미치는 등(실업률이 6.1%로 전월보다 상승) 신중하게 판단할 부분이 있다. 비유하자면 병에 걸린 몸이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 게 정말 완치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진통제 때문에 일시적 효과가 나타난 건지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연준은 언제쯤 금리를 올릴까.
“2023년까지 현행 제로 수준(0~0.25%) 금리를 유지한다는 기존의 계획을 아직 수정하진 않았는데, 최근 상황으로 봐선 금리 인상 시기를 2023년보다는 앞당길 것 같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한국은행은 27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연 0.5%의 금리 동결을 결정했지만, 연내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전 이사장은 “국내 금리 인상 시점 역시 예단하긴 어렵지만, 한은이 연준의 정책 방향을 참고하되 (국내) 경제 회복 속도를 보면서 탄력적으로 조금씩 조정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연준의 비둘기파 성향이 너무 강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인플레이션 요인이 있어도 비둘기파 성향이 강해서 금리를 안 올리는 게 아닌가, 그렇게 볼 문제는 아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개인의 성향이나 정치적 배경보다는 조직의 책임감을 중시하고 그걸 공유하는 데 힘써왔다. 그게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다. 연준도 매파와 비둘기파 중 어느 쪽이 우세한지를 떠나 큰 틀에서 책임감 있게 정책 방향을 판단한다는 조직 전통을 가졌고,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그에 맞게 행동할 거다. 내부 격론은 있겠지만 크게 우려할 부분은 아니다.”
 
부채 문제는 선진국·후진국 안 가려
 
중국과 일본은 상황이 어떤가.
“IMF는 중국의 올해 성장률을 8.4%로 전망했는데, 그보다 중국 정부가 차제에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극복하겠다며 체질 개선에 힘쓰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중국 경제는 막대한 부채, 그림자 금융, 부동산 거품이라는 3대 리스크를 떠안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고강도의 공기업 개혁과 암호화폐 규제 강화 및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DBC) 도입 촉진 등에 나서고 있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일본은 상황이 안 좋다. 지난해 도쿄올림픽 연기로 국가적 부담이 커졌고 이전에도 아베 신조 내각 때 잠깐 반짝했을 뿐 인구 고령화에 따른 경제 역동성 저하, 고질적인 부채 문제 등으로 고전 중이다. 부채 문제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안 가린다.”
 
우리나라도 부채가 급증세다.
“재정 건전성 악화는 결국 미래 세대의 부담이다. 현재 세대가 가불해서 미래 세대에게 부채 갚는 일을 떠넘기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재정 지출의 효율성을 키우는 쪽으로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부 취약계층을 집중 지원해줘야 하는 건 맞지만 온 국민에게 나랏돈을 주는 포퓰리즘에 기반을 둔 정책으로 국가 부채를 늘려선 안 된다. 테이퍼링이 본격화할수록 부채 부담이 가중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코로나19 시국에 경기 부양을 위한 부채 증가는 불가피한 게 아닌가.
“시중에 돈을 푸는 게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 기업들을 옥죈 족쇄를 풀어 역동적으로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효과적인 경기 부양책이다. 기업 입장에서 족쇄란 꼭 필요한 규제 이외의, 필요성이 작음에도 관행적으로 존재하는 각종 규제다. 특히 테이퍼링 논의가 나오기 시작한 현 시점에선 경제 활성화와 잠재성장률 제고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규제 완화에 더 집중해야 한다. 지금도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의 수출 분야에서 기업들의 선방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현 정부는 그런 면에서 좀 아쉽다. 시장 친화적이지 않은 정책의 수정이 필요한 때다. 내년 대선으로 출범할 차기 정부도 이를 유념했으면 한다.”
 
2008년 위기 대응 리더십 참고할 만
 
경제 위기 대응의 모범 사례를 꼽는다면.
“지금 상황과 꼭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보였던 리더십을 참고할 만하다. 2008년 3월 베어스턴스, 9월 리먼브라더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이 잇따라 파산하면서 전대미문의 금융위기가 터지고 국내 시장도 요동쳤는데 그해 10월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라는 적극적인 초동 대처로 단숨에 분위기를 바꿨다. 11월부터는 환율이 안정되고 외국인 자금 이탈이 잦아들면서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빨리 턴어라운드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때 금융위원장으로 미국을 방문, 팀 가이트너 당시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를 만나 ‘고맙다’고 말했더니 그가 ‘양국 정상 간 돈독한 신뢰 관계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답했다. MB가 조지 W. 부시 당시 미 대통령과 평소 신뢰 관계를 잘 구축한 게 빠른 통화스와프로 이어졌다고 본 거다. 이처럼 아쉬울 때만 찾는 관계가 아닌, 평상시의 깊은 신뢰 관계 구축이야말로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큰 힘을 주는 최고의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법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양국 관계 개선에 성과를 보인 게 그래서 다행스럽다.”
 
테이퍼 텐트럼
선진국의 양적 완화 축소가 신흥국의 통화 가치와 증시 급락을 불러오는 현상. 2013년 벤 버냉키 당시 미 연준 의장이 양적 완화를 종료하기 위해 자산 매입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발언한 이후 미국 국채 가격이 폭락,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고 신흥국의 자본 유출이 이어졌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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