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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생 작가의 깜찍하고 슬픈 소설

중앙선데이 2021.05.29 00:20 738호 21면 지면보기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
구효서 지음
해냄
 
1957년생 소설가 구효서씨의 장편소설이다. 그런데 구효서답지 않은 소설이다. 시간의 중력을 거스른다. 작가가 나이를 잊은 것 같다는 얘기다. 보기에 따라, 지나치게 발랄하다. 실은 무척 슬픈 소설이다. 그런데도 소설 제목의 어투, 칙칙하기보다는 아기자기한 표지 디자인, 그 안에 통통 튀는 작가의 말. 이런 것들이 모두, 슬픈 얘기지만 가볍게 읽자, 이렇게 말 거는 것 같다.
 
가령 ‘작가의 말’의 이런 첫 문장.
 
“제목이 ‘요’로 끝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하여튼 순해 보일 것 같아서.”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통통’ 말이다.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따라붙는다.
 
“열 권 정도 쓰고 싶었다. 요요거리며 자꾸 나올 것 같아서.”
 
소설가 구효서씨. 새 장편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를 냈다. [사진 예스24 채널예스]

소설가 구효서씨. 새 장편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를 냈다. [사진 예스24 채널예스]

여기서 ‘요요’는 즐길 락, 노래 악, 이라는 뜻도 갖고 있는 ‘좋아할 요’의 중복 표기, 그러니까 ‘樂樂(요요)’다. 요요소설이 자꾸 나온다는 얘기. 소설 속 인물들이 서로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다시 말해 사랑이 넘치는 소설이고, 그런 소설을 자꾸 쓰고 싶으니까 좋아하고 또 좋아해 달라는 독자를 향한 당부로 읽힌다.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 2383번지. 앞에도 산, 뒤에도 산, 싱그러운 숲속 숙박업소 ‘오베르주 애비로드’에 여섯 살 여자아이 유리가 산다. 그런데 유리는 어른의 말을 한다. 만여섯 살이 코앞인 자기 나이를 두고 “여섯 살이 될락 말락 하잖아요. 될락 말락. 그게 막 간지러워요”라며 까르르 웃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눈치 빤한 아이라는 캐릭터 설정을 위한 것이겠거니, 넘어갈 수 있다. 유리는 대뜸 처음 소개팅했던 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 사람이 없을 때 걸어서 내려가느냐 아니면 제자리에 서서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로 내려가느냐, 이 사소한 차이로 인해 뭔가 소개팅 상대남과 틀어졌다는 것.
 
지극히 비현실적인 유리 캐릭터가 기자에게는 독서 허들이었다. 읽느냐 마느냐. 그 허들을 넘어서니 기상천외까지는 아니어도 세상에 여럿 없을 것 같은 맑고 순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애비로드에 말이다.
 
서령. 경쟁하고 싶지 않아 경쟁을 안 해버려 지금껏 경쟁을 모르고 살아왔노라고 말하는 여성이다. 그런 서령을 사랑하는 무소속 아나운서 이륙. 전국의 행상 트럭들 사이에 그의 목소리로 홍보 테이프를 만들면 양말이든 순대든 확실히 매출이 보장된다는 마성의 목소리로 통한다. 89세의 미국인 남성 브루스. 가끔가다 체온·호흡·언어가 한꺼번에 정지하는 듯한, ‘마네킹 스톱’ 마비 상태에 빠진다. 그런 브루스에게서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고 서른다섯 나이 차이를 극복한 한국인 여성 정자. 마지막으로 이 모두를 먹이고 다독이며 맛있는 소설로 몰고 가는(‘돼지고기활활두루치기’ 같은 음식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애비로드의 주인장 난주까지. 소설은 여섯 명의 비밀을 양파껍질 벗기듯 차츰차츰 드러낸다. 탐식하듯 따라가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매운 양파보다도 더 눈 따가운 순간을 맞게 된다(적어도 기자는 그랬다).
 
이 소설 감상법을 두어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잠시 비친 것처럼 맛있는 소설이다. 난주는 숨은 숙수(熟手). 소설 속 다양한 음식을 검색하며 읽자. 포르투갈 가요 파두도 두어 차례 찾아보게 된다. 노래를 곁들여 읽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복선에 주의하자. 벌어질 사건에 대한 사전 암시 말이다. 허튼 문장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유리의 설정도 일종의 판타지였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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