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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고용율 낮다고…"고용유지 힘쓰는데, 부도덕 기업 낙인"

중앙일보 2021.05.27 12:00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오후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21 고용평등 공헌포상'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고용평등 사회를 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오후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21 고용평등 공헌포상'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고용평등 사회를 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모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고용노동부의 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날아온 공문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2021년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 제출 대상 알림 및 작성 방법 안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남녀 근로자 수와 임금 현황 등을 제출하라. 기일 내에 제출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제출하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므로 반드시 제출기한을 엄수하라'는 내용이었다. 말이 '안내'이지 기업에 내리는 강압적 지시다. 이 인사담당자는 "2019년부터 코로나(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기업이 숨도 못 쉬고 있는데 이런 협박을 한다. 이게 현 상황에서 정부가 할 일인가"라고 말했다.

고용부, 여성 근로자·관리자 비율 낮은
30개 기업 '적극적 고용개선 대상' 공표

대규모 적자에도 고용유지지원금 받아
고용을 유지하려 안간힘 쓰는 기업 상당수

기업 "전시 상황에 어느 나라 정부냐" 분통

 
이렇게 수집한 해당 사업장별 여성 근로자·관리자 비율, 남녀 임금 상황을 고용노동부가 27일 공개했다. 30개 사업장은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미이행 사업장'이란 이름으로 일반에 공표됐다. 여성 고용 비율이 낮고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제도는 '자율적으로 여성 고용기준을 충족하도록 독려하기 위한 제도'라지만 시행 과정은 자율과는 거리가 먼 압박성 행정이다. 그렇다고 제도의 취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여성의 고용과 근로조건을 개선하려는 목적이어서다.
 
3시스탑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지난 3월 8일 서울시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3.8여성의날 기념 기자회견에서 성별임금격차 해소와 여성노동자의 가난과 불안해소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3시스탑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지난 3월 8일 서울시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3.8여성의날 기념 기자회견에서 성별임금격차 해소와 여성노동자의 가난과 불안해소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코로나19의 대유행이 길어지면서 기업이 기존 근로자 고용을 유지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이란 점이다. 정부 방침대로 여성 고용비율을 맞추려면 새로 여성을 채용하거나 남성 근로자를 내보내 성별 비율을 맞춰야 한다. 어떤 경우든 실업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아예 취업을 포기하는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는 현 상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부도 코로나19로 인한 노동시장의 안정을 위해 신규 채용보다 고용유지에 중점을 둔다. 이런 압박 행정은 코로나19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한 고용정책과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이번 공표 대상에 오른 사업장 중에는 경영 사정이 극도로 악화해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기업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고용유지지원금으로 근근이 버티는 기업도 많다.
 
A사의 경우 매년 10억원 안팎의 흑자를 기록하다 지난해 100억원에 육박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래도 A사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정부로부터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며 근로자를 끌어안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정부의 기업 명단 공표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막대한 적자를 낸 B사 임원은 "여성 인력 활용은 국가나 기업 모두 고민하고, 적극 동참해야 하는 사안"이라면서 "문제는 현 경제·노동시장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용유지지원금을 주면서까지 근로자 고용을 유지하라고 독려하더니, 여성 근로자 수가 마음에 안 든다고 부도덕한 기업인 양 낙인찍는 게 맞는가. 폭격 속에 한 사람이라도 살리려 발버둥 치는,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는 지금, 이러는 정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냐"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사업주와 근로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동법의 효력을 일시 정지하는 조치까지 취한다. 경직된 규제를 풀어 위기 상황에서 유연성을 확보해줌으로써 기업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서다. 덴마크는 고용을 유지할 경우 사업주가 노조와 합의 없이 강제로 휴가를 보내도 법적 제대를 가하지 않는다. 포르투갈은 한시 해고제를 도입했다.
 
한편 이번에 발표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대상 사업장의 남녀 근로자 임금 격차는 평균 32.1%였다. 전 산업 평균(e나라지표, 2019년) 32.2%보다 0.1%포인트 적었다. 평균 근속연수는 남성 근로자가 98.5개월, 여성이 74.8개월이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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