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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장영자·이철희 구속한 첫 중수부장

중앙일보 2021.05.27 00:03 종합 18면 지면보기
이종남

이종남

검찰 특별수사통 검사들의 대부(大父) 이종남(사진) 전 감사원장이 25일 오후 10시쯤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는 초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시절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을 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향년 85세.
 

이종남 전 감사원장
7100억 당시 최대 사기사건 처리
검찰총장·법무장관·감사원장 역임
공인회계사 회장, 로펌 대표도 지내

서울에서 태어난 이 전 감사원장은 덕수상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도중인 1960년 제1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면서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고등고시 사법과는 1963년 시작된 사법시험의 전신이다. 이후 1964년 공인회계사(11회) 시험에 합격한 직후 대구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74년부터 1980년까지 대검 특수부 제4과장과 1과장을 연이어 맡으며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로 성장했고, 1981년 초대 대검 중수부장을 맡았다.
 
1982년 이 전 감사원장이 이끄는 대검 중수부는 장영자 부부를 구속하며 파문을 일으켰다. 장영자 부부는 최대의 사기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평가된다. 장영자씨는 주로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건설사들을 상대로 남편인 이철희 전 중앙정보부 차장의 경력 등을 내세워 돈을 빌려주고 최고 9배에 달하는 약속어음을 받아내 사채시장에 유통하는 수법으로 거액을 가로챘다. 전체 사기 범행 금액만 7100억원을 넘는데, 이는 당시 한국 정부 예산의 10%에 육박하는 액수였다.
 
이 전 감사원장이 터를 닦은 중수부는 이후 명성그룹 사건, 5공 비리, 수서 사건, 율곡 비리,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김현철씨 비리, 이용호 게이트 등 굵직한 사건을 처리하며 이름을 높였다.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사기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이종남 대검 중앙수사부장. [중앙포토]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사기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이종남 대검 중앙수사부장. [중앙포토]

이 전 감사원장은 1983년 서울중앙지검장, 1985년 법무부 차관, 1987년 검찰총장까지 지낸 뒤 1989년 미국 하버드대 법학과 객원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1990년에는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1992년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일했다. 1995년에는 법무법인 세종에 대표 변호사로 영입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에는 18대 감사원 원장으로 깜짝 발탁됐다. 김 전 대통령과 아무런 정치적 인연이 없었지만 정부의 대대적인 공공 부문 개혁을 주도할 인물로 높이 평가된 덕분이었다. 이 전 감사원장은 공기업 등의 비대화와 부정부패 관행을 크게 개선하는 등의 업적을 남기고 2003년 9월 긴 공직 생활을 마쳤다.
 
이 전 감사원장은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를 이끌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 기념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의 직계 후손이기 때문이다. 이 전 감사원장의 좌우명은 이순신 장군처럼 ‘필사즉생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비겁하면 반드시 죽는다)’였다고 한다.
 
이 전 원장과 법무법인 세종에서 함께 일한 신영무(사법시험 9회) 에스앤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는 “많은 법조계 후배들이 존경하는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며 “인격적으로 따뜻하셨고 공직자로서 청렴하셨다”고 추모했다. 이 전 원장과 친구인 이근영 전 금융감독원 원장은 “우리 사회는 묵묵하고 바르게 맡은 일에 충실했던 공직자를 잃었다”라고 말했다.
 
유족으로 부인 백지선씨, 슬하에 이정열(홍익대 교수)·이경아·이순열(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씨, 사위 조진호(아스티 대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3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29일이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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