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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스웨덴 대사 부인 요한나 할그린이 본 한국의 도시

중앙일보 2021.05.27 00:00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의 부인이자 공간 전문가, 한국살이 3년째
한국의 스마트 시티는 기술 치우쳐… 사람과 지속가능성 우선순위 둬야

“지속 가능하지 않으면 스마트한 도시 아냐”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의 부인이자 건축가인 요한나 할그렌 씨(사진)는 세운상가를 한국 도시재생의 훌륭한 사례라고 꼽았다. 기존 건물과 세입자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변화를 유도한 것을 성공의 원인이라고 봤다.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의 부인이자 건축가인 요한나 할그렌 씨(사진)는 세운상가를 한국 도시재생의 훌륭한 사례라고 꼽았다. 기존 건물과 세입자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변화를 유도한 것을 성공의 원인이라고 봤다.

스웨덴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1970년대부터 탄소배출 저감 정책을 시작했다. 스웨덴이 걸어온 길은 이제 막 그린뉴딜을 핵심 성장동력으로 채택한 한국이 가야 할 미래이기도 하다.
 
스웨덴과 한국의 도시개발정책에 두루 밝은 전문가를 만나 스마트 시티를 비롯해 한국의 도시가 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의 부인인 요한나 할그렌 씨다. 건축가인 할그렌 씨는 20년 동안 교육 공간과 주택,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다뤘다. 건국대와 한양대에서 객원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2018년 10월 남편 할그렌 대사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3년간 한국생활에서 할그렌 씨의 눈에 한국의 도시는 어떻게 비쳤을까. 5월 14일 서울 을지로에 있는 세운상가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장소는 할그렌 씨가 직접 골랐다. 그는 “세운상가는 도시개발의 상징적 장소”라고 했다. 주한스웨덴무역투자대표부의 최연윤 매니저가 통역을 도왔다.
 
인터뷰 장소를 세운상가로 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가끔 세운상가를 둘러보곤 한다. 1980년대부터 상권이 쇠퇴한 세운상가를 재개발하려는 논의가 진행되다가 2013년에 철거 대신 보존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 2015년에 국제현상설계공모전을 통해 디자인 요소가 반영되면서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사진 찍기에 좋은 흥미로운 공간이 됐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어떤 점에서 세운상가가 매력이 있다고 여겼나?
 
“60년 가까이 된 부품상가에 청년들이 입주하면서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세운상가를 좋아하는 건 기존 세입자를 유지하면서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기존 세입자들이 내쫓기지 않게 했기 때문에 혁신을 가져왔다고 본다.”
 
한국에서 어느 도시가 가장 인상 깊었나?
 
“서울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부산도 좋았다. 모든 도시가 좋았지만, 특별히 꼽으라면 단연 서울과 부산이다.”
 
서울을 꼽은 이유가 궁금하다.
 
“서울은 놀라운 도시다. 카페나 작은 공작소가 다양하게 섞여 있는 게 재미있다. 서울에 와서 ‘역동성이 도시의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톡홀름의 경우 도시 자체는 아름답고 잘 정돈돼 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서울은 예측 불가능하고, 역동적이며, 다양함이 있다.”
 
할그렌 씨는 한국의 공간 구분과 활용법이 독특하고 색달랐다고 했다. 카페에서 내려다본 세운상가 앞에 청계천을 따라 늘어선 공작소 앞을 오토바이, 자전거, 사람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길에 내놓은 좌판과 작업대가 있는 풍경이 다소 산만해 보였지만, 할그렌 씨는 “한국의 이런 공간 활용이 색달랐다”고 했다.
 
 

“서울의 역동성 놀라워, 세운상가는 재개발의 모범사례”

스웨덴에서 가장 최근에 추진된 신도시 개발프로젝트인 로열 시포트(Royal Seaport)의 학교 건물. 스웨덴은 기존 건물을 헐지 않고 보수해 최대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것을 도시 정책의 목표로 삼는다. / 사진:로열시포트 공식 트위터

스웨덴에서 가장 최근에 추진된 신도시 개발프로젝트인 로열 시포트(Royal Seaport)의 학교 건물. 스웨덴은 기존 건물을 헐지 않고 보수해 최대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것을 도시 정책의 목표로 삼는다. / 사진:로열시포트 공식 트위터

“한국인 건축가가 ‘한국에서는 보이는 바깥 공간은 다 내 것’이라고 하더라. 이 앞을 봐라. 공작소들은 거리로 나와 작업을 하지 않나. 보행자 길을 넓게 해서 이런 식으로 공간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랄까. (구역이) 잘 정돈된 도시는 계획자의 의도대로만 사용하지만, 서울은 다르다.”
 
사람이 사는 곳으로서 서울의 환경은 어떤가?
 
“부촌(富村)에 가보니 녹지와 거주공간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그런데 도시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물이나 자연이 순환하는 환경이 부족하다. 너무 도시화해 있어서 녹지가 부족하다. 또 동네를 돌아다녀 보니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유모차 탄 아이들, 휠체어 탄 장애인은 대체 어디 있는 걸까. 서울은 차가 우선순위이고, 차를 이용하기에 최적화돼 있다. 차가 다니기 좋게 길이 잘 닦여 있다. 지하철과 버스가 매우 잘 돼 있는데도 말이다.”
 
유럽은 서울과 다른가?
 
“스톡홀름의 경우 시내에 들어오는 자동차에는 도심 체증 유발 부담금을 부과한다. 시내에는 주차 공간이 매우 적고, 도로도 비좁다. 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걸어 다니는 게 오히려 낫다. 보행자 위주로 도로를 설계했기 때문에 그렇다. 스톡홀름의 도시 목표는 ‘산책도시’다. 시내 어디든 걸어서 다닐 수 있다. 지역과 지역 사이에 단절된 곳을 모두 연결했다. 프랑스 파리는 시내 어디든 자전거나 도보로 15분 이내에 닿을 수 있게 도로망을 만들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보행자도로와 오토바이 전용도로를 만들어 자동차도로를 최소화했다. 서울도 이보다 더 재미있게 바꿀 수 있을 거다.”
 
그럼 차도를 없애야 하나?
 
“차도부터 없앤다고 되지 않는다. 자전거나 대중교통, 걷기에 좋은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대중교통과 녹색교통수단이 편리해지도록 해야 한다. 자동차를 막고 차도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바꿀 수 없다.”
 
광화문 앞 차도를 축소하고 광장을 넓히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할그렌 씨가 말한 방향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차도를 줄이는 건 무조건 찬성이다. 그런데 그걸 줄여서 자전거도로로 바꾸면 좋을 거다. 광장 안에서만 자전거를 타게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도시의 이동수단이 바뀔 수 있어야 한다. 차에서 자전거로, 광장을 벗어나 어디든 갈 수 있게 연결하는 게 중요하다.”
 
 

스마트 기술보다 지속가능성이 도시의 중요 가치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2021년 수상자인 프랑스 건축가 라카통과 바살(Lacaton & Vassal)은 기존의 낡은 아파트를 최대한 원형대로 유지한 채 증축했다.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대안이란 평가를 받는다. / 사진:프리츠커상 공식 웹사이트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2021년 수상자인 프랑스 건축가 라카통과 바살(Lacaton & Vassal)은 기존의 낡은 아파트를 최대한 원형대로 유지한 채 증축했다.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대안이란 평가를 받는다. / 사진:프리츠커상 공식 웹사이트

한국의 도시개발은 첨단 기술을 도시 곳곳에 적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스마트 시티의 투시도에는 하늘을 나는 드론과 땅을 달리는 자율주행차, 사람과 함께 걷는 애완 로봇 등이 단골 오브제로 등장한다. 녹지가 거의 없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할그렌 씨는 이런 한국 미래 도시의 상(像)이 어색한 듯했다. 그는 “스마트 시티의 개념은 한국에 와서 더 많이 들었다”고 했다.
 
스웨덴에는 스마트 시티가 없나?
 
“엄밀히 따지면 스웨덴의 도시 모델은 스마트 시티가 아니라 ‘지속가능도시(sustainable city)’다. 둘은 다른 개념이다. 지속가능하려면 도시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줄여야 한다. 전체 탄소배출량의 30%가 도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의 스마트 시티를 가본 적 있나?
 
“세종시를 가봤다. 신경을 많이 써서 계획된 도시라는 게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하나의 관점으로만 지어진 도시 같았다. 즉 엔지니어(기술자)의 관점으로 설계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 시티인데도 기존의 단열보다 나아진 게 없었다. 에너지가 새어 나가고 있고 태양광 패널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지속가능성을 갖추지 않은 듯했다. 솔직히 어느 부분이 스마트한지 잘 모르겠다.”
 
스웨덴의 도시 개발은 어떤 목표를 추구하나.
 
“가장 최근에 진행된 도시 개발 프로젝트인 로열 시포트(Royal Seaport)는 다섯 가지 목표를 정했다. ▷주거, 일터, 생활서비스가 혼합된 생동적인 도시 ▷프로젝트 리더와 시민 등 구성원이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협력하는 구조 ▷대기, 물, 에코 등 녹색·환경에 관해 도시가 책임지고 직접 관리 ▷기존 건물과 시설 등 자원을 최대한 활용(로열 시포트는 오래된 공장 건물을 오페라하우스로 활용할 예정이다.) ▷남녀노소, 장애인 등 모든 세대와 계층을 배려한 도시 설계 등이다. 이런 목표에 스마트 시티는 들어있지 않다.”
 
한국의 스마트 시티도 환경을 중요한 지향 요소로 포함하고 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한국·중국·일본·스웨덴의 국가별 1인당 탄소배출량을 조사해봤다. 한국이 가장 높고 중국, 일본, 스웨덴 순이다. 스웨덴은 탄소배출량이 감소 추세인데 한국은 오히려 늘고 있다. 스마트 시티의 목표 중 하나가 지속가능한 도시라면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 도시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야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과 스웨덴의 도시 개발 방향은 어떤 차이가 있나?
 
“한국은 도시에 적용하는 기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도시에 폐쇄회로(CC)TV가 매우 많다. 반면 스웨덴은 한국처럼 CCTV를 자유롭게 설치할 수 없게 돼 있다. 사생활 보호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있지만, 우선순위는 사람이다. 그리고 스웨덴은 도시를 만들 때 여러 분야의 부처가 검토하면서 진행한다. 시간은 걸리지만, 검토가 확실하게 이뤄진다.”
 
 

기존 건물 재활용하는 게 최고의 에너지 절약법

요한나 할그렌 씨가 한국에 머물면서 작은 도서관 설계 경진대회에 출품한 강화군 교동도 기존 건물의 도서관 활용방안. / 사진:요한나 할그렌

요한나 할그렌 씨가 한국에 머물면서 작은 도서관 설계 경진대회에 출품한 강화군 교동도 기존 건물의 도서관 활용방안. / 사진:요한나 할그렌

할그렌 씨의 남편 야콥 할그렌 대사는 6월에 임기가 끝난다. 그녀도 남편과 함께 6월 중순 고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제법 긴 시간 인터뷰가 진행됐지만, 할그렌 씨는 여전히 한국에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한국의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무엇을 강조했나?
 
“있는 걸 최대한 활용하라는 걸 강조했다. 허물고 새로 짓지 말고 건축물, 자재 등을 최대한 활용하라. 여러 부처와 여러 관점에서 소통하라는 것도 강조한 부분이다. 사회성, 경제성, 환경성(지속가능성)은 현재의 도시에도 다 있다. 그걸 어떻게 살려서 활용할 것인지 관심을 가지면 발견할 수 있다. 시민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여성과 아이들에게도 물어보고.”
 
지속가능성의 핵심 중 하나는 어떻게 에너지 사용을 줄이느냐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패시브 디자인(passive design)이란 건축 기술이 있다. 가장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건물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법이다. 자연 환기와 채광을 이용해 전기 사용량을 줄이는 식이다. 가장 쉽고 중요한 방법은 전기가 발명되기 전에 지어진 건축물을 보고 배우는 것이다. 옛 건축물 중에는 용도를 바꿔서 쓰기 좋은 것들이 많다.”
 
한국적인 상황에 맞는 팁은 없을까?
 
“오래된 기존 아파트의 단열을 개선하면 된다. 스웨덴을 포함해 유럽의 트렌드는 기존 건물을 재사용하고 최적화하는 거다.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건축물은 도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한국은 기존 건물을 없애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철거 후 신축’ 방식을 여전히 선호한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이 있다. 올해 이 상 수상자로 프랑스 건축사무소인 라카통&바살(Lacaton&Vassal)의 FRAC 프로젝트가 선정됐다. 기존 건물 리노베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건축사무소다. 이들의 수상은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거다.”(라카통과 바살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존중’의 가치관과 ‘절대 파괴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나?
 
“작년 1월에 한국인 학생과 함께 작은 도서관 설계 국제 경진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 강화군 교동도에 있는 작은 건물을 도서관으로 활용하는 디자인을 출품했다. 아쉽게 입상은 못 했다.(웃음)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관심 있는 한국의 관계자에게 이 아이디어를 꼭 전하고 싶다.”
 
인터뷰를 진행한 세운상가 옆에는 을지로3가 재개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을 헐어버린 자리에는 거대한 고층건물이 올라가는 중이다. 할그렌 씨는 이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스웨덴도 한때 그랬다. 1970년대에 지금의 한국과 똑같은 경험을 했다.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 녹취 정리 박남화 월간중앙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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