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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혁신교육 1번지’ 오산시가 이룬 기적

중앙일보 2021.05.27 00:00
2011년 혁신교육지구 지정 뒤 시민참여형 교육 콘텐트 잇따라 흥행
교육혁신 성공에 인구 늘고 정주성 향상, ‘AI 특별 도시’ 새 꿈 도전

3040 학부모들, ‘학교 도시’의 매력에 빠지다

오산지역 초등학생들이 공자의 영정이 봉안돼있는 궐리사(闕里祠)에서 전통예법을 배우고 있다. 시민참여학교는 생태·역사·문화 등 다양한 현장에서 시민과 학생이 참여하는 오산시의 혁신교육 프로그램이다. / 사진:오산시

오산지역 초등학생들이 공자의 영정이 봉안돼있는 궐리사(闕里祠)에서 전통예법을 배우고 있다. 시민참여학교는 생태·역사·문화 등 다양한 현장에서 시민과 학생이 참여하는 오산시의 혁신교육 프로그램이다. / 사진:오산시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교육을 교실 밖으로 끌어낸 기폭제가 됐다. 이전에도 교실 밖 교육이 있었다지만, ‘교육은 학교에서’라는 고정관념은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공식은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상식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시대에 학습의 장소가 반드시 교실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미 온라인 비대면 수업 체제에 학생과 교사, 학부모도 어느 정도 적응해가고 있다. 집 안, 카페, 사무실, 공원 등 인터넷이 연결되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교실이 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좋은 스승, 좋은 학교를 찾아 삶의 터전을 옮기지 않아도 일류 스승의 가르침을 언제든지 꺼내보는 시대다. 자기 경험과 지식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도 손쉬운 일이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시민 누구나 지식의 전달자인 동시에 지식의 수용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온라인 콘텐트가 오프라인을 능가한다고 해도 현장에서의 직접 체험을 통해 지식을 얻는 감동까지 대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렵사리 교실 밖을 나선 교육이 다시 다른 실내에 갇혀버린다면 이를 혁신이라 부르기 어렵다. 비대면 사회의 기반이 되는 웹의 근간은 ‘참여’, ‘공유’, ‘개방’ 정신이다. 오산시가 지난 10여 년간 진행해온 교육혁신 실험은 바로 이 정신과 맥락이 맞아떨어진다. 웹 정신을 오프라인 교육 현장에 접목해 기존 관념을 바꾼 것이다.
 
오산시의 실험은 2011년 혁신교육지구 지정과 함께 시작됐다. 2010년 지방선거에 당선한 곽상욱 시장은 공약의 절반가량을 교육 부문으로 채웠다. 곽 시장은 오산시를 경쟁력 있는 도시로 바꿀 해법이 교육에 있다고 봤다. 젊은 시절 학원을 운영하면서 젊은 학부모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오산시의 한 공무원은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곽 시장이 추구하는 방향을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교육으로 내세울 인프라가 오산시에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산은 당시만 해도 교육에서는 불모지였다. 우선 인접한 수원, 화성, 평택에 비해 명문이라고 칭할 만한 학교가 없었다. 중학생이 되면 수원으로 ‘유학’을 가는 게 정해진 코스였다. 오산은 상대적으로 싼 집값 때문에 주변 젊은이들이 꾸준히 유입되는 도시였다. 그러나 그만큼 빠져나가는 인구도 많았다. 오산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 교육’ 때문이었다. 2010년 당시 초등학생 자녀가 4~6학년쯤 되면 열 세대 중 다섯 세대가 오산을 떠났다.
 
 

학생도 교사도 떠나기 바빴던 교육 불모지

오산시 청소년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물향기엘시스테마’ 단원들이 재능기부 음악인과 함께 악기 연습을 하고 있다. / 사진:오산시

오산시 청소년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물향기엘시스테마’ 단원들이 재능기부 음악인과 함께 악기 연습을 하고 있다. / 사진:오산시

오산을 떠나고 싶어 하는 건 학교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1년을 채우고 나서 인근 대도시로 전근을 신청하는 교사가 한 학교에서 절반에 이를 정도였다. 새 학기마다 교사의 상당수가 바뀌니 학교는 늘 어수선했다. 새로 온 교사는 학교에 적응하느라 학생들을 챙겨줄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주지 못하니 학업 성취도는 낮은 수준을 맴돌았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2010년 첫 민선 경기도교육감으로 당선한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이 공약으로 내건 ‘혁신교육’은 오산의 미래를 바꾼 화두였다. 김 전 장관은 혁신교육을 안착하기 위해 혁신학교 외에 지자체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혁신교육지구’ 지정 계획을 내놨다. 혁신교육의 개념조차 생소했지만, 오산시는 지구 지정에 도전했다.
 
처음 혁신교육지구 지정을 준비할 때만 해도 시민들은 반신반의했다. “곽 시장이 자기 정치를 위해 교육을 이용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혁신교육에 대한 지식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학교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교사들은 정치에 휘말릴까 우려해 소극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1년 오산시는 안양시 등 5개 시와 함께 1호 혁신교육지구로 지정됐다.
 
혁신교육지구는 창의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특성화 사업을 할 수 있다. 방과후학교를 지원하고, 여러 시설을 활용해 평생교육 지원도 강화된다. 교사를 우대함으로써 우수교원을 확보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혁신교육 시즌2가 시작된 2016년에는 혁신교육지구로 재지정됐다. 혁신교육 시즌2는 1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교육공동체를 건설하는 목표로 추진됐다. 혁신학교와 평생교육(학교 밖 학교)이 융합돼 특색 있는 교육도시 모델을 구축하는 게 가능해졌다. 오산시는 올해부터 5년간 시작된 혁신교육 시즌3 지구로 다시 지정돼 15년에 걸쳐 안정된 교육 혁신사업의 토대가 마련됐다.
 
곽 시장은 당시를 “맨땅에 헤딩하는 거나 다름없었다”고 떠올렸다. 혁신교육은 누구도 가보지 못한 모험이었다. 정치인으로서 치적을 쌓고자 했다면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운동장, 강당과 같은 학교 시설을 개선하거나 증축하는 게 더 편한 길이었다. 하지만 10여 년간 사교육 현장을 직접 겪어본 곽 시장은 오산시만의 특색 있는 공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지역을 살리는 길이란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혁신교육지구로 지정된 뒤 곽 시장은 교육 선진국을 찾아다니며 필요한 사례 수집에 나섰다.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을 비롯해 미국, 일본 등 지구 반 바퀴를 돌았다.
 
 

학교에서 시작한 혁신교육을 지역 발전에 접목

오산시는 시민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다양한 혁신교육 프로그램의 교사로 참여한다. 어린이들이 도서관에서 시민 교사가 들려주는 동화를 경청하고 있다 / 사진:오산시

오산시는 시민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다양한 혁신교육 프로그램의 교사로 참여한다. 어린이들이 도서관에서 시민 교사가 들려주는 동화를 경청하고 있다 / 사진:오산시

하드웨어에 투자하는 건 금세 눈에 띄지만,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고도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오지 않자 이를 채근하는 여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혁신 교육지구 지정 첫해에 총사업비 47억여원 중 오산시가 부담한 예산은 33억여원에 달했다. 그때마다 곽 시장은 “근본적인 변화는 아이들의 표정을 통해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시민들을 설득했다. 혁신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은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 여건을 만드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오산시의 혁신교육 사업은 학교 안에 머물지 않았다. 곽 시장이 교육도시를 표방한 이유는 떠나는 도시를 사람이 모여드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과 학부모, 시민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평생학습체계를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시는 전국 최초로 개설한 혁신교육지원센터를 통해 학교와 시민을 연계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공을 들였다.
 
2011년 5월 ‘시민참여학교’란 이름으로 선보인 체험학습 프로그램은 시작부터 주목을 받았다. 시청과 시의회를 비롯해 오산천·물향기수목원·독산성·궐리사 등 지역에 산재해 있는 환경·역사·문화 콘텐트를 탐방학교로 활용했다. 해당 분야 종사자와 전문 지식을 가진 시민과 학부모가 직접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로 활약했다. 놀이와 소풍, 수업의 경계를 허문 시도였다. 때마침 정규 교과 과정에 창의체험교육이 포함됐다.
 
9개로 시작한 탐방학교는 계속 확대돼 지금은 40여 개로 늘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AR·VR·MR·3D프린팅·농생명과학 등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에듀테크, 미래교실, 농생명과학 탐방학교 등 분야가 전보다 다양해졌다. 오산지역 초등학생의 90% 이상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새 학기 초에 진행하는 접수가 10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일선 학교의 관심도 많다. 체험활동을 위해 기획부터 인솔까지 모든 준비를 혼자 도맡아 해야 했던 교사들도 시와 학부모 교사들이 모든 준비와 진행을 해주니 만족도가 높다.
 
무엇보다 시민참여학교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체험학습의 도우미에 그쳤던 학부모가 학습을 진행하는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시민참여학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부모들도 평생교육의 학습자로 자연스럽게 편입된다. 시가 마련한 ‘학부모스터디’ 교육 과정을 통해 원하는 주제를 공부한 뒤 시민참여학교 교사 등 혁신교육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들’을 위한 학부모로 인식이 바뀌는 효과가 나타났다. 공동체성이 자연스럽게 회복된 셈이다. 지난 10년간 구성된 스터디그룹은 300여 개. 참여 인원은 2000여 명에 달한다.
 
 

혁신교육 프로그램에 미군 장병도 재능기부

오산시의 혁신교육은 마을교육공동체를 통해 시와 시민, 학교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지난해 9월 24일 소리울도서관에서 열린 ‘오산 마을교육공동체’ 출범식. / 사진:오산시

오산시의 혁신교육은 마을교육공동체를 통해 시와 시민, 학교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지난해 9월 24일 소리울도서관에서 열린 ‘오산 마을교육공동체’ 출범식. / 사진:오산시

시민참여학교의 성공은 오산시의 혁신교육 실험에 대한 여론의 태도를 180도 바꿨다. 막연하게만 여겼던 혁신교육의 성과가 나타나자 실험의 폭이 넓어지고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시민참여학교에 이어 공교육을 보완하고 청소년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프로그램이 연이어 개발됐다.
 
2013년에 오산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생존수영’ 프로그램은 이듬해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2015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정규과목으로 채택됐다. 오산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스포츠센터 수영장을 활용했다. 학생 이동과 안전지도는 오산지역 학교와 단체, 학부모 자원봉사자 등이 힘을 합쳤다. 시청 소속 수영선수와 체육회, 대한수영연맹 등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했다.
 
아이들에게 한 가지 악기를 다룰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시작한 유소년 오케스트라는 창단한 지 10년 만에 3개로 늘었다. 1975년 베네수엘라 음악가 호세 안토니오 박사가 시작한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인 ‘엘시스테마’를 벤치 마킹해 인근 대학교 음대에서 악기를 기부하고, 지역 음악인들이 직접 단원을 지도해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최소화했다. 오산시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2012년 전국 학생오케스트라 300여 개 중 최우수 오케스트라에 선정될 정도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오산과 인접한 평택시 송탄에 있는 주한미군 공군부대(오산공군기지) 장병들도 재능기부에 참여했다. 주한미군 영어회화 수업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작해 매주 1회 90분씩 수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시즌이 끝난 뒤 재참여 의사가 93%에 이를 정도로 학생 만족도가 높다. 2011년 9월부터 코로나19로 중단되기 전인 2019년까지 8년에 걸쳐 수업에 참여한 학생만 400여 명, 선생님으로 활약한 미군도 200여 명에 달한다.
 
2012년에 시작한 ‘평생학습 배달강좌 런앤런(Run&Learn)’은 배움을 원하는 사람이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상식을 뒤집었다. 지역 주민 다섯 명 이상이 모여 원하는 교육이나 취미 강좌를 신청하면 강사가 직접 찾아가 가르치는 방식이다. 수강료도 공짜다. 배달강좌제가 시작되자마자 뜨거운 호응이 이어졌다. 대학생이 아르바이트하는 커피숍에서 고전인문학을 신청하거나, 젊은 엄마들이 젖 뗀 아이가 기어 다니는 거실로 서양미술사 강좌를 배달시키는 등 다양한 요구가 빗발쳤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2012년 국토해양부는 도시 활력 증진사업으로 선정해 국비를 지원했다. 곽 시장은 “삶의 현장 어디나 교실이 될 수 있다는 걸 일깨웠다”고 말했다.
 
배달강좌는 매년 600강좌가 개설돼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시민 2만8000명이 이용했다. 배달강좌가 인기를 끌자 시민들 사이에 같은 관심사를 가진 학습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최소 인원을 채우도록 한 게 지역 커뮤니티가 활성화하는 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배달강좌 강사는 시가 직접 역량 강화교육을 수료한 이들을 선발해 전문성을 확보한다. 경력단절 여성이나 은퇴자, 진로를 탐색하는 청년들에게 기회의 장이 되기도 한다. 오산시 관계자는 “평생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과 기술을 다시 이웃과 나누는 선순환이 배달강좌제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잠시 머무는 도시’에서 ‘정착하는 도시’로

오산시가 인공지능에 기반을 두고 조성하고 있는 스마트 시티 ‘운암뜰’ 투시도. 글로벌 AI 기업 엔비디아(NVIDIA)와 KT 등이 도시 개발 과정에 참여해 AI 중심 교육도시의 밑그림을 그린다. / 사진:오산시

오산시가 인공지능에 기반을 두고 조성하고 있는 스마트 시티 ‘운암뜰’ 투시도. 글로벌 AI 기업 엔비디아(NVIDIA)와 KT 등이 도시 개발 과정에 참여해 AI 중심 교육도시의 밑그림을 그린다. / 사진:오산시

평생학습이 접목된 혁신교육이 뿌리를 내린 뒤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사람이 찾아오는 도시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오산시가 빅데이터 분석 전문업체에 의뢰한 ‘가구 라이프 스타일 기반의 정주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인구수는 증가하고 전출률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주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인구 증가율은 경기도 전체에 비해 11.4% 높고, 가구 증가율도 경기도 대비 13.1% 높게 나타났다. 가구 전출률은 8.4% 감소했다. 오산시 인구는 2010년 16만 명에서 2021년 23만 명으로 43%가량 증가했다. 2019년의 정주 기간은 2010년에 비해 8.4개월 증가했다. 오산시에 거주하다가 관내에서 이사를 하는 ‘관내 이동’ 가구가 46%로 절반 가까이 됐다. 오산 인근 지역으로 떠나는 비율은 23.5%에 불과했다. 특히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경제력 있는 젊은 가정의 정주성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자녀가 어릴 때 ‘잠시 머무는’ 도시는 옛말이 된 셈이다. 교육 환경이 개선되자 시민의 만족도 역시 크게 높아졌다. 시민들의 정주 만족도는 2013년 36%에서 2017년 83.4%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현재 오산시민 평균 연령은 37.7세(2020년 말 기준)로 전국에서 젊은 도시 최상위권을 수년째 유지하고 있다.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체험형 학습이 학생들의 정서 순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2018년 경기도교육청의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오산시의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0.7%로 경기도 평균보다 0.2%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산시 관계자는 “체험학습 등 다양한 혁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학부모가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학생들의 정서 순화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산시는 규모가 큰 기업체가 거의 없는 베드타운이란 점을 고려하면 교육으로 차별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인접한 수원·화성·평택시의 경우 대기업과 신도시를 중심으로 젊은 인구가 지속해서 유입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차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18년에는 경기도 지자체 중 처음으로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았다.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는 지역사회 단위에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포함된 아동이 누려야 할 생존·보호·발달·참여의 4대 권리 보장을 이해하고, 유니세프가 정한 10대 원칙과 기준을 성실히 이행하는 도시를 대상으로 심의를 거쳐 인증된다. 아동친화도시 조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전담팀을 만들어 기본 이념을 체계화한 게 주효했다.
 
 
오산시의 혁신교육 시즌2는 ‘AI 특별도시’
10년에 걸친 혁신교육 시도가 뿌리를 내리면서 오산시는 미래 먹거리와 결합한 교육도시의 새 버전을 내놨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사회가 도래한 것이 촉매제가 됐다. 오산시가 내놓은 새로운 교육도시의 상(像)은 ‘AI(인공지능) 특별도시’다. 모든 정보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통용되는 비대면 세상에서 각종 IT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의 기술 지식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주역들에게 기본 소양으로 꼽힌다.
 
지난 2월 8일 오산시는 인공지능(AI) 분야의 글로벌 전문기업인 엔비디아(NVIDIA)와 ‘오산 AI 도시 및 모빌리티 파크 조성사업을 위한 포괄적 업무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컴퓨터의 핵심 부품인 GPU(그래픽처리장치) 제조업체로 잘 알려진 엔비디아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부문 세계 1위로 부상한 글로벌 기업이다. 스마트 시티와 스마트 리테일, 제조 로봇, 헬스케어, 5G 무선랜 플랫폼, 딥 러닝, 에지(edge) 컴퓨팅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협약에 따라 엔비디아는 스마트 시티로 개발하는 오산 운암뜰 단지의 인프라 마스터플랜 수립에 참여해 AI 관련 데이터센터, 솔루션, 컴퓨팅 등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마스터플랜이 수립된 뒤에는 인프라 건설에 필요한 장비와 전문 지식을 공급하고 입주 기업의 연구·개발과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멘토로 참여해 AI 생태계를 구성한다.
 
이렇게 조성된 스마트 시티를 핵심 기지로 삼아 4차 산업 혁명을 이끌 인재 육성에도 주력한다. 현재 운영 중인 메이커 교육센터와 각 학교에 구축할 메이커 스페이스를 통해 학생들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코딩·드론·3D프린팅 기술 등을 습득한다. 또 학교 내 모든 공간에 무선인터넷 시스템을 갖춘 에듀테크 기반 미래학교 12개를 조성하기로 했다.
 
앞서 교육부는 오산 세교고등학교와 운암고등학교를 ‘AI 교육 중점 추진학교’로 선정했다. 세교고는 광운대와 연계해 로봇수업을 특화했다. 운암고는 서울과학기술대와 함께 AI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할 예정이다. 또 택지개발이 진행 중인 세교2지구에 AI 특성화고 설립도 추진된다. AI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시제품을 개발할 수 있고, 스타트업을 통합 지원하는 오산창업해봄센터도 2023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학교와 지자체, 시민이 참여하는 오산시의 혁신교육 네트워크는 뿌리를 내렸다. 2018년부터 시작한 오산교육공동체 네트워크가 중심이 돼 혁신교육을 확산하고 학교 간 교류를 강화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네트워크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올해에는 오산지역 초·중·고 교사와 교육 관계자 252명이 참여해 20개 분과로 나눠 활동한다.
 
지난 10년간 오산시의 실험은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과거의 교육 도시는 좋은 학교와 학군이 필수 조건이었다. 그러나 오산시의 실험을 통해 주민이 원하는 교육 도시의 경쟁력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게 확인됐다. 겉으로 보이는 하드웨어보다 학교 울타리 바깥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찾도록 하는 알찬 콘텐트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콘텐트를 개발하고 모든 시민이 배움과 교육의 주체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유기적인 협력체계는 혁신교육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다. 도시를 살아 움직이게 하고 학교와 학교, 시민과 학생을 촘촘히 연결하는 혈관인 셈이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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