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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으르렁거리던 앙숙 미켈슨, 우즈 일깨울까

중앙일보 2021.05.26 00:03 경제 7면 지면보기
2019년 7월 디 오픈에 필 미켈슨이 홀쭉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넉넉한 뱃살은 사라지고 턱선은 살아났다. 미켈슨은 특별 조제 커피와 물만 마시며 자신의 몸을 완전히 리셋했다. 2019년이면 그의 나이 만 49세. 시니어 투어를 준비해야 할 때다. 대부분의 선수가 카트를 타는 시니어 투어에서 동료들과 “왕년에 내가 말이지…”라고 수다 떨 일을 기대할 때다. 그런데 그는 몸을 확 바꿔 나타났다.
 

우즈 그늘에 가린 2인자 미켈슨
51세에 최고령 메이저 우승 영예
선수 생명 거의 끝난 우즈에 자극
매사 대조적인 필생의 두 경쟁자
사실 가장 좋은 동반자가 아닐지

우즈

우즈

기자는 2019년 봄 타이거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이 미켈슨의 ‘리셋’에 영향을 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허리 수술로 고생하던 우즈가 재기해 우승했다. 그것을 본 미켈슨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 아니 ‘해야 한다’고 다짐했을 거다.
 
우즈와 미켈슨은 완전히 다른 선수다. 우즈는 오른손잡이, 미켈슨은 왼손잡이다. 우즈는 흑인, 미켈슨은 백인이다. 우즈는 냉정하게, 미켈슨은 열정적으로 경기한다. 우즈는 날렵해서 멋졌고, 미켈슨은 적당히 몸집이 있어 친근하게 느껴졌다.
 
과거 두 선수를 고양이와 개로 비교한 적이 있다. 우즈는 ‘타이거’라는 이름 그대로 고양잇과(科)다. 홀로 다니는 냉철한 승부사다. 사생활을 극도로 중시하며, 친해지면 경기할 때 만만하게 생각할까 봐 동료들에 곁을 내주지 않았다.
 
미켈슨. [UPI=연합뉴스]

미켈슨. [UPI=연합뉴스]

미켈슨은 반려견처럼 사교성이 좋다.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사인을 가장 잘 해주는 선수가 미켈슨이다. 가장 안 해주는 선수? 바로 우즈다. 식당 종업원에게 팁을 가장 많이 주는 선수가 미켈슨이다. 가장 인색한 선수? 그렇다. 우즈다.
 
가장 가족적인 선수가 미켈슨이다. 그가 우승하면 치어리더 출신인 미모의 부인과 딸들이 달려와 포옹하고 입을 맞춘다. 우즈로서는 질 수 없었다. 우즈는 모델 출신 엘린 노르데그렌과 결혼했다. 미켈슨을 제치고 최고의 금발 미녀 부인을 얻은 선수가 됐다.
 
미켈슨은 1999년 US오픈에서 우승 경쟁을 펼쳤다. 그 와중에 “출산을 앞둔 아내가 연락하면 우승 퍼트를 앞두고라도 바로 달려가겠다”며 삐삐를 차고 경기했다. 딸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가한다고 메이저 대회에 빠지기도 했다.
 
우즈는 일이 우선이었다. 우즈는 부인의 첫 출산이 임박했던 2007년 US오픈에 갈 때 삐삐 같은 건 챙기지 않았다. 운 좋게 경기가 끝난 뒤 아이가 태어나 출산을 지켜볼 수 있었다. 섹스 스캔들 이후 아내가 “가정이 안정될 때까지 2년간 골프를 접어 달라”고 간청했지만 거절하고 이혼했다.
 
개와 고양이는 친하기 어렵다. 2004년 라이더컵에서다. 미국 캡틴은 팀의 원투 펀치인 우즈와 미켈슨을 같은 조에 묶었다. 기선 제압용 필승 조였다. 그러나 우즈와 미켈슨은 경기 중 서로에게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매치에서 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두 선수는 “사이가 나빠서 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다음 경기에서도 똑같이 심드렁했고 또 졌다.
 
우즈가 데뷔한 1996년 이래 둘은 20년 넘게 서로 으르렁거렸다. 우즈는 미켈슨이 백인 기자들의 지원 덕분에 과도한 인기를 얻는다고 여겼다.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보이게 하려고 팁도 더 후하게 준다고 의심했다. 둘은 공식 인터뷰에서 서로를 “뛰어난 선수”라고 했지만, 뒤에서는 서로 욕했다. 우즈의 어머니는 미켈슨을 ‘필, 팻 보이(뚱뚱보 필)’라고 불렀다.
 
미켈슨은 불운한 선수다. 불세출의 스타인 우즈 그늘 속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21세에 아마추어로 PGA 투어에서 우승했는데, 메이저 대회에 유난히 강한 우즈 탓에 30대 중반까지 ‘메이저 우승을 못 하는 최고 선수’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미켈슨은 우즈에게 지지 않으려 격렬히 저항했고, 우즈라는 벽을 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다가 골프 역사상, 아니 주요 스포츠 종목 역사상 최고령인 51세에 메이저 우승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우즈는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났다. 지난 연말 허리 부상이 재발했고, 설상가상으로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우즈의 복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미켈슨을 본 우즈는 어떻게든 도전에 나설 것 같다.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시간과 싸워 미켈슨이 이겼다. 미켈슨이 했다면 우즈는 자신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여길 거다.
 
우즈는 트위터에 “50세에 미켈슨이 다시 우승하는 걸 보니 정말 감동적이다. 축하해!!!”라고 썼다. 이에 미켈슨은 “나는 너의 빠른 복귀를 응원한다”고 답했다.
 
미켈슨은 2주 전 트위터에 “나는 여러 번 실패했고, 그 때문에 많은 걸 배웠다. 패배감을 느끼는 대신 더 열심히 일할 에너지로 삼았다. 그러니 실패를 받아들이는 데 동참하라.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그것들을 이용하자”고 적었다. 우즈도 이걸 봤을 거다.
 
우즈와 미켈슨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둘은 오랫동안 미워했던 이 지긋지긋한 경쟁자가 사실은 가장 좋은 동반자였다는 걸 서로 느끼고 있을 거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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