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월간중앙] 구루와 목민관 대담

중앙일보 2021.05.26 00:00
■ “소외감, 박탈감이 홀대론과 맞물려 충청 집권론으로 발전 중”
■ “충남은 수소산업 중심지이자 기후·에너지 대전환의 메카”

김홍신 작가와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말하는 ‘충청 별의 순간’ “헤게모니는 돌고 도는 것… 나라의 중심 충청으로 온다”

■ “기업, 지역균형발전 생각한다면 수도권 설비 증설 자제해야”
김홍신 작가(왼쪽)와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5월 5일 충남 홍성 충남도청사 내 잔디밭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홍신 작가(왼쪽)와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5월 5일 충남 홍성 충남도청사 내 잔디밭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언젠가 뽀빠이 이상용 선배가 그랬어요. ‘충청도는 말만 느릴 뿐이지 잘 뛰지, 사람 잘 웃기지… 대답은 잘 않지만 속은 다 가지고 있다’고 말이죠. 충남 서천 출신인 이상용이 본 충청인들의 자화상이랄까요. 실제로 한국을 대표하는 마라토너와 개그맨 중에 유독 충청 출신이 많은 거 같아요. 이봉주, 지영준 선수가 한 시대를 풍미했고, 개그맨의 절반이 충청 출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익살꾼을 다수 배출한 곳이죠.”
 
한국 최초 밀리언셀러 소설 [인간시장]의 저자이자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홍신 작가는 충청인들의 내면세계를 이렇게 묘사했다. 김 작가는 충청 기질의 근저에 ‘은근’과 ‘끈기’가 흐른다고 본다. 이런 정체성 자양분 위에 충청은 유명 마라토너와 숱한 웃음 제조기를 양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홍신 작가 또한 천성이 느긋한 충청인(공주 출생, 논산 성장)이다.
 
그러면서도 충청도는 충절의 고장, 선비의 본향임을 내세운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충(忠) 자가 들어가는 고장은 충청도가 유일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가운데 중(中), 마음 심(心)으로 이뤄진 충(忠) 자체가 중심을 뜻한다”면서 “충청은 양극단으로 치우침 없이 늘 희망의 모델을 만들어왔다”고 자부한다.
 
그런 충청도가 최근 들어 실질적인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2019년 전국 광역지자체 명목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충남은 경기(478조원), 서울(433조원)에 이어 3위(107조원)에 올라섰다. 인구와 산업시설이 밀집한 부산, 경남을 제치고 3대 생산기지로 발돋움한 것이다. 게다가 1인당 GRDP는 울산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는 ‘충남의 힘’이라고 하겠다.
 
장래도 밝은 편이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지난 4월 수도권 중소벤처기업 2188개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지역으로 이전한다면 절반 이상(57.9%)이 ‘대전·세종·충청’으로 가겠다고 응답했다. ‘부산·울산·경남(27.3%)’, ‘광주·전라(16.2%)’, ‘대구·경북(14.0%)’을 모두 더한 것보다 높은 선호를 얻었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것은 물론이고 전국 어디서든 접근성이 뛰어난 곳이 충청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이득을 누릴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안고 있다.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면 수도권으로 옮겨가는 기업은 주로 영·호남권이다. 반대로 수도권 규제를 강화하면 수도권에 인접한 충청권이 고스란히 반사이익을 얻는다.
 
충청권을 중심으로 차기 대통령의 출현을 기대하는 여론도 높아졌다. 아산 출신인 윤보선 대통령(1960~1962년 재임) 이래 반세기 이상 지역 출신 대통령 배출이 번번이 무산되면서 안으로 축적된 충청인들의 실망과 좌절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충청대망론’으로 분출되리라는 관전평이다.
 
이미 행정수도 격인 세종시까지 장착한 충청권은 이제 정치·경제·행정 등 다방면에서 ‘별의 순간’을 맞이하는 걸까? 충남 도정(道政)을 이끄는 양승조 지사와 지역 정서에 밀착한 김홍신 작가의 대담은 상승세를 타는 충청의 잠재력과 야망, 에너지를 확인해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홍성 충남도청사에서 가진 두 사람의 대담은 열띤 분위기 속에서 3시간을 훌쩍 넘기며 진행됐다.
 
당초 이번 대담은 충청의 매력과 진가를 살피고 지방자치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취지로 마련됐다. 그런데 요즘 ‘충청대망론’이 지역의 이슈를 압도하는 형국이다. 양 지사 본인도 대선 출마를 결심했으니 말이다. (양 지사는 대담 1주일 뒤인 5월 12일 세종시 지방자치회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충청이 ‘핫(hot)’하다고 해야 하나?


“이제 충청도에서도 때가 됐다”

양승조 충남도지사_이미 충청은 대한민국의 중심이며 대한민국의 기운이 충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 있다. GRDP뿐만 아니라 충남의 무역흑자도 다른 지역에 견줘 압도적이다. 농업·수산업·전통산업·첨단산업이 조화를 이루는 충남도가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한 지도 10년이 다 돼간다.
 
김홍신 작가_ 그렇다. 헤게모니는 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늘 돌고 돈다. 과거 나라의 힘이 경상도, 전라도에 있었다면 이제는 돌고 돌아 시차가 있을지언정 충청으로 올 것 같다. 이런 흐름의 상징적 출발점이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의 탄생이다.
 
양 지사는 대선 출마를 위한 당내 경선 참여 결심은 굳힌 건가?
 
양 지사_ 그렇다. 당초 5월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려고 했는데 이날이 문재인 정부 출범 4주년이고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열린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틀 늦춰 12일 출사표를 던진다.
 
김 작가_ 저도 그쪽(정치)에 있어 봐서 아는데 충청이 호남보다 인구가 50만 명 정도 많다. 그래서 지역구 국회의원 수도 늘어나야 하고 대망론도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김종필 전 총리(부여 출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예산 연고), 이인제 전 의원(논산 출신), 이완구 전 총리(청양 출신)에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음성 출신)까지 큰 인물이 나오기를 갈망한 고장이 바로 충청이다. 최근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뜨면서 다시 대망론이 퍼지고 있다. 윤 전 총장의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 논산 출신이다. 서울에서 충청 사람 만나면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한다. “이제 충청도에서도 때가 됐다”고.
 
양 지사의 대선 출마는 다소 의외라는 반응도 있다. 어떤 계기가 양 지사의 출마 결심을 촉발했는가?
 
양 지사_ 현재 충남 지역 국회의원은 민주당 6명, 국민의힘 5명으로 여당이 박빙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21대 충남 총선은 코로나19 K방역 성과에 힘입어 민주당이 앞섰을 뿐 충남은 기본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곳이다. 지지층 분포를 따지자면 민주당 45 대 국민의힘 55, 혹은 민주당 4 대 국민의힘 6 정도로 야당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내 충남 출신 누군가가 깃발을 들지 않으면 충남 표심은 (국민의힘 쪽으로) 쭉 쏠릴 수밖에 없다.
 
더 크게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결단이기도 하다. 더불어 잘 사는 대한민국이 아니면 나라에 미래가 없다. 국민의 60%가 여건이 허락하면 이민을 하겠다는 나라, 준비되지 않은 채 맞는 고령화 사회, 의료 빈곤, 저출산, 양극화, 지방의 소멸, 청년의 좌절…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나라에 큰일이 나겠더라. 이런 위기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대처하지 못해서 1997년 외환위기를 당했고, 1950년 전쟁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됐고, 1906년 나라의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민족과 국가가 절단(끝장)이 나는 것이다. 지금 절단 날 만한 통계가 너무 많은 대한민국이다. 불난 집에서는 ‘불이야’ 소리를 질러야 한다. 당내 경선을 통해 ‘불이야’ 소리를 지르고자 한다. 물론 충남지사로 충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 불난 줄도 모르고 자는 이들에게 화재 경보를 울리고자 당내 경선에 참여하기로 했다.
 
 

“불난 줄 모르는 대한민국에 화재 경보 울리고자 출마”

김 작가_ 양 지사가 어려운 결정을 했다. 하지만 우리 정치에서는 대선 출마 선언 후에 오는 후폭풍이 있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닥쳐올 시련이나 질시하는 세력까지도 다 고려해야 한다. 양 지사는 국회의원 4선을 했다. 그런 걸 다 분별하고 결정한 출마 선언 아니겠나. 흔한 말로 시련과 고난을 통과하지 않으면 신화와 역사가 되지 않는다. 모든 지도자는 시련과 고난을 겪은 사람들이다. 지금보다 월등해지려는 사람이 고난의 시기를 뛰어넘기가 아주 어려운 게 또 우리 사회이기도 하다. 양 지사도 많은 시련과 고통, 소외, 불만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당 지도부는 지도부대로 처지와 입장이 있을 것이고, 또 당내 다른 대선주자들도 양 지사의 출마를 놓고 이해타산을 할 것이다.
 
양 지사_ 시련과 고통의 과정을 기꺼이 가고자 한다. 함께 정치했던 의원들 입장에서는 같이 달리던 내가 혼자 앞장서 튀어나가면 심정적으로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나는 흠잡힐 만한 정치를 한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시기와 우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마라톤 풀코스를 아홉 번 완주했다. 마라톤은 경쟁자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어서 페이스를 지켜야 이기는 스포츠다. 저는 승부를 걸 때는 피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2010년 세종시 원안 추진을 촉구하는 단식을 22일간 결행하기도 했다. 충청의 상징인 은근과 끈기는 내가 살아온 여정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김 작가_ 상대가 있기에 내가 있는 법이다. 당장 이번에 결실을 보지 못하더라도 ‘어, 양 지사는 뭔가 다르네’라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기존 정치인이 보여주지 않는 새로운 걸 보여주면 좋겠다.
 
‘충청대망론’은 이른바 ‘충청홀대론’과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이 나돌더라.
 
양 지사_ 박정희 정권의 유신 이후 충청도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영·호남 양대 정치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충청은 불이익을 당하기 일쑤였다. ‘충청홀대론’이 지역의 소외감을 대변한다. 충청 차별의 사례는 도처에 널려 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지방은행 구조조정이 뒤따랐다. 부산, 경남, 대구, 경북, 광주, 전남·북 등 어딜 가도 지역을 대표하는 은행이 있는데 유독 지역에 하나 있던 충청은행이 1998년 퇴출당하면서 충청만 향토 은행이 없는 유일한 지역으로 남아 있다. 다른 시·도에는 각기 몇 개씩 있는 KBS한국방송을 충남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혁신도시 지정도 그렇다. 충남은 세종시가 조성될 때 연기군을 그쪽에 떼어줬다. 그런데 나중에 혁신도시 지정에서 (세종시가 있다는 이유에서) 우리만 쏙 빼더라. 지난해 도민이 힘을 모아 어렵게 혁신도시 지정을 쟁취했다. 서산민항 건도 그렇다. 서산공군비행장에 민항을 유치하는 이 사업은 500억 정도 예산이면 충분히 가능한데도 예산타당성조사를 하자고 하더라. 최소 7조원, 최고 28조원이 소요되는 가덕도 신공항은 여야가 합의로 예산 타당성조사를 면제해주면서 서산민항 유치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걸 어떻게 상식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나. 이런 소외감, 박탈감이 홀대론과 맞물리면서 충청이 집권해야 한다는 여론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김 작가_ 충청은 한국의 정신세계를 대변하는 것 같다. 제가 학창시절 국문과에서 한국의 정신으로 배운 게 은근과 끈기였다. 끈기가 없으면 하기 어려운 게 학문이다. 교수님은 이를 일러 우리 민족의 정서적 DNA라고도 했다. 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 명을 돌파한 일곱째 국가, 식민지에서 세계 경제 대국으로 진입한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의 저력은 바로 이 은근과 끈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선비는 국가에 애정을 갖고 바른말을 하는 존재였다. 이웃과 백성을 돌보는 정신적 지주 역할도 하다가 나라가 위험에 처하면 앞장서서 타개하는 모범을 보였다. 이런 정서적 배경이 충청 지역에 깔린 것 같다. 계속 참다 보면 자칫 체면주의자가 될 수도 있음은 경계해야 한다. 참을 때는 참지만, 공익을 위한 분노는 표출해도 좋은 것이다. 속에 어떤 마음이 있는데 그걸 표출하지 않으면 무색무념하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결과로는 자기 정신을 발휘하는데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니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적기(適期)에 자기 의사를 적극 밝히고 참여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참을 때는 참지만, 공익을 위한 분노는 표출해도 좋아”

5월 12일 세종시 지방자치회관에서 열린 양승조 충남지사의 대선 출마 기자회견장에 모인 지지자들. / 사진:연합뉴스

5월 12일 세종시 지방자치회관에서 열린 양승조 충남지사의 대선 출마 기자회견장에 모인 지지자들. / 사진:연합뉴스

양 지사_ 맞는 말이다. 은근과 끈기는 충청의 상징이다. 그래서 마라톤 선수가 많다. 이봉주가 충남 출신이고 그의 뒤를 이은 지상준도 충남이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상징은 충청이었다. 독립운동가 규모에서는 경북이 더 많을 수 있지만, 시대적 획을 그은 지도자들 상당수가 충청에 뿌리를 둔 분들이었다.
 
김 작가_ 근세사에서 독립운동 투사가 가장 많은 고장, 일본 경찰이 부임지로 가장 꺼리던 고장이 충청이다. 또 우암(尤菴) 송시열, 사계(沙溪) 김장생, 명재(明齋) 윤증, 신독재(愼獨齋) 김집 같은 조선 최고의 유학자를 길러내고 윤봉길·김좌진·한용운·유관순 등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숨결이 밴 충청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사제이자 올해 유네스코 세계기념 인물로 선정된 김대건 신부도 당진에서 태어나신 분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할아버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충남 연산에서 포교활동을 하다 서울로 압송돼 순교하는 등 충청은 김 추기경의 뿌리와 맞닿은 곳이기도 하다.
 
중앙집권주의는 강화되고 수도권의 구심력은 더 맹위를 떨치는 요즘이다. 지방의 위기감이 증폭되는 것 같은데.
 
양 지사_ 이대로는 대한민국이 온전하기 어렵다.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 절반 이상이 몰려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에다 교통은 마비되고 사회 인프라 조성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다. 그러면 또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는 등 악순환의 연속이다. 수도권은 비대해서 숨쉬기 어렵고 지역은 영양실조로 기아에 허덕인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5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30년 내 인구 감소로 소멸할 위험이 있는 지자체가 105개에 달했다. 이렇게 가면 지방은 죽는다. 지방분권, 지역 균형발전 없이는 대한민국은 망국(亡國)으로 가게 된다. 인구 감소는 필연적으로 행정비용 증가를 가져와 비효율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게 되고 지방대가 문을 닫으면서 지역의 공동화는 가속화한다. 나라가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국가균형발전이 한국 사회의 의제가 돼야 하는 이유다. 이런 구조를 바꾸자면 사회적 합의에 따른 국가적 결단이 요구된다.
 
 

“문 대통령 존경하지만 3기 신도시는 반대”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충남 보령시 오천면 보령석탄화력발전소 전경. 충남도는 지난해 말 보령 석탄화력발전소 1, 2호기를 폐쇄했다.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충남 보령시 오천면 보령석탄화력발전소 전경. 충남도는 지난해 말 보령 석탄화력발전소 1, 2호기를 폐쇄했다.

김 작가_ 대한민국은 산업화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자랑스러운 업적을 달성했다. 그런데 그 기적을 이룬 국민은 기쁨을 잃어버렸다. 배고픔이 가시니 배 아픔이 찾아왔다. 이를 극복해야 제대로 된 선진국에 진입한다. 우리보다 앞서간 선진국은 모두 분권의 과정을 거쳤다.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수도권 중심 발전이었다. 이제는 지역이 균등하게 발전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 분권형 개헌도 중요하고 그게 앞서 현행 헌법 체계에서도 권력을 분산하는 운용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지방분권으로 갈 수밖에 없다.
 
양 지사_ 지방자치와 관련해 인사권은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보장되지만 재정 분권은 갈 길이 멀다. 충남도 예산의 경우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77 대 23 정도다. 지방정부가 늘 중앙정부에 매달려야 하는 구조를 개선할 때 지방분권을 실효성을 가진다.
 
김 작가_ 아마 지방분권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면 지금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코로나19 백신 개발에도 가속도가 붙었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에 재정 자율성이 확장됐다면 누군가는 백신 개발에 성공하지 않았을까. 현 정부는 지난해 코로나19 방역에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백신 개발과 도입에 실기한 느낌이다. 재정 분권이 확립됐다면 아마도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자기 지역에 특화된 백신 사업에 집중 투자했을 것이고 그에 비례해 유의미한 성과를 냈을 수도 있다.
 
양 지사 말대로 이대로 수도권 집중이 심화한다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겠다. 부동산 가격만 하더라도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더 벌어지지 않을까?
 
양 지사_ 나는 문 대통령과 함께 정권을 만든 사람이고 문 대통령을 무한히 존경하지만 이런 마당에 3기 신도시를 만들면 어떻게 되겠나. 그게 끝이 아니고 4기 신도시도 나올 것이다. 나는 3기 신도시 반대한다. 지금 같아서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하고픈 심정이다. 지난 4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11억 원을 넘었다. 충남의 웬만한 도시 아파트 가격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김 작가_ 나는 서울에서 37년째 같은 집에서 산다. 만약 이사를 세 번 했다면 집이 세 채로 불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만큼 서울의 집값은 기형적으로 폭등하고 있다. 부동산 시세는 지방의 열패감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산 아파트도 서울의 상승폭과 지방의 상승폭은 비교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큰 격차를 보인다. ‘서울에 집을 샀으면 가만히 앉아서 수억에서 10억 이상 버는 데 지방에 눌러앉아 이게 뭔가’라는 자괴감이 침체한 지역의 분위기를 더 무겁게 한다. 이런 박탈감, 열등감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도전이다. 비수도권에 사는 분들의 열패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우리 사회가 뭔가를 제시해야 한다. 지역이 독자적으로 발전케 하는 분권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가 되리라 생각해본다.
 
 

“기본소득 예산 62조원으로 공공주택 25만 채 짓자”

서산시와 태안군의 해안으로 둘러싸인 가로림만. 충남도는 이곳에 친환경 ‘해양정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서산시와 태안군의 해안으로 둘러싸인 가로림만. 충남도는 이곳에 친환경 ‘해양정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양 지사_ 흔히 정부의 주택정책이 잘못됐다고 하지만 거기엔 과장도 섞여 있다. 최근의 LH 직원 비리 같은 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부터 누적돼온 구조적인 일탈의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현 정부가 공급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건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새로 지어진 주택이 489만 채에 달하는데 이 중 절반인 248만 채 정도가 다주택자에게 돌아갔다. 이러면 주택을 늘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현재 유주택자가 1200만 명, 무주택자가 880만 명 정도다. 유주택자의 1%인 12만 명이 집을 평균 7채 가졌고, 10%인 120만 명이 평균 3.5채를 보유한다. 이런 구조에서 주택을 공급하면 투기꾼 배만 불리는 격이다.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공급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공공주택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급 정책 기조를 가져가야 한다. 투기 세력에 관대해서는 부동산 시장 안정이 요원하다. 이를테면 3주택자에게는 양도세를 90%까지 부과한다는 각오로 투기 근절에 나서야 한다. 충남도는 주민 주거안정 차원에서 ‘충남형 더 행복한 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이 주택은 59㎡ 기준 임대료 5000만원에 월세가 15만원으로 다른 공공주택보다 훨씬 싼 편이다. 신혼부부가 1자녀를 낳으면 임대료의 50%, 2자녀를 낳으면 100%를 지원한다. 2022년까지 총 1000호를 공급할 계획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제안한 전 국민 기본소득은 효과가 제한적이다. 모든 국민에게 매월 10만원씩 준다고 하던데 이에 드는 연간 예산 62조원을 차라리 공공주택 25만 채 짓는 데 들이는 게 효율적일 것이다.
 
김 작가_ 주변에 집을 두세 채 가진 분들이 많다. 집을 홈(home)이 아닌 재산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내게 집은 홈인가? 나는 적어도 자존심은 지키며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부동산 갖고 장난하는 세력을 막는 게 국가의 정책이고 책무다. 현 정부는 그걸 못 막았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두고두고 정권의 꼬리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나타난 젊은 층의 표심은 분노한 것으로 와닿았다. 주거 문제가 꼬인 데다 결혼과 출산, 보육에 이르기까지 젊은 층이 가정을 이뤄 살기가 무척 불편한 환경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산타당성 조사를 해보면 인구가 적은 지역은 늘 불리한 평가를 받는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효율성, 합리성의 잣대로만 정책을 재단하는 경향이 심화하고 있다.
 
김 작가_ 용인에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간다는 소식에 현지 부동산 가격이 들썩인다고 하더라. 안성 등 인근 지역에서는 오염원 배출 등의 문제로 반발하기도 한다. SK하이닉스가 왜 굳이 용인에 대단위 생산기지를 조성하려는지 그 사연 또한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반도체는 어차피 수출로 먹고사는 업종 아닌가. 땅값도 싸고 수출하기도 편한 비수도권 해안 쪽에 자리를 잡는다면 좋을 텐데…. 아마도 인력 수급 등의 사정이 있겠지만, 현지의 대학에 반도체 관련 학과를 세우면 노동력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기업도 지역균형발전과 생산 활동의 양립을 추구하는 시대가 오리라 본다.
 
양 지사_ 타당성, 효율성을 근시안적인 잣대로 재단하면 나라가 함정에 빠지기 쉽다. 기업이 인력을 따라가는 시대는 지났다. 좋은 회사를 따라 인력이 이동하는 시대 아닌가. 광양에 있는 포스코, 아산에 있는 현대자동차에 인력이 부족해 문제가 된 적이 있는가. 충남은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 19%를 자랑한다. 이는 삼성전자라는 세계 초일류 기업이 아산에 있기 때문이다. 기업도 지역균형발전을 고민해야 한다. 인력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수도권에 공장을 짓는 것은 기업 편의적인 발상이자 국가 미래는 안중에 없는 선택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노화 지표인 텔로미어, 한국인이 유독 짧은 이유

양승조 충남도지사와 김홍신 작가는 지역균형발전과 분권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임을 강조한다.

양승조 충남도지사와 김홍신 작가는 지역균형발전과 분권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임을 강조한다.

그동안 충남도는 초미세먼지, 온실가스 배출량 전국 1위를 기록했다. 대기오염의 최대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지적을 받아오다 최근 들어 화력발전소를 폐쇄하는 등 에너지 전환에 나섰다고 들었다.
 
양 지사_ 전국 석탄 화력발전소 58기 중 28기가 충남에 집중되어 있다. 대한민국 경제 기적을 위해 흘린 충남의 ‘눈물이자 고통’이었다고 본다. 충남도는 지난해 보령 화력발전 1, 2호기를 폐쇄했고 2032년까지 도내 화력발전소 14기가 문을 닫을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해 천안·보령·논산·당진 등 충남 9개 시·군을 수소 분야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충남도의 수소에너지 전환 정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하셨다. 충남은 국내 수소산업 중심지로 도약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충남이 대한민국 그린 대 전환을 선도하는 신호탄”이라며 “한국판 그린뉴딜 총력전을 선도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는 충남이 기후·에너지 대전환의 메카로 부상했다는 방증이다. 나아가 충남도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사업도 병행한다. 국내 최대 갯벌이자 세계 5대 갯벌의 하나인 가로림만에 해양을 축으로 하는 정원도 만들 계획이다.
 
소설 [인간시장]이 세상에 나온 지도 꽤 오래다. 당시와 비교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행복하고 발전한 것인가?
 
김 작가_ [인간시장]을 펴낸 게 1981년이었다. 그때보다 먹고사는 게 윤택해지고 세상이 밝아진 건 사실이다. 세상은 밝아지고 좋아진 거 같은데 좀 이상한 세상인 듯도 하다. 뒤로 돌아서서 하는 나쁜 짓들이 그때보다 훨씬 많아졌다. 더 비열하게 잔인한 세상, 비겁하게 못된 세상으로 가는 건 아닌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문제는 행복도에 있다. 이게 경제·사회 발전에 발맞춰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행복도 꼴찌의 나라 아닌가. 짧은 시간 내에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애절하게, 간절하게 산 세월이 너무 길었다. 노화의 지표인 텔로미어(염색체의 말단에 존재하는 반복적인 염기서열을 가지는 DNA 조각)의 경우 한국인들은 유난히 짧다고 한다. 과당 경쟁에 내몰린 결과다. 그래서인지 말년의 한국인은 10여 년을 시름시름 앓다가 끝낸다. 행복도가 낮으니까 그렇다. 지방에 살면 더 힘들다. 요즘 어딜 가도 부동산이 화제에 오르는데, 같은 평수의 경우 서울과 지방은 4~5배 차이가 보통이다. 가뜩이나 행복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비수도권은 더 각박한 여생을 살아야 하는 곳으로 전락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자치(自治)와 분권의 의미를 더 자주 되새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박성현 지역발전연구소 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김성태 객원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