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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끌려가자 분노의 투사 됐다, 벨라루스 잔다르크는 누구

중앙일보 2021.05.25 17:17
지난해 7월 야권 대표 대선 후보로 나서 유세 중인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 AP=연합뉴스

지난해 7월 야권 대표 대선 후보로 나서 유세 중인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 AP=연합뉴스

 
지난 23일(현지시간) 전투기까지 동원해 민항기를 강제 착륙시킨 벨라루스의 독재자가 뉴스의 중심으로 급부상했지만, 이 동유럽 국가의 민주화 투쟁은 수년간 진행 중이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1994년 벨라루스 독립 이후 권좌를 독점하면서 그에 대한 투쟁의 목소리는 높아져 왔다. 특이한 것은 야권 지도층에 유독 여성이 많다는 점. 외신은 이들을 ‘벨라루스의 잔다르크’라고 부른다. 지난해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추천됐다.  
 
벨라루스의 반독재 시위 현장. 지난해 8월 대선 직후 모습이다. 평화시위로 유명하다. AP=연합뉴스

벨라루스의 반독재 시위 현장. 지난해 8월 대선 직후 모습이다. 평화시위로 유명하다. AP=연합뉴스

 
루카셴코 대통령이 미그29기(MiG-29)까지 띄우면서 체포한 인물은 로만 프로타세비치(26)다. 뉴욕타임스(NYT)ㆍBBC 등 외신은 24일 “프로타세비치는 누구인가”라는 등의 제목으로 그에 대한 인물 탐구를 집중적으로 쏟아냈다. NYT는프로타세비치의 체포를 두고 영화 ‘제이슨 본’ 시리즈의 모든 요소를 갖춘 드라마라고 짚었다. 
 
벨라루스의 잔다르크들과 프로타세비치는 긴밀한 협력관계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시위대 진압을 위해 실탄 발포는 물론 인터넷 차단, 언론인 탄압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이 프로타세비치의 텔레그램 채널, 넥스타(Nexta)였다. 정권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텔레그램을 통해 시위 일정 및 장소를 공유하고, 해외에 상황을 알렸다. 벨라루스의 잔다르크들에겐 긴요한 채널이요, 루카셴코에겐 눈엣가시였다.  
 
프로타세비치의 2017년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프로타세비치의 2017년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프로타세비치가 탑승했던 강제착륙 항공기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벨라루스 이웃 국가인 리투아니아 도착 예정이었다. 왜 하필 아테네였을까. 잔다르크대표 인물 격인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의 동선을 보면 의문이 풀린다. 티하놉스카야가 그리스에서 경제 관련 회의를 열었고, 그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체포 및 구금을 피하기 위해 이웃국가인 리투아니아로 2019년 망명했다. 티하놉스카야 역시 리투아니아로 지난해 망명했다.  
 
벨라루스의 반독재 운동의 중심엔 여성들이 있다. =연합뉴스

벨라루스의 반독재 운동의 중심엔 여성들이 있다. =연합뉴스

 
티하놉스카야는 벨라루스 민주화운동의 얼굴과 같은 존재다. 지난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선 야권 대표 후보로 입후보했고, 부정선거라는 의혹 속에서도 10% 가까운 득표를 기록했다. 실제 득표는 더 높았을 거라는 게 야권 및 서구 언론의 분석이다. 루카셴코 대통령이 비밀리에 기습 취임식을 열자, 티하놉스카야는 “이건 광대극”이라며 “아무도 당신을 벨라루스의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선 결과 불복을 선언하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장을 접수하러 가다 당국에 구금됐다. 하루 뒤 풀려난 그는 열 살 된 아들, 다섯살 딸과 함께 리투아니아행을 택했다.    
 
티하놉스카야가 처음부터 민주화 투사였던 건 아니다. 그는 평범한 영어 교사였다. 그러나 남편이 야권 성향의 블로그를 운영하다 정권에 체포된 뒤 분노의 투사로 변신했다.  
 
마리아 콜레스니코바. 지난해 시위 현장에서의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마리아 콜레스니코바. 지난해 시위 현장에서의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또 다른 잔다르크들 역시 벨라루스의 독재로 인생 항로를 틀었다. 베로니카 체프칼로는 외교관의 부인이었다. 그러나 미국 및 멕시코 주재 벨라루스 대사였던 남편의 따라 시위 현장으로 나갔다. 남편이 정권에 항거하는 의미로 대선 후보로 등록하려다 거부당하고 체포된 뒤였다. 그 역시 체포 위협에 시달리다 러시아로 망명했고, 계속 반정권 시위에 가담하고 있다.  
 
가장 마지막까지 벨라루스에 남아있던 잔다르크는 마리아 콜레스니코바다. 1982년생인 그는 독일을 넘나들며 연주 생활을 하던 플루트 연주자였다. 그는 체프칼로와 함께 뜻을 모아 티하놉스카야를 대선 후보로 옹립하는데 핵심 역할을 했고, 유세장에서도 에너자이저 같은 존재로 활약했다. 그러나 대선 뒤인 지난해 9월 그는 돌연 실종됐다. 이후 당국에 의해 구금 중인 사실이 밝혀졌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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