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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4500만원 세금 4800만원···다세대 주인 "국가가 배신"

중앙일보 2021.05.25 05:00 종합 8면 지면보기
서울 송파구의 한 다세대ㆍ다가구 동네의 모습.         사진 한은화 기자

서울 송파구의 한 다세대ㆍ다가구 동네의 모습. 사진 한은화 기자

서울 송파구 송파동의 5층짜리 다세대 주택(대지면적 280㎡) 집주인인 박계자(68)씨는 건물의 2~4층 11가구(원룸 등)를 세주고 5층에는 본인이 산다. 19년째 한 집에서 사는 그는 지난해 정부의 주택임대사업자 자동 말소 조치로 졸지에 집 12채(공시가격 23억5000만원)를 가진 다주택자가 됐다. 다주택자가 되면서 박씨가 올해 내야 할 보유세는 4800만원이다. 종합부동산세(3700만원)와 그에 따른 농어촌특별세(종부세의 20%)를 합한 금액이 4400만원이다. 공시가격 23억7000만원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전용 84㎡) 집주인이 납부할 종부세의 8배다.  
 

송파동 다세대주택 소유자 박계자씨
임대사업자였다가 지난해 등록말소
같은 공시가 아파트 대비 종부세 8배
다주택자로 분류돼 각종 규제 폭탄

박 씨의 임대소득은 한 해 4500만원이다. 박씨는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며 살았는데 배신당했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주택임대사업자 및 다주택자=투기꾼’이라고 규정하고 규제를 쏟아낸 결과다. 다음은 박씨가 보내온 이메일이다. 
 
 종합부동산세 납세고지서 겸 영수증(납세자용) 중앙포토

종합부동산세 납세고지서 겸 영수증(납세자용) 중앙포토

저는 연말에 받게 될 종부세 고지서 때문에 요새 밤잠을 설칩니다. 한 집에서 20년 가까이 사는 저한테 정부는 투기꾼이라며 종부세를 포함해 총 4800만원의 보유세를 내라고 합니다. 월세 등을 포함해 제가 1년에 버는 돈 4500만원보다 더 많습니다. 
 
1999년도에 단독주택이었던 집을 사서 살다가 2003년에 5층짜리 다세대 주택으로 지었습니다. 세대주가 하나인 다가구 주택으로 짓지 않고 다세대 주택으로 지은 것을 이렇게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저는 정부가 하라는 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당시 주차난 때문에 구청에서는 주차대수를 더 넉넉히 확보해야 하는 다세대 주택을 지으면 인허가를 쉽게 내준다고 했고 저는 따랐습니다. 1층을 필로티 구조로 띄워 주차장을 넉넉히 만들고 2~4층에는 37㎡ 규모의 원룸 등 11개와 5층에 제가 사는 집을 포함해 12가구가 사는 집을 지었습니다.  
 
애초에 분양할 목적이 아니었고, 2006년 5년 기한의 임대사업자로 등록했고 쭉 자동연장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임대차 신고 때문에 구청에 갔다가 9월에 자동말소 대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폐업하지도 않았는데 설마 그럴까 했는데 현실이 되더군요. 
 
종부세 폭탄 맞는 다세대주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종부세 폭탄 맞는 다세대주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저는 강제로 임대사업자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정부는 임대사업자가 집값을 올린 주범이라고 하더군요. 집을 지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19년간 같은 집에서 사는 세입자가 두 집이나 있는데 저한테 투기꾼이라고 합니다.    
 
다주택자로 분류되니 장기보유나 고령자 등 어떤 공제도 받을 수 없습니다. 아파트 12채를 가진 사람처럼 종부세율도 높게 매깁니다. 임대사업자로 새로 등록하려고 보니 기존에 있던 양도세 중과배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새로 시작해야 하더군요. 결국 집을 팔려고 내놨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는 요즘 다세대 주택을 찾는 사람이 부쩍 줄었다고 하더군요. 건물 전체로는 물론이고 한 가구씩으로도. 저 같아도 안 살 것 같습니다. 원룸 하나를 사도 1주택자가 되고, 통으로 사면 세금폭탄을 맞잖아요. 요즘에는 건물을 허무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어떻게든 종부세를 줄여보겠다고 최근 비혼을 선언한 자식 둘한테 원룸 2채를 팔았습니다.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더니 자식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합디다. 애들은 원룸을 가진 1주택자가 됐습니다. 아파트 한 채는 못 사줄망정 애들의 아파트 청약기회마저 박탈한 못난 어미가 됐습니다.   
 
남들은 번듯한 집 있으니 돈도 많이 벌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저는 평생 뼈 빠지게 일하며 살아왔습니다. 남편은 뇌출혈로 쓰러진 뒤 1급 장애인이 됐습니다. 저는 지금도 노인 돌봄 복지관에서 하루 5시간씩 일합니다. 건물 청소도 제가 다 합니다. 힘들었지만 누구한테도 손 벌리지 않고 여태껏 살아왔습니다. 이런 저한테 정부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심한 벌을 주나요.  
 

민간임대주택 77%가 다세대·다가구인데 집값 상승 주범으로

 
박씨의 경우처럼 민간 등록임대주택(민간임대)을 둘러싼 갈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는 2017년 8·2 부동산 대책에서 민간 임대사업자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가 1년 만인 2018년 9·13 때 정책 기조를 바꿔 혜택을 줄이기 시작했다. 2020년 7·10 대책 때 4년 단기임대 및 아파트 장기일반 매입임대를 없앴고 임대사업자 관련 세제 혜택을 대부분 없앴다. 내년부터 취득세 및 재산세 감면이 사라지고, 양도세 공제 혜택은 6년 이상 임대해야 받을 수 있다. 종부세도 2018년 9월 14일 이후 조정대상 지역 내 신규 취득한 장기일반 매입임대 주택은 합산 대상이다.  
 
여당은 임대업자가 매물을 내놓지 않아 집값이 올랐다며 민간임대 관련 혜택을 더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의무 임대 기간이 끝난 임대주택을 6개월 안에 팔지 않는 경우 양도세를 중과하거나 민간임대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는 민간임대주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 답변자료에서 “민간임대를 폐지하면 민간임대에 거주하는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 저하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민간임대사업자들은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임대사업자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지난해 6월 기준 등록 임대사업자(160만7000가구) 중 빌라 등 아파트가 아닌 주택 유형(비아파트) 비중이 77%에 달한다. 정부가 7·10대책에서 일부 등록임대주택 유형을 폐지하고, 박 씨처럼 의무 임대 기간을 지난 임대주택을 등록 말소하기 시작한 뒤 지난달까지 자동말소된 주택이 50만708가구다. 이중 비아파트가 77%(38만4660가구)에 달한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 자문센터 팀장은 “임대주택사업자 상당수가 서민 주거를 위한 다세대·다가구의 소형 평수를 공급하고 있는데 임대주택사업자 관련 혜택이 줄거나 폐지되면 이런 주택의 공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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