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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의 이코노믹스] 선심 쓰듯 나랏돈 풀지만 피해는 서민·중산층에 돌아가

중앙일보 2021.05.25 00:26 종합 26면 지면보기

공공의 실패가 두려운 이유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한국사회과학협의회장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한국사회과학협의회장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독과점의 폐해나 경제적 불평등 같은 시장실패가 문제다. 그러나 정부의 비중이 커질수록 공공부문의 비효율과 정책실패로 경제위기를 초래하는 공공의 실패가 도사린다. 루디거 돈부시 MIT대 교수와 세바스티안 에드워즈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는 “이러한 공공의 실패는 선심성 재정정책으로 대변되는 경제적 포퓰리즘과 동반된다”고 봤다. 이 같은 경제적 포퓰리즘은 결국 선심성 재정정책과 임금인상을 통해 인플레이션과 실업 증가를 야기한다. 결국 빈민층과 중산층에 피해를 주게 된다는 의미다. 부유층은 어떤 상황에서도 버티기 마련이다.
 

재정 지출 확대는 포퓰리즘 전형
인플레와 실업 증가로 서민 피해
정부 개입할수록 공공 실패 늘어
재정지출·공공부문 비중 줄여야

실제로 큰 정부를 포함한 공공부문의 확대와 경제적 포퓰리즘은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큰 정부를 유지하고 공공부문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재정지출을 늘려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가 필요하다. 그동안 한국경제에서 공공부문 비중은 지속해서 비대해졌고 경제적 포퓰리즘 또한 확대되고 있다. 공공부문의 실패가 늘어나고 경제적 포퓰리즘의 비용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경제는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공공부문도 적극적으로 사익 추구
 
김정식의 이코노믹스

김정식의 이코노믹스

먼저 한국경제에서 공공부문의 비중이 증가하는 배경을 보면, 이는 공공부문 종사자는 공익을 추구한다는 전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경제현상을 분석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경제학에서는 가계·기업·정부, 이들 세 경제주체의 행동을 분석한다. 이들 중 가계와 기업은 자기 이익 즉 사익을 추구한다. 정부 관료와 공공기관 종사자, 국회의원은 국민과 공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가정해 왔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 경향을 가진 국가들은 기업을 비롯한 민간부문보다는 공공부문을 더 선호하고 공공부문의 비중을 확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민간만 사익을 추구하고 공공은 공익을 추구한다는 전제는 비합리적이다. 공공선택이론을 창시하고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뷰캐넌은 정통경제학의 잘못된 가정을 바로잡아 가계나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관료나 국회의원 등 공공부문도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고 가정해 공공경제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리고 정부와 공공의 실패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물론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도 공공부문에서 자신이나 가족의 이익에 대한 선호가 높다는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으며, 최근 공기업 종사자들이 내부정보나 공적 지위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 행동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공공부문을 확대한다고 공익이 반드시 커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공공의 실패가 늘어날 수 있다.
 
GDP 대비 공공부문의 비중 추이

GDP 대비 공공부문의 비중 추이

정부개입과 공공부문의 비중이 증가하는 또 다른 배경은 경기침체로 실업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국민의 실업수당과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여기에 고령화는 급속히 진전되고 있지만, 연금체제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후소득이 미흡해지면서 고령층의 정부지원 선호도 높아지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는 것 또한 정부 개입이 요구되는 원인이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소득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정책당국은 최저임금이나 소득세율 인상을 통해 소득분배 효과를 높이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를 확충해 시장실패를 보완해왔다. 부(富)의 불평등 역시 부동산가격 안정이나 조세제도를 통해 그 격차를 줄여왔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 19 사태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저금리로 시중 유동성이 늘어 주택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공공부문 실패는 위기로 이어져
 
지금과 같이 비대해진 공공부문이 실패하고 또한 경제적 포퓰리즘이 지속하면 한국경제는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과도한 재정지출은 통화량을 증가시켜 결국 인플레이션과 자산가격 상승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협의의 통화량(M1)은 26% 증가했으며 긴급재난지원금 등으로 앞으로 재정지출이 더 늘어날 경우 시중 유동성은 더욱 증가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 충격을 주고, 부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여기에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급격히 늘어나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면서 자본유출로 외환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이미 올해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6%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채무는 GDP의 48%를 넘어서 3년 뒤인 2024년에는 위험 수준인 60%에 달할 것이 예상된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적자의 비중 추이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적자의 비중 추이

한국경제가 공공의 실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가. 먼저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에 대한 강도 높은 감독과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그동안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으로 적자가 누적되자 정부는 공기업에 대해 해외투자와 같은 수익사업을 강조하면서 매년 경영평가를 통해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원래의 공기업의 목적인 공공서비스보다 민간기업과 같이 수익창출에 주력하게 하는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정책당국은 필요한 공공부문에 대해서는 감독을 강화해 공익을 추구하는 공기업의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하고 불필요한 부문에 대해서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비대해진 공공부문을 줄이도록 해야 한다.
 
민간기업 투자를 유치해서 일자리를 만들고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 정부가 강조하는 공공부문 투자만으로 경기를 부양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규제를 완화해 기업투자가 늘어나도록 해서 실업을 줄이고 과도한 공공부문 확대도 막아야 한다. 기업 또한 기업윤리를 강화해 정부규제가 줄어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거의 기업가치는 단기이윤에 의해서만 결정됐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의 기업가치는 기업윤리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탈세와 부정직한 방법으로 이윤을 남기는 기업은 반기업 정서를 증가시키는 요인이며 정부는 국민의 반기업 정서를 반영해 규제를 강화한다. 이는 최근 선진국에서 강조되고 있는 ESG(환경·사회적 책임·투명경영) 경영전략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에 맞춰 정부의 기업규제 또한 완화되고 있다.
 
부동산가격과 인플레이션 기대를 안정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은 비록 지표물가가 안정돼 있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는 그동안 억눌렸던 수요 폭발로 임금과 국제원자재 가격이 오를 수 있다. 이 같은 인플레이션은 다시 임금을 올리고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다. 정책당국은 시중 유동성을 점진적으로 흡수해 부동산가격과 인플레이션을 안정시켜 경제적 불평등 심화를 막아야 한다.
 
경기 침체할수록 공공부문 사익추구 심해져
공공의 실패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재정준칙이다. 과거와 달리 정치권은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고 복지지출을 늘리고 있다. 미국·일본과 달리 국제통화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은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GDP의 3% 이하 재정적자와 60% 이하의 국가부채 비중 같은 재정준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 혹여 추경을 더 하게 되면 올해 국가채무는 50%를 상회할 가능성이 있다. 고령화와 저성장 국면이 지속할수록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는 급속히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재정준칙은 이 같은 공공의 실패를 막는 최소한의 장치가 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를 역임한 앤 크루거는 경제 주체들이 공익보다도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지대추구사회(rent seeking society)라고 본다. 이러한 지대추구 행위는 경기가 침체하고 노후가 준비돼 있지 않을수록 더욱 격화되고 여기에서는 공공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경제는 공공부문이 구조적으로 확대되면서 동시에 공공의 실패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은 여건이 되고 있다. 한국경제가 공공부문을 효율화시키고 경제적 포퓰리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익을 위한 감독을 강화하는 동시에 정부개입과 경제적 포퓰리즘이 선호되는 원인을 해소해야 한다. 사회주의 경향에서 벗어나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으며 지금의 저성장, 양극화의 함정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인도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시카고대 경영대학원의 라구람 라잔 교수는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서는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 과도한 정부개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경제를 구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전략적인 정책선택이 필요하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한국사회과학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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