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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명상·366야드 장타…51세 미켈슨 ‘살아있네’

중앙일보 2021.05.25 00:03 경제 6면 지면보기
18번 홀 그린에서 미켈슨과 관중이 동시에 환호하고 있다. 미켈슨은 메이저 스포츠 역사상 처음 50대에 챔피언이 됐다. [USA TODAY=연합뉴스]

18번 홀 그린에서 미켈슨과 관중이 동시에 환호하고 있다. 미켈슨은 메이저 스포츠 역사상 처음 50대에 챔피언이 됐다. [USA TODAY=연합뉴스]

필 미켈슨(51·미국)이 2위에 2타 앞선 채 18번 홀 그린으로 걸어가자 관중은 훌리건처럼 몰려들었다. 코로나19로 잊혔던 관중 난입 풍경을 미켈슨이 되살려냈다. 미켈슨이 골프 메이저 대회 사상 최고령 우승 역사를 썼다. 미켈슨은 24일(한국시각)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인근 키아와 아일랜드 오션 코스(파72, 7876야드)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1오버파 73타를 쳐 합계 6언더파로 브룩스 켑카 등에 2타 차로 우승했다.
 

메이저대회 최고령 우승 신기록
PGA챔피언십서 53년 만에 경신
“나이 들어도 의지 변한 적 없다”
다음달 커리어 그랜드슬램 도전

미켈슨의 나이는 만 50세 11개월이다. 종전 최고령 우승은 1968년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줄리어스 보로스의 48세 4개월이다. 미켈슨은 이번 우승으로 메이저 6승을 포함해 PGA 투어 45승을 기록했다. 미켈슨은 US오픈에서 우승하지 못해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달성하지 못했다. 2위만 6차례 했다. 다음 달 열리는 US오픈 자력 출전권을 땄다. PGA 챔피언십과 US오픈은 코스 세팅이 비슷해 미켈슨에게 아직 기회는 있다.
 
대회를 앞두고 스포츠 베팅사이트의 미켈슨 우승 배당은 200배였다. 사실상 우승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그의 세계 랭킹은 115위였다. 2016년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 톱10에 들지 못했다. 2019년 이후에는 일반 PGA 투어 우승도 없다. 쉰을 넘은 미켈슨은 지는 태양이었기에, 그런 성적은 너무도 당연했다. 골프가 축구나 농구처럼 격렬하지는 않아도, 서른 중반을 지나면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몸도 몸이지만 나이가 들면 시력이 나빠지고, 집중력도 오래가지 못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의욕이 나이가 들수록 사그라든다.
 
2019년 미켈슨은 몸을 리셋했다. 6일간 물과 특별 커피만 먹으며 6.8kg을 감량하는 힘든 시도였다. 미켈슨은 “예전에는 설탕 등 몸에 나쁜 것에 무지했다. 이젠 깨끗한 음식을 먹는다”고 말했다. 탄수화물과 가공식품을 줄이고 채소 위주로 소식한다. 나이가 들어도 경쟁력을 발휘하는 톰 브래디(미식축구), 르브론 제임스(농구), 노박 조코비치, 로저 페더러(이상 테니스) 등도 비슷하다.
 
운동량은 적지 않다. 미켈슨이 2019년 반바지를 입고 이벤트 대회에 나갔을 때, 두꺼운 종아리를 본 미국 미디어는 “사이클 선수 같다”고 전했다. 미켈슨은 하체와 코어 등 필요한 근육을 단련하고 유연성을 길렀다. 2010년 이후 볼 스피드도 늘고 있다. 이날 16번 홀에서 366야드를 쳤다. 브라이슨 디섐보(363야드)를 제치고 거리가 1위였다. 미켈슨은 고압산소 방에서 자고, 적외선 베개에 항염 장신구를 사용한다.
 
집중력 유지에도 힘쓴다. 미켈슨은 “하루에 36홀이나 54홀을 돌면서 한 샷 한 샷에 집중하는 훈련을 했다. 그 이후 18홀 동안 집중하는 게 어렵지 않다. 마음의 근육을 점점 단련했다”고 설명했다. 열정도 일종의 재능이다. 그를 상담한 마이클 라돈 박사는 미국 골프다이제스트에 “미켈슨은 골프 말고도 새로운 것을 들으면 어린아이처럼 흥미를 느낀다”고 전했다. PGA 투어 선수 존 람은 “내 나이가 26세인데, 나와 미켈슨의 열정이 비슷하다. 내 나이만큼 투어에서 지냈는데도 그 열정을 유지하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좋은 건 기억하고, 나쁜 건 잊는다. 미켈슨은 최근 PGA 투어 18개 대회 연속으로 20등 밖으로 밀렸다. 웬만하면 시니어 투어로 가 카트를 탄 채 낄낄거리며 시간을 보낼 거다. 그는 힘이 넘치는 젊은 복서처럼 무수한 펀치를 맞고도 다시 덤볐다. 골프는 마음의 동요가 심한 스포츠다. 그는 “명상하고 심호흡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회가 열린 키아와 아일랜드는 피트 다이가 설계했다. 시각적으로 압박감을 준다. 그는 공을 물에 빠뜨려도 평정심을 유지했다. 실수가 실수를 부르지 않게 했다.
 
혁신에 대한 의지도 최고다.  미켈슨은 이번 대회에서 샤프트 길이 47.9인치의 드라이버를 갖고 나왔다. 용품 후원사의 경쟁사가 만든 헤드 크기 275cc짜리 미니 드라이버를 갖고 나온 점도 흥미롭다. 2006년 마스터스에 그는 페이드용, 드로용으로 2개의 드라이버를 사용해 우승했다. 그해 US오픈에서는 당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64도 웨지를 제작해 썼다. 2013년 디 오픈에는 드라이버를 아예 빼놓고 우드를 2개 가지고 나가 우승했다.
 
미켈슨은 “‘나이가 들어도 최고 선수들과 경쟁해 이길 수 있다’고 믿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이 의심해 나도 회의가 든 적이 있다. 그러나 의지는 변한 적이 없다. 외부 자극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속 경쟁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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