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유소 갈 때마다 휘발유값에 놀란다고? 이제까진 예고편

중앙일보 2021.05.24 17:32
직장인 최모(41)씨는 요즘 주유소를 갈 때마다 오른 휘발유 값에 놀란다고 했다. 최씨는 “벌써 휘발유 가격이 L당 1600원대로 뛰었다. 지난해 1200원대였던 기억이 분명한데 올라도 너무 빨리 오른다. 지금 속도면 L당 2000원도 금방이겠다 싶다”고 말했다.
 
신모(39)씨는 두 달 후 이사를 앞두고 마이너스 통장을 알아보다 훌쩍 뛴 금리를 체감했다. 그는 “마이너스 통장 최저금리가 연 2%대란 은행 공지를 본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3%를 넘었더라”며 “실제 책정될 금리는 최저금리보다 높을 텐데 생각보다 이자 부담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선이 하역작업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2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선이 하역작업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후폭풍을 몰고 왔다. 유가와 금리·환율이 같이 오르는 ‘3고(高)’ 현상이다.  

 
24일 오후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 사이트 오피넷 집계 결과 전국 주유소에서 보통 휘발유는 평균 L당 1546.46원에 판매됐다. 지난해 2월 13일(1547.53원) 이후 1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값(1629.69원)은 이미 1600원 선을 넘어섰고, 중구에 휘발유 1L에 2425원 하는 주유소도 등장했다.  
 
국내 유가는 코로나19 확산 직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국제 유가도 배럴당 60달러를 돌파해 70달러를 향해가고 있어, 국내 석유제품 가격의 추가 상승은 기정사실이다. 석유류 등 원자재 값에 영향을 많이 받는 소비자물가도 고공행진을 시작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3%로, 한국은행 물가안정목표(연 2%)를 이미 넘어섰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원자재가 상승에 농축산물 가격 급등, 기저효과까지 겹쳐 소비자물가 상승세는 이달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선행지표라 할 수 있는 생산자물가 상승률(전년 대비)이 지난달 5.6%를 기록하며 소비자물가 추가 상승을 예고했다.  서민들의 장바구니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코로나19 위기 과정에서 대거 풀린 유동성이 경기 회복과 맞물려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고물가에 놀란 주요국 중앙은행이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거둬들이고 정책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1년째 기준금리를 연 0.5%에 묶어놨지만, 시장금리는 상승 기류에 올라탄 지 이미 오래다.
국고채 3년물 금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국고채 3년물 금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24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116%로 전 거래일 대비 0.021%포인트 올랐다. 연초(1월 4일 기준) 대비 0.162%포인트 높다. 금리가 오르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증가해 기업ㆍ가계의 재무건전성이 나빠진다. 이는 소비 및 기업의 투자 의욕을 위축시켜 경기에 악영향을 준다.
 
오락가락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신호에 맞춰 출렁이고 있긴 하지만 미국 달러 값도 큰 방향은 우상향(원화 상대가치 하락)이다. 이날도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값은 전 거래일보다 0.1원 내린 1127.1원으로 마감했다. 연초와 견줘 4.2% 하락(달러가치 상승)했다. 
미국 달러당 원화 환율.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미국 달러당 원화 환율.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런 외환시장 변화는 한국 경제엔 ‘양날의 칼’이다.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내려가면 한국산 제품의 수출 경쟁력은 올라가지만 역으로 원자재 수입 비용이 비싸지는 문제가 있다.  최근 한국 수출이 크게 늘고 있지만 수입 물가가 치솟고 있는 탓에 무역ㆍ경상수지 흑자 폭이 축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시 원화 약세(환율 상승)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지금까진 사실 예고편에 불과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한 저물가ㆍ저금리 ‘축제’가 코로나19 충격을 기점으로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경고음은 커지고 있다. 과거 1980~90년대 3고 위기 때처럼 유가ㆍ금리ㆍ환율이 폭발적 상승하진 않더라도 영향은 클 수 있다. 지난해부터 내년까지 한국의 3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2%에도 못 미치는(한국개발연구원 전망 기준) 저성장 국면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더디기만 한 고용 회복, 부동산 급등으로 극심해진 자산ㆍ소득 양극화에 16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빚까지.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 위험 요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통화정책을 전환하는 시점을 놓고 금융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제롬 파월 Fed 의장의 모습. AP=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통화정책을 전환하는 시점을 놓고 금융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제롬 파월 Fed 의장의 모습. AP=연합뉴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인플레이션에서 분기점을 맞았다는 사실이 분명해 보인다”며 “일시적이냐, 아니냐가 관건인데 생산자물가 등 지표상으로도 그렇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 만큼 일시적이지 않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고 말했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은 “10여 년 이어진 전 세계적 저성장ㆍ저물가ㆍ저금리 기조에서 탈피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국내 제조 대기업엔 호재겠지만, 국가 측면에선 미지수”라며 “금리가 중요한 변수인데 한국 경제가 충분히 회복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여파가 클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하 연구원은 “미국ㆍ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테이퍼링(자산 긴축)에 당장 나서지 않고 상당 기간에 걸쳐 긴 호흡으로 가져갈 것이란 전망이 현재는 우세하다”고 평가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