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전문가 사회와 그 적들 (feat. 플랫폼)

중앙일보 2021.05.24 06:00
팩플레터#103

팩플레터#103

#1. 전문가, “플랫폼, 방 빼!”

플랫폼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하면서 기존 산업 종사자와 갈등 중이다. 쇼핑(이커머스), 교통(모빌리티), 음식점(배달) 시장에선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들이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다 최근엔 법률 서비스 시장도 플랫폼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온라인 변호사 광고 플랫폼과 전면전을 선언한 것. 변호사 아닌 '플랫폼 사업자’가 법률 서비스 시장을 주도하는 기형적 상황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세를 확장하던 플랫폼 진영에는 비상이 걸렸다.
 

팩플레터 103호의 요약본

① 변협 “로톡이랑 손잡지 마세요!”
대한변협은 지난 3일 ‘변호사 업무 광고규정’을 전부 개정했다. 요지는 ‘비변호사 플랫폼에 변호사가 참여하거나 광고해선 안 된다’는 것. 계도 기간을 거쳐 8월 4일부터 시행 예정. 김신 대한변협 수석 대변인은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는 ‘온라인 사무장’ 같은 업체들에 변호사들이 협조하지 않게 하기 위해 관련 규정을 재정비 중”이라고 말했다.
 
② 로톡 “이건 스타트업 찍어내기!”
이번 조치로 직격탄을 맞은 건 플랫폼 기업 로톡(운영사 로앤컴퍼니). 변호사 검색·광고 업체로 홍보 수단이 부족한 변호사와, 누굴 찾아야할지 막막한 의뢰인(소비자)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최근 10개월 새 변호사 회원 수가 두 배(2000명→3966명)로 늘었다. 국내 등록 변호사(3만 197명) 중 13.1%가 가입. 하지만 지금은 서비스 중단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로톡 관계자는 “5월 중으로 헌법소원을 청구할 예정”이라며 “대한변협 상대로 행정소송, 공정거래위원회 제소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2. 변호사는 ‘배민 포비아’

법률시장은 전형적인 레몬(정보 비대칭) 시장. 승소율 등 변호사 역량을 평가할 객관적 정보가 부족하다. 승소를 보장하며 고액을 갈취하는 불법 법조 브로커, 전관예우 등이 근절되지 않는 것도, ‘누가 잘하는지 소비자가 잘 몰라서’ 생기는 일. 이 때문에 소비자의 변호사 선임을 도와주는 상담·광고 플랫폼에 기술 기업의 도전이 몰리는 편이다. 취지는 좋은데, 변호사 업계의 반응은 매번 적대적이다. 왜?
 
① “음식점처럼 될라…”
택시도, 대리운전도, 식당도 그랬다.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하면 영업이 편해지지만 단점도 명확했다. 리뷰와 별점에 끌려다녀야 하고 더 많은 콜·주문을 받기 위해선 플랫폼이 정한 정책(광고 등)에 따라야 한다. 변호사도 언젠가는 음식점처럼 플랫폼에 종속되는 것 아니냐는 근원적 공포. 판사 출신 최모 변호사는 “광고를 하면 분명 사건 의뢰가 늘어나지만 변호사 수가 늘면 광고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구조”라며 “결국 로톡만 돈을 벌 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② “비교는 NO, NO”  
국가 고시로 자격을 얻는 법조인들은 내부 평가에 엄격한 편. 수십년 전 졸업한 사법 연수원 졸업 석차를 근거로 ‘내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법조인도 많다. 이들에겐 돈(광고비)을 쓰면 검색 상단에 노출되는 플랫폼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크다.  
 
③ “박리다매 상담, 피해는 소비자”
광고에 따라 노출 위치가 결정되다 보면 결국 ‘저가 수임료’ 경쟁으로 업계가 혼탁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형 로펌 소속 4년차 김모(35) 변호사는 “100만원짜리 사건이 플랫폼에서 가격 경쟁이 붙어 80만원에 수임하면 변호사는 딱 80만원어치만 일하게 된다”며 “이런 박리다매가 늘어나면 피해가 의뢰인에게 돌아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대역 통로에 설치된 로톡 광고판. 박민제 기자

교대역 통로에 설치된 로톡 광고판. 박민제 기자

#3. 플랫폼은 ‘레몬을 피치로’

플랫폼 회사들은 “변호사단체의 직역 이기주의가 혁신을 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혁신의 핵심’은 소비자 편익이다. 일반 소비자에겐 문턱이 높은 법률서비스 시장을 피치마켓(Peach Market·소비자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품질 경쟁이 있는 시장)으로 바꿀 기회라는 것.  
 
① ‘내 변호사’는 어디에?
변협은 매년 법관·검사를 평가한다. 우수 판검사, 하위 판검사를 추려 법원과 검찰에 제출. 하지만 변호사 평가는 안 한다. 소송 결과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변호사에 대한 정보는 턱없이 부족하다. 플랫폼은 여길 노렸다. 이용자들의 리뷰와 평가를 축적해 정보를 제공한다. 정확성이 떨어지더라도, 그마저도 없어서 아쉬운 게 소비자이기 때문.
 
② 접근성 UP!
음식점 광고 전단지를 온라인으로 옮겨놓은 배민처럼, 온라인 검색 한번으로 전국의 변호사를 찾아볼 수 있다면 소비자에게 나쁠 게 없다. 상담도 온라인으로 한다면 금상첨화.  
 
③ 청년 변호사엔 기회
로톡의 변호사 회원 중 78.7%가 10년차 이하다. ‘전관 스펙’도 ‘대형 로펌 간판’도 없는 청년 변호사에게 플랫폼은 ‘희망의 동아줄’일 수도. 2년차 김모 변호사는 “법조시장이 포화상태라면 시장 확장에 주력해야지, 후배들 사다리 걷어차고 변화를 거부하는 건 집단 이기주의”라고 말했다.
 

#4. 국회·정부 입장은?

주부무처인 법무부와 국회는 사태를 예의 주시 중.  
 
· 법무부는 변협 광고 규정 개정이 적절한지를 묻는 중앙일보 질의에 “변호사법은 협회로 하여금 변호사의 공공성을 해치거나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광고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은 여기에 근거해 제정된 협회 자치규범“이라며 "현행법 상 광고 조항의 취지, 법률 플랫폼 관련 해외 입법례, 향후 변호사단체 내의 논의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련 법령 개정이 필요한지 여부 등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 박성준 의원(더불어민주당,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실 관계자는 “현행 변호사법은 어떤 광고를 금지할지까지 변협에 결정권을 주고 있다”며 “의사나 회계사 등 금지 광고유형을 법령이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다른 전문직에 비하면 변협의 자율권이 과한 면이 있어 문제의식을 갖고 살펴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박민제·김정민 기자 letmein@joongang.co.kr 

관련기사

요즘 뜨는 기업 궁금하세요?

이 기사는 5월 18일 팩플 뉴스레터로 구독자들에게 발송된 '전문가 사회와 그 적들 (feat. 로톡)'의 요약본입니다. 리걸테크와 관련된 뉴스레터 전문을 읽고 싶으시면 이메일로 구독 신청하세요. 요즘 핫한 테크기업 소식을 입체적으로 뜯어보는 ‘기사 +α’가 찾아갑니다.
 
구독신청 → https://url.kr/factpl
QR코드를 찍으면 팩플 구독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찍으면 팩플 구독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