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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 공소장' 형전법 꺼낸 박범계···경찰에 검사 고발할 판

중앙일보 2021.05.24 05:00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1일 경기 과천시 과천정부청사 내 법무부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1일 경기 과천시 과천정부청사 내 법무부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공소장 공개의 형사 처벌 근거로 '형사사법 절차 전자화 촉진법(형전법)'을 거론하자 23일 법조계에선 "형전법 위반 혐의가 있더라도 이는 검찰 직접수사 범위가 아니다"라는 지적이 나왔다.
 
박 장관이 공소장 공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진상 조사를 명령했지만 법령에서 명문 처벌 조항을 찾지 못하자 꺼낸 게 형전법 카드였다. 하지만 검찰의 형사사법절차시스템(KICS) 정보 유출은 검찰 직접 수사대상이 아니어서 법무부가 관련 혐의를 발견하더라도 경찰에 고발하는 이례적인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안팎에선 "무리한 처벌을 밀어붙이느라 법무부 스스로 점점 스텝이 꼬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범계의 '형전법' 카드…"검찰도, 공수처도 수사대상 아니다"

 
박 장관은 지난 21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 지검장의 공소장 언론 공개에 대해 "위법 소지가 크다"며 "형사사법 정보를 누설·유출하는 경우 처벌 조항이 있다"고 말했다. 형법 등에 피의사실도 아닌 공소장 범죄사실 유출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다는 법조계의 지적이 이어지자 박 장관이 '형전법'을 반박 카드로 들고나온 것이다.
 
형전법 14조 3항은 형사사법 업무에 종사한 사람은 직무상 알게 된 형사사법 정보를 누설하거나 권한 없이 처리하거나 타인이 이용하도록 제공하는 등 부당한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형전법은 수사 진행 중에 압수수색 영장과 같은 수사 기밀이 사전에 외부로 유출될 때 적용해 온 법으로 공소장 공개에 적용한 사례는 없었다.
 
대검이 KICS에 등록된 이 지검장 공소장을 유출한 이를 찾아내 형전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더라도 검찰은 수사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부패범죄·경제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 등 6대 범죄에 대해서만 직접 수사할 수 있어서다.
 
게다가 형전법 위반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범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공수처법은 공수처가 수사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범죄를 형법상 제122조부터 제133조(직무유기, 직권남용, 피의사실공표 등)와 특가법상 알선수재, 변호사법, 정치자금법 등으로 특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한 간부는 "결국 수사까지 이어진다면 법무부가 이 지검장 공소장 공개를 이유로 검사들을 무더기로 경찰에 고발하는 초유의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실무를 고려하지 않고 검찰 수사 범위에 제한을 둬서 생긴 문제"라며 "법을 성급하게 개정하다 보니 매번 불필요한 논란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대검의 진상 조사 결과를 살펴본 후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아직 진상조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향후 계획에 관해선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 금지 수사 외압 의혹으로 기소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 금지 수사 외압 의혹으로 기소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朴 "독일은 공소장 공개 처벌", "타국법 적용? 죄형법정주의 무시"

 
박 장관은 같은 날 이 지검장 공소장 공개의 수사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독일 형법을 근거로 들며 처벌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 장관은 "우리 법은 독일법 체계를 갖고 있는데, 독일 형법은 공소장 유출을 처벌하고 있고 그 기준은 재판 시일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남의 나라 형법을 근거로 한국에서 공소장 공개를 처벌할 수 있다는 황당 논리를 편 셈이다.
 
박 장관 말대로 독일 형법 353d조(법원 심리의 공표 금지) 3항은 공판에서 낭독하거나 심리절차가 종료되기 전에 공소장 전문 또는 일부를 공표한 경우 1년 이하 징역 및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은 대신 한국과 달리 피의사실공표죄가 없다.

 
또 국민의 공개 재판권과 재판공개주의를 헌법에 천명한 한국과 미국(수정헌법 6조)은 독일은 경우가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은 법원조직법 등을 통해 사생활이나 영업이익 보호 등을 이유로 비공개 재판을 폭넓게 허용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공소장은 물론 사건 기록은 법원에 제출된 즉시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독일 처벌 규정을 우리나라에서 적용할 수 없다"며 "법률로 정한 범죄만 처벌할 수 있다는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강광우·정유진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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