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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살 정상화 “작품에 핏줄과 심장박동을 담고 싶었다”

중앙일보 2021.05.24 00:03 종합 20면 지면보기
1932년생인 정상화 화백은 “나는 평면인 화면 안에 입체적인 것, 살아 숨 쉬는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7년에 그린 두 그림 앞에서 정 화백은 “흑과 백은 결국 하나”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1932년생인 정상화 화백은 “나는 평면인 화면 안에 입체적인 것, 살아 숨 쉬는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7년에 그린 두 그림 앞에서 정 화백은 “흑과 백은 결국 하나”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내 나이 아흔이지만 다음 전시에 내 작품이 또 변했다는 것을 보여줄 겁니다. 같은 것을 계속하는 것은 용서 못 합니다. 변해야 합니다.”
 

단색화 대가…60년 화업 회고전
캔버스에 고령토 발라 입체공간화
“반복은 용서 못해, 계속 변해야”

89세 작가의 카랑카랑한 말투가 넓은 전시장에 울려 퍼졌다. 보청기를 집에 두고 나왔다 했다. 그래서 그의 딸이 곁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먼저 듣고 다시 큰 소리로 전해줘야 했지만, 전시장을 누비는 걸음걸이와 눈빛은 나이를 잊게 했다.
 
한국 단색조 회화의 거장 정상화 화백의 60여 년 화업을 정리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2일 개막했다. 1953년 작 ‘자화상’부터 2000년대 대형 회화 등 작품과 자료 100점이 공개됐다.  
 
21일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28년 동안 객지 생활을 하며 많은 작품을 보았다. 그리고 남이 안 하는 것, 못하는 것을 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1968년 작 ‘작품 68-1-9’, 캔버스에 아크릴릭, 115.5x72.3cm, 개인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1968년 작 ‘작품 68-1-9’, 캔버스에 아크릴릭, 115.5x72.3cm, 개인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정상화는 이우환, 박서보 등과 함께 한국 단색조 추상을 대표하는 화가다. 회화를 근간으로 판화, 드로잉, 데콜라주, 프로타주(탁본 기법) 등 다양한 실험 작업을 해왔다. 1990년대 이후엔 ‘뜯어내고 메우기’라는 작가 특유의 기법을 선보여왔다. 2015년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그의 작품이 11억4000만원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작가는 대중적으론 덜 조명됐다. 전시를 기획한 김형미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정상화는 오랜 기간 단색조 화가로 불려왔으나 작가의 작업 맥락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고, 작가도 정작 국내에서 작품 세계를 온전히 펼쳐 보일 기회가 별로 없었다”며 “그의 작품이 지닌 미술사적 의미를 조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상화는 1932년 경북 영덕 출생으로 1957년 서울대 회화과 졸업 후 해외로 떠나 프랑스와 일본에서 작품 활동을 해왔다. 1967년 프랑스 파리로 갔다가 1년 후 아내의 병환으로 귀국했으며 1969년부터 1977년까지 일본 고베에서 거주했다. 이후 1977년부터 다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1992년 11월 영구 귀국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한국에 돌아온 뒤엔 1996년 경기도 여주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1974년작 ‘무제 74-F6-B, 캔버스에 유채, 226x181.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1974년작 ‘무제 74-F6-B, 캔버스에 유채, 226x181.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대학 졸업 후 표현주의 추상 그림을 그리던 그는 “문득 내가 이럴 게 아니다. 내가 모르고 못 본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국을 떠났다”고 했다. “이틀에 한 번은 미술관을 찾았다. 눈만 뜨면 전시가 열리는 곳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이어 “어려움을 무릅쓰고 도망가다시피 떠났기에 가족에겐 늘 미안했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내 작품을 보고 아비가 무엇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랐다. 그 결과가 바로 여기 작품들”이라고 소개했다.
 
정상화의 작품은 대형 화면에 보이는 격자형 구조 화면으로 요약된다. 1970~80년대 고베와 파리에서 확립했고, 이후 ‘뜯어내고 메우기’를 바탕으로 화면은 입체적으로 변화했다. 캔버스 윗면에 붓으로 고령토를 3~5㎜ 정도 덮어 바르고, 캔버스 뒷면을 상하좌우로 주름잡듯이 접은 뒤 그 자리에 아크릴 물감으로 메우기를 수차례 반복해 완성하는 방식이다. 그는 “평면인 화면에 나만의 방법으로 공간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화면에 요철이 생기며 평면이 입체적 공간으로 확장해가는데, 이런 ‘공간성’이 내게는 매우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몸에 핏줄이 돌고 있듯 난 내 작품에 핏줄과 심장 박동을 담고 싶었다. 화면 안에 내 노동을 차곡차곡 축적하는 방법으로 섬세한 색과 밀도의 변화로 우주를 드러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는 연대기적 흐름을 큰 축으로  그의 독특한 조형 체계가 정립된 과정을 추적한다. 색채와 붓질에서 역동적인 초기 작품과 중기 이후의 극도로 정제된 화면의 대비가 흥미진진하다. 시간이 흐르며 작가는 물감을 캔버스에 바로 칠하는 전통에서 멀리 나아갔고, 고령토를 뜯어내고 빈 곳을 채우는 방식으로 화면에 ‘핏줄’을 심는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정상화 ‘격자 그림’의 영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릴 적 어머니가 내 옷과 동생들의 옷을 지으며 천에 주름을 잡으셨죠. 또 우리에게 온갖 잔소리를 하면서도 도마 위에 무를 가지런히 자르셨어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저게 뭐지?’하며 신기해했는데, 어느새 제가 화면 들어내고 메우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고요.”
 
영국 아티스트이자 평론가 사이먼 몰리는 정상화에 대해 “표면을 경작하는 작가다. 줄지어 심어 놓은 모나 볏 줄기가 남은 논밭을 떠올리게 한다”며 “그는 체계적인 움직임의 흔적을 화면에 아로새긴다”고 평했다.
 
작가는 이날 자신의 삶을 담은 전시장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딸은 “아, 이제 쉬셔야 하는데···”라며 한숨 쉬었지만, 그는 기자들을 향해 “작가는 절대 안일해져선 안 된다. 끝까지, 끈기 있게, 나만의 것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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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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