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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바이든과 밀착하는 문 대통령

중앙일보 2021.05.24 00:02 종합 1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밤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워싱턴DC에서 애틀랜타로 이동하며 SNS에 올린 글에서 “최고의 순방이었고 최고의 회담이었다”며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최고의 한·미 정상회담”
미·중 경쟁하는 반도체·배터리 협력
대만·남중국해도 공동성명에 명시
미·중간 전략적 모호성 변화 기류

“쿼드 중요성 인식”도 성명에 담겨
진보정부 임기말 노선 변화 감지
중국 정부는 아직 공식입장 안 내놔
중국 전문가는 “대중 견제용 우려”

문 대통령이 만족감을 표시한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서는 “한·미 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며”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한다. 외교가에선 이를 “문 대통령이 지난 4년간 유지해 왔던 한·미 동맹 관계의 재정립에 동의했다”는 취지로 해석하는 목소리가 많다. 미·중 사이의 갈등 국면에서 ‘줄타기’에 가까운 전략적 모호성을 보여왔던 정부가 무게중심을 미국 쪽으로 이동시켰다는 뜻이다.
 
이는 지난 21일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장에서도 목격됐다. 미국 기자가 문 대통령에게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에 대만과 관련해 더 강한 입장을 취하라고 압박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보며 “행운을 빕니다(Good luck)”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이는 ‘미·중 간 줄타기’와 관련한 질문이 한국에 난감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다행스럽게도 그런 압박은 없었다”면서 “다만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는 인식을 함께했다”고 답했다. 한국 대통령이 중국이 극도로 민감해하는 대만 문제를 외교 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공동성명서에는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문구가 적시됐다.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가 한·미 공동성명서에 명시된 것은 처음이다. 중국을 견제하는 성격의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협의체)에 대해서도 “중요성을 인식한다”고 했다. 쿼드 가입 여지를 남겨둔 말로 해석된다. 800㎞로 사거리를 제한해 왔던 미사일 지침도 폐기했다. 당장 950㎞ 떨어진 베이징이 사정권에 들어온다.
 
미·중 간 첨예한 경쟁이 벌어지는 반도체·배터리 등 신기술 분야에서도 한국은 미국에 밀착했다. 대기업들의 대미 현지 투자는 물론이고, 공동성명에서도 “우리는 공동의 안보·번영 증진을 위해 핵심·신흥 기술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명시했다.
 
노무현 한·미 FTA 데자뷔 “중도층 호응할 외교로 선회”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확대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확대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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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 곳곳에는 중국이 아프게 받아들일 요소들이 숨어 있다. “우리는 세계보건기구(WHO)를 강화하고 개혁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고 돼 있는데, 이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때 WHO가 중국 편향적 태도를 보인 것과 무관치 않다. “우리는 코로나19 발병의 기원에 대한 투명하고 독립적인 평가·분석 및 미래에 발병할 기원 불명의 유행병에 대한 조사를 지원할 것”이라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코로나19가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원했을 가능성을 부인해 왔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시작됐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 훨씬 조직적이고 정교하게 이뤄진다.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시대의 중국 대응이 관세 부과 등을 이용한 임시 방편적 압박이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이 훼손해 놓은 국제 질서를 아예 다시 쓰겠다는 입장”이라며 “미국 중심의 규범을 세우고, 중국이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배제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게 바이든식 접근법”이라고 전했다.
 
이는 한국 역시 미·중 간 전략적 모호성 유지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한국이 ‘진실의 순간’에 직면했음을 시인한 결과라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전략적 모호성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것과 별개로, 현실적으로는 더는 이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 조정을 피해 갈 수 없다는 점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확인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이 “중국에 경도됐다”는 평가를 받던 외교 노선을 수정한 시점에 주목한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진보 정부가 임기 말 중도층이 호응할 수 있는 친미에 가까운 외교 노선으로 급선회하는 것은 국내 정치에서는 필연에 가깝다”고 말했다. 임기 내내 야권으로부터 ‘반미친중(反美親中)’이라고 비판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핵심 지지층의 반대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카드를 꺼냈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발표했었다.
 
문 대통령이 외교 노선을 미국 쪽으로 옮길 조짐은 바이든 정부의 출범과 함께 감지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자주파로 불리던 김현종 전 안보실 2차장을 대미 외교에 정통한 김형진 차장으로 교체했다. 김 차장은 이번 공동성명 조율의 실무 총괄을 맡았고, 코로나로 인해 참석자가 제한된 상황에서도 서훈 안보실장과 나란히 확대정상회담에 참여했다.
 
그러나 말로만 무게추를 미국 쪽으로 옮기고 실제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역효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김재신 전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회담을 통해 약속한 내용의 후속 조치를 확실히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23일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중국 국수주의 관영지 환구시보의 인터넷 사이트 환구망은 한·미 회담 직후 “중국 내정 간섭! 한미 공동성명서 과연 또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언급”이란 자극적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중국 외교 전략에 정통한 쑤하오(蘇浩·61) 외교학원 교수는 23일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략 프레임에 한국을 끌어들인다는 미국 강경파의 목적이 부분적으로 실현됐다”며 “한국을 동반자로 생각하는 대다수 일반 중국인을 위해 한국이 우려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공동취재단, 서울=유지혜·강태화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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