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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가 인정한 126년 시네마천국…코로나에 꿈 접나

중앙일보 2021.05.23 11:00
지난 20일 인천시 중구 애관극장 앞. 신작영화가 개봉했지만 극장을 찾는 손님이 적었다. 심석용기자

지난 20일 인천시 중구 애관극장 앞. 신작영화가 개봉했지만 극장을 찾는 손님이 적었다. 심석용기자

“여기서 더 영화를 틀고 싶긴 한데…”

 
노인은 극장 상영 시간표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오후에 극장 내 5개 관에서 영화를 튼다. 대형 스크린에 빛을 쏟아내는 일이 좋아 영사일을 시작한 그다. 그러나, 최근엔 언제까지 극장에서 일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며 영사실로 출근한다. 인천시 중구 애관극장에서 13년째 영사기를 돌리는 김모(75)씨 얘기다. 애관극장은 최근 126년 만에 관람객들과의 이별을 고민하고 있다. 오랜 경영난 때문이다.
 

‘보다, 사랑하다’  애관

1972년 애관극장 앞 거리. 당시엔 2층 구조의 1관만 있었다. 심석용 기자

1972년 애관극장 앞 거리. 당시엔 2층 구조의 1관만 있었다. 심석용 기자

애관극장은 국내서 가장 오래된 실내극장이다. 1895년 문을 연 협률사(協律舍)가 시작이었다. 처음엔 영화를 틀진 않았다. 남사당패, 성주풀이 등 전통 악극이 무대에 올랐다. 1920년대 ‘영화’를 틀면서 애관(愛館)이라 불렸다. 이름의 유래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지만, 지금은 집 관(館)자를 볼 관(觀)로 여기며 ‘보는 것을 사랑하는 집’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부서졌으나 다시 지어 문을 열었다.
 
1970~80년대 이 일대는 인천의 ‘시네마 천국’이었다. 애관, 미림, 동방, 문화, 인천 등 여러 극장이 한데 모였다. 특히 애관극장에선 신작 영화 상영은 물론 각종 공연이 펼쳐졌다. 피아니스트 레너드 번스타인이 무대에 섰다. ‘신성일 엄앵란 쇼’가 열리는 날에는 일대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애관극장을 연구한 윤기형(52) 감독은 “애관 덕분에 근처 거리는 항상 붐볐다”고 했다. 지난 2017년 영화 옥자 개봉 당시 애관극장을 방문한 봉준호 감독은 “역사 깊고 전설적인 곳에 오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경영난에 불거진 매각설

2017년 영화 옥자 개봉 당시 봉준호 감독(오른쪽)과 서우식 프로듀서는 애관극장을 찾았다. 심석용 기자

2017년 영화 옥자 개봉 당시 봉준호 감독(오른쪽)과 서우식 프로듀서는 애관극장을 찾았다. 심석용 기자

그 많던 ‘최초’ 타이틀도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공습 앞에 무력했다. 관객 수는 곤두박질쳤고 고육지책으로 애관극장도 멀티플렉스의 형태로 바뀌었다. 그러나, 2018년 결국 매각설이 나왔다.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인천시민들’(애사모)이 이때 뭉쳤다. 인천시에 대책을 따져 묻고 극장에도 팔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오랜 역사를 문화유산으로 남겨달라는 애원이었다. 
 
그 덕에 극장은 2년을 더 버텼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텅 빈 객석이 ‘텅텅’ 비었고, 낭만을 포기하고 도입한 무인판매기로는 비용 부담을 감당할 수 없었다. 애사모는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관람객에 여러 할인 혜택을 제공하며 발버둥을 쳤다. 애사모 회원인 이희환 인천연구원 교수는 “민간에 팔리면 극장이 철거될 거다. 인천시가 바로 매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안되면 극장을 사달라”

지난달 애사모 회원들이 애관극장 앞에서 애관극장 보전과 공공적 활용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 애사모

지난달 애사모 회원들이 애관극장 앞에서 애관극장 보전과 공공적 활용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 애사모

꿈쩍 않던 인천시는 최근 시민단체, 연구기관, 영상·건축 전문가 등 15명을 불러 협의체를 만들었다. 매입의 당위성과 그다음을 생각해보겠다는 뜻이다. 애관에서 ‘시네필(영화광)’로 자랐다는 애사모 회원들의 목소리는 절절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예요. 한국영화의 뿌리, 그리고 지난 100여 년 이곳을 다녀간 시민들의 추억을 지켜줘야 합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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