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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국에도 여행사 2배로 키웠다, 휠체어 탄 사장님 전략

중앙일보 2021.05.23 08:00
“코로나는 분명 여행업에 위기였지만, 우리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시국에 여행사 대표가 이런 장담을 하다니. 그런데, 실제로 매출을 두 배로 키웠다. “적어도 11명 직원 월급 밀리지 않고 준다"는 약속을 거뜬히 지켜냈다.
 
장애인을 위한 여행상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무빙트립 대표 신현오(29)씨 얘기다. 그가 희귀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 병 환자라는 사실은 그가 일군 성과를 더 놀랍게 한다. 이 병은 유전자 이상으로 손발 말초 신경에 이상이 생겨 근육이 위축되고 변형이 일어나는 질환이다. 그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다. 
신현오 대표. 무빙트립 홈페이지 캡쳐

신현오 대표. 무빙트립 홈페이지 캡쳐

신씨는 자본금 3000만원으로 홀로 창업해 직원 11명을 이끄는 여행사 대표다. 희귀질환관리법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제정된 희귀질환 극복의 날(5월 23일)을 앞두고 그를 온라인 화상 대화로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신씨는 "장애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인터뷰가 아니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창업하게 된 계기는?
어릴 적 얘기부터 하겠다. 3형제 중 둘째다. 형과 연년생인데 내가 유독 많이 넘어졌다더라. 부모님과 전국 병원을 돌아다니다 서울 세브란스에서 샤르코마리투스 병 진단을 받았다. 중고교까지는 보행이 가능했는데 대학(전북대)에 가며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다. 저는 손에 감각은 있지만, 손가락이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주변에서는 공무원이나 안정적인 직업을 권유했다. 문득 ‘해야 하는 일’ 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다. 어느 날 휠체어를 사러 갔는데 업체 대표분도 납품하는 분도 휠체어 탄 장애인이더라. 그분들을 보며 나도 뭔가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창업 아이템으로 여행을 선택한 이유는?
대학에 간 뒤 고향인 순창을 떠나 독립해 살았다. 혼자 쉽게 여행을 갈 수 없었다. 그러다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 광주에서 담양까지 홀로 여행을 다녀왔다. 도움 없이 간 첫 여행이었다. 그 자유로움을 공유하고 싶었다. 이후에는 패러글라이딩을 했다. 땅에서는 작은 턱도 답답한데 하늘에서는 그렇게 자유롭더라. 기존 장애인 여행은 박물관 나들이나 관람형 여행이 많은데, 이런 야외 체험 활동을 하는 장애인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휠체어를 타고 동력 패러글라이딩을 체험한 신현오 대표. 사진 본인 제공.

휠체어를 타고 동력 패러글라이딩을 체험한 신현오 대표. 사진 본인 제공.

"복지관 돌며 1000명 설문조사"  

자본금은 어떻게 마련했나. 어려움은 없었나.
대학생 때 제가 장학금 등을 모아 3000만원을 갖고 시작했다. 이외에 창업 관련 지원사업을 따내 보탰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다. 창업하는 분들께 직접 발로 뛰어 시장을 조사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창업 멘토나 컨설턴트는 성장의 관점에서 제 사업이 안 된다고 하셨다. ‘장애인이 의식주도 안 되는데 무슨 여행이냐’고. 오기가 생겼다. 장애인 체육회나 복지관 등을 돌며 1000명을 설문 조사했다.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2018년 8월 창업을 했는데 2019년 4월까지 고객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첫 고객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장애인복지관 직원 연수였다. 직원들 중 휠체어를 탄 30대 중반 척추손상 장애 남성분이 계셨다. 바다 낚시와 패러글라이딩을 했다. 이전에는 장애로 연수에서 빠지거나 못했던 게 많았는데 동료들과 같이 체험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장애인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의 여행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여행을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제주 함덕 해변. 사진 본인 제공.

제주 함덕 해변. 사진 본인 제공.

"코로나 전보다 매출 두 배…위험 최소화하라"

코로나 19로 여행업이 어려운데 괜찮나?
지난해 2월 해외상품을 개발했는데 코로나19가 시작됐다. 한두 달이 지나도 계속되더라. 위기는 기회가 됐다. 코로나19로 여행 트랜드도 소규모 맞춤형에 아웃도어형 여행으로 바뀌었다. 이전부터 저희가 딱 그 전략이었다. 매출은 코로나 이전 대비 두 배 정도 올랐다. 11명 직원 밀리지 않고 월급 줄 정도다. 
 
창업하려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도전하라. 다만 준비 없이 창업하지 마라.’ 창업은 취업의 피난처가 아니다. 시장 검증을 꼼꼼히 해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 팀을 꾸려 하면 좋겠다. 청년들은 자본이 부족할 수 있는데 스타트업 지원 사업들이 많다. 제 경우 사업이 위험이 크다고 판단해 위험을 최소화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 지원사업을 미리 따낸 다음 진행해 위험을 최소화했다. 물론 지금 대표로서 부담감도 있다. 
스킨 스쿠버를 체험하는 신현오 대표. 사진 본인 제공.

스킨 스쿠버를 체험하는 신현오 대표. 사진 본인 제공.

"장애인,비장애인 함께 꿈꾸는 공간 만들고 싶어"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저는 여행업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장애인을 낯설게 본다. 몇 년 전, 미국에 갔을 때 사람들이 장애인을 대하는 게 우리나라에서 노인을 대하는 것과 비슷하더라. 누구나 노인이 되듯 누구나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중 89.7%가 후천적인 장애인이다. 또 기회가 된다면 학교를 짓고 싶다. 특수학교가 아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화상 인터뷰 중간중간 신씨는 사업 관련 전화 통화를 했다. 그가 가진 질병 때문에 손목은 가늘고 힘이 없었지만, 막힘없이 통화하며 대표로서 의사결정을 내렸다. 홀로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니며 1000명을 설문조사 했을 때도 저렇게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도 했는데 비장애인인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희귀질환을 가진 자신도 아주 힘들고 지친 적이 있지만, 당신 또한 해낼지도 모르니 도전해보라고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말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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