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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週 漢字] 緣(연)-시작과 끝을 함께 맺어가는 것

중앙선데이 2021.05.22 00:24 737호 31면 지면보기
한자 5/22

한자 5/22

인연(因緣)은 불가(佛家)에서 유래된 단어다. 모든 것이 생기고 소멸하는 데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어서, 우주 만물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을 인(因)이라고 하며, 인을 일으키는 여러 간접적인 조건을 연(緣)이라 구별한다. 연은 가는 실을 뜻하는 ‘멱(糸)’이 의미부이고, 가장자리를 뜻하는 ‘단(彖)’이 의미부 겸 소리부로 구성된 한자로 ‘옷의 가장자리를 따라 실로 장식하다’는 의미다. 가장자리는 외부와 맞닿고 연결되는 부분이라 ‘만남·관계·인연’을 상징하게 된 것이다.
 
중국어에서는 인연을 ‘관계(關係)’라고 표현하는데 ‘관(關)’은 문과 빗장을 실로 묶어 놓은, ‘계(係)’는 고치에서 나온 실이 손가락에 엮여 있는 모습이다. 이 표현에서도 인연은 둘 이상의 사람·사물·현상 따위가 실처럼 얽히고설켜 있는 것임을 표현하고 있다.
 
중국의 인류 탄생 신화에는 여와(女媧)가 진흙 속에 새끼줄을 집어넣었다 들어 인간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다. 후손들이 번성하고 대를 이어 가는 것을 뜻하는 ‘손(孫)’ 역시 실이라는 매개를 통해 시대와 공간을 넘어 혈연이 길고 면면히 이어짐을 상징한다.
 
이처럼 연결된 관계를 ‘실’로 드러내는 것은 우리의 전통 혼례에서도 볼 수 있다. 혼인이 정해지면 사주단자를 청실홍실로 감은 뒤 푸른 비단을 홍실로, 붉은 비단은 청실로 감아 보냈다. 이러한 의식은 결혼을 통해 남녀가 소중한 연(緣)으로 묶여 평생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미궁에 갇힌 테세우스가 길을 찾아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사랑에 빠진 공주 아리아드네가 건네준 실타래 덕분이었다. 이때의 실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는 물건을 상징하며, 이러한 뜻은 ‘실타래를 풀다’는 관용어에도 찾아볼 수 있다.
 
실로 짠 비단은 동서양의 문화가 교류되는 통로 역할을 해서 동양과 서양을 이어 주는 연(緣)이 되기도 했다. 조그만 누에고치 하나에서 뽑아낼 수 있는 실의 길이는 1400m이며, 이 실이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명주로 탄생하기까지 100여 가지 공정을 거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중 한 가지라도 어긋나면 그 실은 쓸모가 없게 된다. 인간관계도 매사 진실하고 성실한 마음이 있어야만 좋은 인연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한번 엉킨 실은 정말 풀기 어렵다. 그래서 시작을 잘 맺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얼마나 끝까지 잘 맺는가도 매우 중요하다.
 
곽현숙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HK+) 한자문명연구사업단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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