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각양각색 의자에 스민 한국의 미…‘공예 한류’ 바람 불까

중앙선데이 2021.05.22 00:20 737호 18면 지면보기

이탈리아를 만난 전통 예술

각양각색의 의자 아홉 점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낸다.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전통 공예 계승자들이 각자의 솜씨를 한껏 발휘해 꾸민 의자들이다. 특이한 점은 이 의자들이 이탈리아 대표 디자이너들의 스타일을 각각 오마주했다는 점이다. 21일 서울 DDP 갤러리 문(門)에서 개막한 전시 ‘한국공예명품백선-아홉 개의 의자’(6월 13일까지) 얘기다.
 

‘한국공예명품백선-아홉 개의 의자’전
9개 분야 전통 공예 장인 참여
자수·나전옻칠·화각·민화·매듭…

이탈리아 스타일에 ‘새 옷’ 입혀
세계 공예업계 관심 끌 계기 기대

최종관 채화칠기 장인이 에트로 쏘트사스를 오마주한 의자. [사진 한국황실문화갤러리]

최종관 채화칠기 장인이 에트로 쏘트사스를 오마주한 의자. [사진 한국황실문화갤러리]

부제가 ‘2021 이탈리아와 함께 하는 온라인 공예유람전’이다. 당초 로마에서 주이탈리아 대한민국 대사관과 주이탈리아 한국문화원 주최로 ‘코리아 위크’ 기간에 맞춰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탓에 현지 행사는 취소됐고 대신 360도 회전 관람이 가능한 온라인 영상을 준비했다.
 
이 기획은 우리 것을 보여주기만 하던 기존의 전시를 넘어, 의자라는 기물을 통해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 공예가 현대인들의 생활과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 느끼게 해주고, 산업화의 단초까지 제시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한국황실문화갤러리 최인순 관장은 “2018년 밀라노 가구박람회를 돌아보며 이탈리아 장인 정신이 유럽의 디자인산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우리 공예가 성장하고 산업화되려면 이 트렌드를 잘 파악하고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이탈리아 한국문화원과 함께 이탈리아의 대표 디자이너 9명을 선정해 이들을 성공으로 이끈 디자인 영감과 철학을 연구한 뒤 이를 의자에 우리만의 기법으로 적용해 산업적으로 프로포즈하는 이벤트로 꾸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만 화각 장인이 알레산드로 멘디니를 오마주한 의자. [사진 한국황실문화갤러리]

이재만 화각 장인이 알레산드로 멘디니를 오마주한 의자. [사진 한국황실문화갤러리]

오충석 주이탈리아 한국문화원장은 “2017년 로마와 바티칸, 알바노 라치알레 세 군데서 열린 한국 전통 공예전에 이탈리아 국민들이 보여준 뜨거운 성원에 대한 화답”이라며 “우리 공예가 이탈리아 산업계에서 관심을 끌고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나전과 옻칠·소목·화각·도자·채화칠기·민화·매듭·자수·지승의 9개 분야 장인들은 각자의 ‘파트너’가 된 이탈리아 장인들의 스타일을 연구한 뒤 의자 골조 제작을 전문가에게 의뢰했고, 거기에 자신만의 재주로 옷을 입혔다.(표 참조)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쇠뿔을 종잇장처럼 얇게 펴서 투명하게 만든 뒷면에 그림을 그리는 화각(華角)의 장인 이재만 선생은 “디자인계의 전설로 불리는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프루스트 의자에서 추구한 장식의 극치미를 화각 기법으로 새롭게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정수화 옻칠 장인이 마리오 벨리니를 오마주한 의자. [사진 한국황실문화갤러리]

정수화 옻칠 장인이 마리오 벨리니를 오마주한 의자. [사진 한국황실문화갤러리]

정귀자 서울무형문화재 고 김만희 민화장 전수조교는 책가도의 원류로 알려진 ‘다보격경도(多寶格景圖)’에서 실마리를 풀었다. 조선 정조 무렵 청나라 궁중 화가를 지낸 이탈리아 선교사 카스틸리오네가 그린 그림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가도인 장한종의 ‘책가도 병풍’ 속 휘장이 걷어 올려진 독특한 구성을 조르지오 아르마니 패션의 세련된 색채를 활용해 표현해냈다.
 
50년 넘게 자수 외길인생을 살아온 장옥임 대한민국 자수명인은 명품 브랜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동양풍 자수를 가방과 신발, 의상에 접목하고 있는 것에 착안해 나무 골격에 자수를 결합한 럭셔리 의자를 선보였다.
 
황순자 매듭 장인이 미우치아 프라다를 오마주한 의자. [사진 한국황실문화갤러리]

황순자 매듭 장인이 미우치아 프라다를 오마주한 의자. [사진 한국황실문화갤러리]

또 정수화 국가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은 스티브 잡스의 구애를 뿌리친 마리오 벨리니의 구애받지 않는 예술혼을 떠올리며 고종 황제가 쓰던 이동식 의자에 나전의 화려한 장식문양을 추가하고 주칠로 고급스럽게 마감했다.
 
장옥임 자수 장인이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오마주 한 의자. [사진 한국황실문화갤러리]

장옥임 자수 장인이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오마주 한 의자. [사진 한국황실문화갤러리]

아홉 장르별로 각각 10명의 장인이 만들어낸 전통 공예 작품들에 금은세공과 알조각 예술까지 더해져 모두 100점의 명품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이날 열린 개막식에는 페데리코 파올레 주한이탈리아 대사,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김태훈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 정한용 전 국회의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정형모 전문기자/중앙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