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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댄스도 ‘불가근불가원’ …너무 가까우면 경계심 생겨

중앙일보 2021.05.21 07:00

[더,오래] 강신영의 쉘 위 댄스(55)

아래 직원이 물어볼 게 있다며 서류를 들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코로나 시대에 살다 보니 누가 가까이 오면 감염 의심으로 거부감부터 생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어느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오면 경계하는 심리가 있다. 경계 거리라고도 하고 제한 거리, 한도 거리라고도 한다.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뜻은 비슷하지만 구별이 되기도 한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무난하다고 느끼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일본인은 1.8m, 미국인은 1.2m, 멕시코인은 0.8m라고 한다. 일본인은 그만큼 남을 경계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우리의 경우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 반면에 스킨십이 발달한 미국인이나 유럽인은 다소 가까운 편이고, 그야말로 걱정 없어 보이고 사람 좋고 낭만적인 멕시코인은 남이 가까이 가도 경계 의식이 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어느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오면 경계하는 심리가 있다. [사진 unsplash]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어느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오면 경계하는 심리가 있다. [사진 unsplash]

 
좀 더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인간관계에서의 거리에 대해 연구를 했다고 한다. 그는 인간관계의 거리를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 Zone. 45.7㎝ 미만), 개인적인 거리(Personal Distance Zone. 45.7~1.2m), 사회적인 거리(Social Distance Zone. 2~3.8m) 공적인 거리(Public Distance Zone. 3.8m 이상) 등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친밀한 거리란 그야말로 친밀한 관계에서의 거리를 말한다. 개인적인 거리는 개인 간 격식이 필요할 때의 공간 거리다. 사회적인 거리는 제삼자의 개입이 허용될 정도로 느슨한 거리 개념이다. 공적인 거리는 강의나 연설을 말하거나 들을 때 거리 정도를 말한다.
 
파트너끼리는 친밀한 거리라고 말할 수 있다. 아는 사람과 편하게 말할 때는 사회적인 거리에 해당할 것이다. 왈츠 같은 동선을 가진 춤은 다른 커플과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하므로 사회적 거리에 해당한다. 공적인 거리는 관중석에서 경기장 선수를 볼 때 해당하는 거리가 될 것이다.
 
복잡한 버스나 지하철에서 사람이 많아 끼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오히려 한산할 때 모르는 사람이 가까이 오면 경계의식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소매치기일 수도 있고 치한일 수도 있고 손에 커피잔이라도 들고 있으면 자칫 엎을 수도 있어 어쨌든 편치 않다. 길을 걷는데 누가 옆으로 가까이 오면 경계의식이 생기기도 한다.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같은 방향이면 보폭이 비슷할 경우 따라 오는 것 같아서, 또는 이쪽에서 마음에 있어 따라가는 것 같이 보일까 봐 매우 신경 쓰인다.
 
경계 거리라는 것은 일종의 피해 의식인데, 그만한 거리에서 더 가까이 올 때 공격해 올지 모른다거나 너무 가까워 미처 내가 방어할 능력이 없다거나 싫은 감정이 유발된다거나 할 때 생기는 것이다. 친하거나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이 경계 거리가 짧아진다. 내게 피해를 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경계를 풀고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간지럼을 많이 타는 부위를 남이 건드리면 상당히 간지럼을 타지만. 본인은 같은 행위를 해도 간지럼을 덜 탄다. 이 차이는 무의식 속에 다른 사람을 경계하는 심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댄스 파트너와의 거리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래저래 댄스도 사람들 간의 교류이므로 심리학이 존재한다. [사진 unsplash]

댄스 파트너와의 거리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래저래 댄스도 사람들 간의 교류이므로 심리학이 존재한다. [사진 unsplash]

 
댄스에서도 경계 거리가 있다. 라틴댄스에서도 파트너에게 가까이 가야 하는 동작이 있다. 그런데 거리를 두면 파트너십이 엉성해 보인다. 둘이 붙잡고 추는 모던댄스에서 힙을 뒤로 빼는 것도 사실은 경계 거리 때문이다. 허리를 잡히면 힘을 못 쓴다는 경계 심리가 있다. 내 몸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생식기가 있는 골반 근처이니 중요한 곳을 보호하겠다는 무의식중의 의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후진할 때 힙을 빼는 행위는 경계 거리와는 약간 다르다. 차라리 상대방을 경계하면서 발만 빼면 좋겠는데, 상대방은 믿을 만해 볼 필요 없으니 발만 디딜 곳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힙이 빠지는 것이다.
 
뒤풀이를 통해 서로 친해지면 경계 거리를 풀어 가까워진다. 경계 의식이 너무 옅어져 시선을 똑바로 보지 않고 밑을 보는 것은 스텝에 자신이 없거나 안 보이는 곳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발을 안전하게 딛으려는 심리 때문이다.
 
경기대회에서 심판이 플로어 주변에 죽 서 있는데 경기 중 선수가 심판 가까이 가서 액션을 보여주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언뜻 생각하기에는 눈에 확 들어올 것 같지만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오면 자연히 시선이 딴 곳으로 돌려진다. 공연히 헛수고하는 셈이다.
 
동호회에서 사람들과 만나는데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은 바람직하다. 각자 현업이 있고 가정이 있고 사생활이 있는데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역시 경계 의식이 생기게 된다. 취미로 댄스를 하는 것이니만큼 댄스 이외의 것은 관심을 안 가지거나 존중 또는 보호해주자는 것이다. 너무 멀어도 안 좋지만 너무 가까워지면 후유증이 생기기 쉽다. 일을 만들고 나면 그만큼 뒷감당을 해야 한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래저래 댄스도 사람들 간의 교류이므로 심리학이 존재하는 것이다.
 
댄스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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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영 강신영 댄스 칼럼니스트 필진

[강신영의 쉘 위 댄스] 댄스 동호인으로 시작해 30년간 댄스계에 몸담았다. 댄스에 대한 편견 때문에 외면하고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댄스스포츠 세계는 문화, 역사, 건강, 사교,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고 알수록 흥미롭다. 30년 댄스 인생에서 얻은 귀중한 지식과 경험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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