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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이버대 퇴임 앞둔 이경희 교수 “목표 이루는 제자들 보는게 가장 큰 보람”

중앙일보 2021.05.18 16:31
 
“신입생 환영회에서 쭈뼛쭈뼛 자신의 목표를 마치 이루기 힘든 꿈처럼 이야기하던 학생들이 결국은 목표를 달성해내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큰 보람과 기쁨이죠” 2002년 부임해 고려사이버대의 도약을 함께하고 올해 정년퇴임을 앞둔 고려사이버대 디자인공학과 이경희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약력 및 경력은?
서울대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작품 활동을 하던 중 1993년 인터넷 공간에 관심을 갖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원에서 미디어를, 버클리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이후 우리 삶의 공적 공간에 관심을 갖게 돼 ‘공적 공간의 장소성’에 대한 논문으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석사 청구 졸업 작품이 서울대와 중앙대,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에 설치 공간을 만들고 웹으로 연결해 실재 공간과 가상 공간을 동시에 연결하는 작품이었는데, 1998년 당시에는 새로운 시도였으며 인터넷의 개방성과 공간을 실재로 연결하는 특성에 큰 매력을 느꼈다. 이후 광주 비엔날레에 처음 오픈된 웹 아트 분야에 초대받아 민통선에 거주하는 이산 1세대 분들을 인터뷰하고 웹을 통해 그들의 사연을 소개해 이산가족을 찾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화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숭실대 대학원, 서울대 등에서 강의를 하였고 고려사이버대에 부임해 영상디자인, 영상 편집, 영상 합성 등을 강의했고 최근에는 환경디자인, 디자인과 인체공학, 미술의 이해 등을 수업하고 있다.  
 
재직 중 2002년, 2004년 아셈 듀오 장학사업(ASEM Duo Fellowship)을 통해 영국 뉴캐슬대학에 교환교수로 다녀오고, 2010년에는 안식년을 맞아 미국버클리대 방문교수로 다녀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경기도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위원회 위원과 경기도 공공디자인 진흥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고 김종영미술관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Q. 부임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려사이버대가 달라진 모습은?
고려사이버대 전신이었던 한국디지털대에 임명되던 2002년 당시는 온라인 강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지 않고 사이버대 수업 방식도 많은 변화를 시도하던 시기였다. 녹음실에서 교수들의 강의 내용을 별도로 녹음해 강의를 제작하기도 했다. 고려사이버대는 2008년 고등교육법상의 사이버대학으로 전환 인가를 받은 후 2010년 교명을 변경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눈부시게 도약했다. 개교 당시 7개 학과, 796명의 입학생으로 시작했지만 현재 8개 학부, 19개 학과, 9개 전공, 재적생 수 1만 2천명 이상의 4년제 종합대학으로 성장해 우리나라 최고의 사이버대학 중 하나로 손꼽힌다. 명실공히 고려사이버대가 ‘명문’ 사이버대학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느낀다.
 
Q. 고려사이버대학교 디자인공학과의 차별화된 장점은?
사이버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선후배 간 활발히 교류하고 격려하며 단단한 우애를 쌓아 나가는 점이 큰 강점이다. 또 교수들도 온라인이라는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동아리 모임 등을 활발히 지도하며 학생들과 교류한다. 디자인공학과 ‘데생연구회’에서는 지도교수의 1:1 지도를 통해 미술 실기를 진행하며 ‘스토링 모임’에서는 디자인과 예술 관련 독서 진행과 토론을 한다. 이외에도 디자인 관련 세미나, 자가발전 소모임, MT, 체육대회, 송년의 밤 등 선후배가 우애를 다질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많이 열린다.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학생은?
처음 부임 당시 만났던 김O태 학생은 사이버대학의 초창기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검정고시를 보고 용기 있게 한국디지털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이 학생은아주 어린 나이에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천재소년으로 신문지상에 소개되기도 한 소년이었다. 처음 수강한 영상디자인 수업에서 제출한 과제를 인터뷰하기 위해 아리랑TV에서 직접 방문했을 정도로 뛰어난 학생이었다. 현재 한양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또 만화 그리는 것이 너무 좋다며 자신이 그린 작품들을 수줍게 보여주던 이O영 학생은 현재 대학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케냐에 살며 사이버대 공부를 병행하다 잠시 귀국해 케냐 커피를 가지고 찾아온 학생도 있었고, 늦은 나이에 학업을 시작해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경험을 아낌없이 나눠주던 이0훈 학생도 있었다. 사실 소중한 학생들이 너무 많아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Q. 교직에 있으며 보람을 느낄 때는?
학생들은 신입생 환영회에서 첫 인사를 할 때 모두 쭈뼛쭈뼛 어색해 하며 자신의 목표를 마치 이루기 힘든 꿈처럼 이야기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 자신만의 디자인을 하고 싶다, 직장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학력의 장벽을 넘고 싶다 등… 하지만 그들이 졸업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또 국내외 유수의 공모전에 당선되거나 자신만의 사업을 꾸리는 등 목표를 구체적으로 이뤄나가는 모습을 보면 매우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Q. 고려사이버대를 떠나기 전 한말씀 한다면?
2002년 임용 당시 보직을 맡고 동료 교수님들 면접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인터뷰 질문 중 하나가 ‘우리 학교에서는 주말에 지방에 내려가 학생들을 위한 지역모임도 주관해야 하는데, 주중에 강의를 제작하고 주말에 기꺼이 학교를 위해 일할 수 있는가?’였을 정도로 바쁜 시기를 보냈다. 모두가 학교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발로 뛰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모두 힘을 모아 노력한 결과가 오늘날의 고려사이버대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보람차고 즐거운 추억이 되었고, 고려사이버대의 역사를 함께 쓴 교직원 선생님 모두, 그리고 그간의 시간들 모두가 자랑스럽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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