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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희석됐다”는데…‘체르노빌산 보드카’ 막는 다른 속내

중앙일보 2021.05.18 05:00
지난 4월 드론이 찍은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근처에 버려진 도시 프리피야트.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월 드론이 찍은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근처에 버려진 도시 프리피야트. [로이터=연합뉴스]

1986년 4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난 도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또다시 방사능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당국이 원전 인근에서 재배한 농작물로 만든 증류주 '보드카' 수출을 막으면서다.
 
16일(현지시간) 미 ABC뉴스 등 외신은 우크라이나 당국이 압수한 체르노빌산 보드카 1500병의 반환을 둘러싸고 사회적 기업과 키예프시 검찰 간 법정 공방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제가 된 보드카는 우크라이나-영국 과학자들이 설립한 사회적 기업 '체르노빌 스피리트'(Chernobyl Spirit Company)가 사과를 이용해 만든 술이다. 
 
체르노빌 스피리트가 2019년 8월 개발한 호밀로 만든 보드카. [체르노빌 스피르트 홈페이지]

체르노빌 스피리트가 2019년 8월 개발한 호밀로 만든 보드카. [체르노빌 스피르트 홈페이지]

이 보드카는 원전 반경 약 30㎞의 출입금지 구역 바깥에서 재배한 사과로 만들었다. 이들은 이 보드카가 원전 사고 이후 체르노빌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소비재 상품이라고 홍보하며 영국 시장으로 수출을 준비해 왔다. 가격은 약 50달러(약 5만6000원)에 판매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난 3월 수출 직전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에 모두 압수당했다. SBU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검찰은 술병에 찍힌 소비세 스탬프가 위조됐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 측은 ABC뉴스 인터뷰에서 “병에 찍힌 스탬프와 제조 공장에서 제출한 등록 스탬프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체르노빌 스피리트는 해당 제품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조·허가받은 것으로 “억지”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아토믹에 사용된 사과는 우크라이나에서 규정한 방사능 위험 기준치에 훨씬 못 미쳐 안전하며 방사능은 증류 과정에서 모두 희석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2019년 영국 사우스 햄튼 대학을 통해 주류 안전성 검사를 마쳤으며 탄소-14 외에는 특이한 방사능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탄소-14는 반감기가 길어 위험한 방사성 물질로 불리지만 보드카에서 발견된 양은 자연에 존재하는 수준으로 문제 될 것 없다는 주장이다.
2019년 7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근로자들이 새로운 안전 보호구역 앞을 걸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2019년 7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근로자들이 새로운 안전 보호구역 앞을 걸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4년간 원전 인근 출입금지 구역의 생태계 등을 연구해온 이 기업은 이미 지난 2019년 호밀로 만든 보드카를 선보인 바 있다. BBC에 따르면 당시 이들은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음회에서 “다른 보드카들보다 방사능 검출량이 오히려 더 적다”고 소개했다.  
 
체르노빌 스피리트 창립자인 짐 스미스 포츠머스 대학 환경과학과 교수는 “아토믹은 체르노빌 인근 지역의 생태계가 농작물을 재배해도 될 만큼 회복되었다는 신호”라며 “이미 미국, 캐나다, 프랑스, 호주 등 전 세계에서 '아토믹'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말했다.
 
일각에선 체르노빌산 사과주가 방사능 안전성 논란을 촉발할 것을 우려해 당국이 고의로 수출을 막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체르노빌을 찾은 관광객이 버려진 버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EPA=연합뉴스]

체르노빌을 찾은 관광객이 버려진 버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EPA=연합뉴스]

최근 우크라이나 정부는 체르노빌을 전쟁이나 재해 등 인류의 아픈 족적을 찾아다니는 '다크 투어리즘' 관광지로 내세우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왔다. 아예 “과학과 관광의 중심지이자 자유의 땅을 상징하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그런데 해외에서 아토믹에 대한 방사능 문제를 제기할 경우 국가 이미지에 또 한번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ABC뉴스에 따르면 법원은 아토믹 반환 소송에서 체르노빌 스피리트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날 검찰이 항소하면서 아토믹이 영국으로 수출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라고 ABC뉴스는 전했다.  
 
한편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체르노빌 원전 사고 사망자는 9000명으로 기록됐다. 이와 함께 방사성 물질에 노출돼 암에 걸려 숨진 사람까지 포함하면 재난 사망자는 11만5000명 정도라고 벨라루스 연구진은 보고 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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