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유준환 LG전자 사무직 노조위원장
김해성 부위원장 인터뷰 

"오락가락 보상기준에 오래 참았다
회사가 하자는 대로 하는 시대 지나"
MZ 주축 사무노조 주도 세력 성장
워라밸·공정·성과·개인 가치 존중
노동개혁의 선봉장 부상할지 주목

 
노동시장에서 청년 세대가 지금처럼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 실업의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촉발된 '공정'이란 화두의 최대 피해 세대로 떠올랐다. '공정'은 회사 내부로 번졌다. SK하이닉스에서 성과급 문제로 파란이 일었다. 사무직 노조 설립 바람으로 이어졌다.
 
MZ세대의 반란은 "기성세대가 왜 참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관성의 법칙이 안 통한다. 지난 선거에서도 가감 없이 표출됐다. 이들의 반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MZ세대의 이 움직임을 베이비부머의 잣대로 바라보다가는 큰코다치는 시대가 됐다. 그랬다간 기업에 심각한 경영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

 
LG전자의 '사람중심 사무직 노조'(이하 사무노조) 위원장을 만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노동운동과 같은 거창한 담론을 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노동시장의 혁신을 촉발하고,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장신철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을 엿보고 싶었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의 한 음식점에서 유준환(29) 위원장과 김해성(37) 부위원장을 만났다. LG전자 사무노조는 생산직 중심이던 기성 노동운동 판에 MZ세대가 주축이 돼 설립(2월 25일)한 첫 연구·사무직 노조다. 이후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금호타이어 등으로 번지고 있다.

 
LG전자 사무직 노조 유준환 위원장(오른쪽)과 김해성 부위원장은 사무직 노조에 대한 MZ세대의 분노라는 분석에 대해 "참았던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고, 제대로 얘기할 뿐이다. MZ 세대만의 불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LG전자 사무직 노조 유준환 위원장(오른쪽)과 김해성 부위원장은 사무직 노조에 대한 MZ세대의 분노라는 분석에 대해 "참았던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고, 제대로 얘기할 뿐이다. MZ 세대만의 불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원래 노조에 관심이 있었나.
 
"관심 없었다. 다만 회사 내 동료들의 불만이 매년 쌓여가는 걸 봤다. 나도 그랬다. 예컨대 이런 거다. 심할 경우 새벽까지 일해도 초과근로수당이 없다. 사원증으로 출입 기록이 자동으로 입력되는 데 수당을 신청하려면 근로시간을 직접 적어내야 한다. 굴지의 전자회사가 왜 이런 구시대적 관리시스템을 고수할까. 상사의 결재를 받도록 해 더 일해도 수당을 청구할 수가 없도록 한 것이다. 대기업이라고 임금이 많은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LG전자 사무노조는 설립 당시 연봉 내역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성과급을 제대로 주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말 SK하이닉스의 성과급 논란이 노조 설립을 촉발시킨 것인가.
 
"SK하이닉스의 성과급 사태가 근로자의 공감을 얻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노조 설립을 고민하게 한 건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건 아니었다. 오히려 회사가 '이번에는 제대로 성과급을 주겠지'라는 기대를 했으니 말이다."
 
트리거는 따로 있었다는 얘기인가.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기 이틀 전이었다. 성과급이 나왔는데 어이가 없었다. 우리 회사는 성과급 기준을 지급 직전에야 알려준다. 어떨 땐 1년 치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어떨 땐 3년 치 평균을 기준으로 책정했다는 식으로 그때그때 바꾸며 얼버무린다. 그런데 지난해엔 1년 치와 3년 치 평균이 모두 아주 좋았다. 지난해 영업이익만 1조원이었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는 액수의 성과급이 나왔다. 심지어 역대급 실적을 낸 TV 부문은 평가등급이 C였다. '영업이익은 많지만, 매출이 경쟁사(삼성전자)보다 적다'는 희한한 기준을 댔다. 팀장이나 임원조차도 '직원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느냐'고 위에다 하소연했다고 하더라. 이건 성과를 직원과 나누지 않겠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못 참겠더라. 그래서 '부양가족이 없는 내가 나서겠다'며 회사 블라인드 게시판에 설립 의사를 표명했다."
 
LG전자 사무직 노조 설립을 위해 사내 블라인드에 올린 이 문구에 3500명이 몰렸다. LG전자 사무직 노조 제공

LG전자 사무직 노조 설립을 위해 사내 블라인드에 올린 이 문구에 3500명이 몰렸다. LG전자 사무직 노조 제공

 
결국 성과급이 문제였다는 말인가.
 
"아니다. 전반적인 인사·조직상의 난맥상이 심각하다. 경영진의 사업 전략적 선택이나 직원과의 공감은 물론 그룹 내에서도 낮은 임금이나 근로조건 등이다. 전략적 선택의 경우 임원이 결정했으면 책임져야 하는 데 실패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임원은 인사 고과에서 A나 S 등급을 받고, 잘못하면 직원 탓을 한다. 수년간 쌓여왔고, 그걸 참아왔다." 
(LG전자는 2007년 애플 아이폰이 출시될 때 스마트폰 연구인력을 정리했다. 4년 만인 2011년엔 반대로 연구인력을 15% 증원했다. 그러더니 5년 뒤인 2016년에는 스마트폰 인력을 재배치했다. 자동차부품(VC) 사업을 신성장 산업으로 육성한다면서다. 그리고 5년이 흐른 올해 스마트폰 철수를 결정했다.) 유 위원장은 이를 두고 "길게 내다보는 경영전략보다 당해 경영에만 매달려서 생기는 현상 아닌가 싶다"며 "구성원은 회사가 결정하면 따를 뿐, 의견을 낼 기회가 없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인지 신기술을 개발해도 보상이 없다. 그 기술이 공전의 히트를 쳐도 기껏해야 포상금은 10만원이다"며 멋쩍어했다.
 
그렇다 해도 LG전자 직원의 충성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외부에선 그렇게 알 수도 있다.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이직이 엄청 많다. 웬만하면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신기한 건 나가려 하거나 나가도 못 잡는다는 점이다. 워낙 열악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조합원은 몇 명이나 되나.
 
"3500명이다. 이렇게 빨리 불어날 줄 몰랐다." (노조가 운영하는 포털의 모임방(밴드)에는 8400여 명이 가입했다. 노조에 정식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노조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연구·사무 직원이 전체의 3분의 1이라는 의미다.)
 
그 정도 규모면 회사도 긴장하겠다.
 
"(웃으며)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한 번도 못 만났다. 아마 없어질 줄 알았나 보다. 너무 무관심해서 설립 한 달쯤 뒤에 먼저 회사에 공문을 보냈다. 설립 인사를 하는 내용이었다. 일주일 뒤 회사에서 '잘 해보자'는 답장이 왔다. 이후 e 메일을 주고받았는데 별 내용은 없다.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우리가 분규를 일으키겠다는 것도 아닌데."
 
회사와의 소통이 없는 가운데 내부는 들끓었다. 사무직뿐만 아니라 생산직까지 사무노조에 호응했다. 사무노조의 탄생이 LG가 자랑하던 노경(勞經)문화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정도를 넘어 파도로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LG전자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LG는 협력에 바탕을 둔 노경문화를 강조해왔다. 소통이 없었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된다.
 
"32년 무분규를 얘기한다.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한데 현 노조가 직원의 생각을 제대로 대변했는지는 의문이다. 임금·단체협상은 매번 콘도에서 2박 3일 정도면 끝난다. 회사가 하자는 대로 한 건 아니었는지 짚어보게 된다. 사무노조를 설립한 뒤 생산직에서 '가입 문호를 넓혀 달라'는 요청을 쏟아내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LG전자 사무직 노조가 설립된 뒤 생산직에서도 가입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사무노조 설립에 나선 유 위원장을 '잔다르크'로 표현했다. LG전자 사무직 노조 제공

LG전자 사무직 노조가 설립된 뒤 생산직에서도 가입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사무노조 설립에 나선 유 위원장을 '잔다르크'로 표현했다. LG전자 사무직 노조 제공

 
흔히 사무노조를 두고 MZ세대의 특징이 분출된 것이라고 한다.
 
"30년 전에도 젊은 사람이 열정적으로 민주화 운동을 했다. 그렇게 사회가 변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꾹꾹 참아오던 것을 제대로 얘기하는 것일 뿐이다. MZ세대의 불만이 아니다. 계속 누적돼 있던 것들이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회사와의 단독 교섭은 어려운 상태인데.(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사무노조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기각했다. 사무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회사도 생산직과 우리가 인사조직 측면에서 다른 걸 안다. 정년과 휴가, 복리후생이 같을 뿐 임금, 직급, 승진체계, 징계규정 등이 모두 다르다. 연구·사무직의 의견과 고충을 회사와 얘기할 수 있는 토대가 있어야 한다." (사무노조는 회사로부터 사무 공간을 제공받지 못했다. 외부 공유 오피스를 빌려 노조 업무를 보고 있다.)
 
얘기를 나누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노동개혁은 MZ세대가 노동시장의 주도세력이 되는 순간 저절로 될지도 모르겠다'는. 이들은 워라밸과 공정의 기치를 존중한다. 개인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경계한다. 해만 바뀌면 월급이 오르는 호봉제도 이들에겐 불합리한 제도다. 오히려 성과에 따라 일한 만큼 정당한 대접을 받는 것을 바란다. 무조건 오래 일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밀도 있게 일하고, 쉴 때는 간섭받지 않고 치열하게 휴식하는 것, 따지고 보면 그게 노동개혁이다.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