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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남의 영화몽상] 골목의 영화, 광장의 영화

중앙일보 2021.05.18 00:26 종합 26면 지면보기
이후남 문화디렉터

이후남 문화디렉터

‘골목상영’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가 선보인 소규모 야외상영 프로그램이다. 영화제가 열린 4월 말~5월 초 전주 영화의 거리 등 특색있는 공간에 밤하늘을 배경으로 스크린을 걸고 영화를 무료로 상영했다. 번화가에 인접한 골목 안 작은 공터가 띄엄띄엄 놓인 의자와 함께 영화관으로 변신한 모습도 이채로웠지만, 쌀쌀한 밤 기온에 아랑곳없이 모여든 관객들 모습은 단연 새로웠다.  
 
예전에 영화제들이 곧잘 야외상영을 했던 대형 광장은 아닐망정 코로나19 이후 영화제가, 온라인만 아니라 모처럼 오프라인에서도 열리고 있단 실감이 났다.
 
영화제는 도시와 비슷하다. 도시의 강점이 단지 고층빌딩 숲이 아니라 고밀도로 모인 기업·인재 등의 활발한 교류에 있듯, 영화제는 영화인과 열혈 관객이 모여 일시적으로 ‘영화의 도시’를 이루곤 한다. 상영관 안팎에서 관객과, 또 제작자·감독·배우 등 영화인들 사이에 집중적인 만남이 이뤄지고 아이디어가 오간다. 영화제의 호평을 통해 새로운 영화가 일반 극장가나 해외에 소개되거나 새로운 기획이 영화화되는 길이 열리기도 한다. 재작년 칸영화제 최고상을 받은 ‘기생충’이 지난해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르기까지, 미국 곳곳의 영화제와 시상식을 순회하다시피 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가 마련한 ‘골목상영’ 모습. [연합뉴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가 마련한 ‘골목상영’ 모습. [연합뉴스]

영화제가 열리고, 영화관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것은 다른 의미도 있다. 방역이 최우선인 요즘 시대에 해당 지역이나 시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단 얘기이기도 하다. 지난해 아예 문을 닫았던 뉴욕이나 LA의 영화관이 다시 문을 연다는 소식은 백신 접종이 늘고 확진자가 줄면서 달라진 미국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한국은 영화관이 용케도 꾸준히 문을 열어왔지만, 그동안 누적된 어려움은 어느덧 한계상황에 이른 듯 보인다. 움츠러든 관객 수는 회복되지 않고, 관객이 안 드니 굵직한 한국영화마다 개봉을 미루고, 볼만한 영화가 적으니 관객의 발길이 뜸한 악순환이 거듭된다.  
 
주요 멀티플렉스는 올해 들어 개봉지원금까지 도입했다. 영화사와 극장이 영화 표 수입을 일정 비율로 나누는 것과 별도로 영화사에 추가 몫을 주어 개봉을 유도하는 것인데, 이런 자체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상영관협회는 지난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차원의 개봉지원금 마련, 영화발전기금 면제 등을 호소하고 나섰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몇몇 탁월한 개인의 힘만으로, 또 민간의 힘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모태펀드를 비롯한 산업적 재원 마련, 멀티플렉스 같은 유통망 구축 등이 영화인의 창의와 맞물렸다. 특히 김대중 정부의 지원은 적절한 시기에 중요한 마중물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새로운 마중물이 필요한 때가 왔다. 영화의 가장 큰 수입창구인 극장이 무너지면, 산업 전체의 순환이 위태롭다. ‘영화발전’ 기금도 의미를 잃는다.
 
이후남 문화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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