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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강남대로 옆 3600평 전원주택…'모델하우스왕'의 비밀

중앙일보 2021.05.16 14:25
서울 서초구 양재역 남쪽 10차선 대로 바로 옆에 있는 단층 주택 2채. 서초구에 따르면 넓은 정원을 갖춘 이 주택 2채는 무허가 건물이다. 함종선 기자

서울 서초구 양재역 남쪽 10차선 대로 바로 옆에 있는 단층 주택 2채. 서초구에 따르면 넓은 정원을 갖춘 이 주택 2채는 무허가 건물이다. 함종선 기자

 
서울 강남대로 10차선 도로 바로 옆 3600여평 땅에 넓은 잔디 정원을 앞마당으로 둔 단층 주택이 있어 지나가는 시민들의 눈길을 끈다. 서울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강남대로 변에 어떻게 이런 '전원주택'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양재역 남쪽으로 서울가정법원과 붙어있는 빨강 지붕 '전원주택'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건 2010년과 2016년 두 차례 이뤄진 '산림 훼손 공사'이후다.   

무단으로 산깎고 나무 뽑아 정원 조성
산림자원법 위반으로 300만원 벌금
지난해말 서울시에서 606억원 보상
불법결과로 토지 보상금은 주변 두배

 
말죽거리근린공원부지로 지정된 야산(양재동 산 20-2번지 일대/지목 임야)이었던 이곳에 어느 날 갑자기 펜스가 쳐졌다. 이후 굴착기 6대가 동원 돼 산이 깎이고 나무 100여 그루가 뽑혔고, 그 자리는 넒디넓은 잔디 동산이 됐다. 이런 일을 한 사람은 아파트 모델하우스 부지 100여 개를 장기 임차하거나 일부 소유하는 방식으로 확보한 뒤 건설사에 빌려주는 일을 해 '모델하우스왕'이라 불리는 H건설 육모(66)회장이다. 
 
 
2009년 11월 촬영한 위성사진. [국토정보맵]

2009년 11월 촬영한 위성사진. [국토정보맵]

2010년 6월 촬영한 위성사진. [국토정보맵]

2010년 6월 촬영한 위성사진. [국토정보맵]

2020년 5월 촬영한 위성사진. 산림 훼손 면적이 사진 왼쪽과 윗쪽으로 더 늘었다. [국토정보맵]

2020년 5월 촬영한 위성사진. 산림 훼손 면적이 사진 왼쪽과 윗쪽으로 더 늘었다. [국토정보맵]

 
당시 관할 구청인 서초구청과 경찰이 무단 산림 훼손을 제지했지만 육회장은 "벌금형을 받으면 그만이니 내 땅에서 나가라"며 막무가내로 작업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실제 육회장은 산림자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지만 2016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산을 깎아 경사도를 낮추고 평지로 만들면 임야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고 범행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의 예상은 현실이 됐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말죽거리근린공원 조성을 위해 사업지에 포함된 14개 필지를 토지주에게 보상금을 주고 사들였는데, 육회장 땅(6개 필지)의 보상금이 다른 필지 보상금보다 훨씬 높게 책정됐다. 
 
말죽거리 근린공원 입구. 등산로 안내도 옆으로 가파른 경사길에 계단이 설치 돼 있다. 함종선 기자

말죽거리 근린공원 입구. 등산로 안내도 옆으로 가파른 경사길에 계단이 설치 돼 있다. 함종선 기자

 
서울시는 육회장 소유의 토지 1만1976㎡를 606억원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사들였다. 평당 평균 1670만원꼴인데, 육회장외 다른 토지주의 보상가는 평당 800만원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감정평가사는 "일단 육회장의 땅은 다른 땅에 비해 큰 도로에 접해있기 때문에 높게 평가받은 것 같다"며 "감정평가는 '현재 상황'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고급 정원으로 잘 가꿔진 임야도 일반 임야에 비해 높은 보상을 받은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결국 육회장은 불법으로 산림을 훼손했고 그 죄로 벌금도 물었지만 그로 인해 토지 보상가는 훨씬 높게 받았다는 얘기다. 
 
서울시 공원조성과 관계자는 "예산 제약 때문에 모든 공원부지를 다 사들일 수 없어 공원부지 내 '훼손지'를 우선 보상할지 아니면 '보전지'를 우선 보상할지를 놓고 여러 회의를 거쳐 논의하다 훼손지를 우선 보상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난해말 보상이 이뤄진 말죽거리근린공원 내 부지는 2만1808㎡로 전체 부지 41만2000㎡의 일부다. 
 
서울시의 또 다른 관계자는 "서울시는 공원용지 보상가로 공시지가의 3배를 책정하는 데, 육회장 땅은 공시지가의 10배 가까이로 보상가가 책정됐다"고 말했다. 
 
강남대로에서 바라 본 '빨강 지붕 전원 주택'의 모습.주택 바로 뒤로 서울가정법원이 있다. 함종선 기자

강남대로에서 바라 본 '빨강 지붕 전원 주택'의 모습.주택 바로 뒤로 서울가정법원이 있다. 함종선 기자

 
서초구의 위임을 받아 보상업무를 진행한 서울주택도시공사(SH)관계자는 "서울시와 서초구, 그리고 토지주들이 선정한 감정평가법인 3곳의 감정가 산술평균으로 보상가격이 책정된 것"이라며 "육회장이 불법으로 산림을 훼손해 정원을 조성한 사실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말했다. 
 
육회장이 보유한 임야의 2020년 공시지가는 3.3㎡당 약 165만원으로 육회장 전체 땅 보상가 평균(평당 1670만원)에 훨씬 못 미친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감정평가사는 "서울시나 서초구가 토지 보상작업을 하기 전에 토지주의 불법 산림 훼손 사실을 적극적으로 감정평가사들에게 알렸더라면 감정평가액이 이렇게 높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보상금의 재원인 세금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육회장이 보유한 양재동 일대 땅 중 일부(2234㎡)는 서울시의 역세권 청년주택 부지로 선정돼 땅의 용도가 2종주거지에서 일반상업용지로 변경됐고 이에 따라 용적률이 기존 250%(2종 주거지 상한)에서 700%로 크게 높아졌다. 
 
육회장은 2015년 이 땅에 대해 근린생활 및 업무시설(7층)로 인허가를 받았지만,장기간 공사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후 2019년 청년주택 부지로 선정되면서 건물의 높이도 19층으로 높아졌다. 이곳에 지어질 청년주택에는 19~30㎡의 주택 338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육회장의 보유 토지 중 일부는 서울시 청년주택 부지로 선정돼 지상19층(용적률 700%)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2015년 근린생활 및 업무시설로 인허가를 받은 후 설치한 공사현황판은 색이 바랬다. 함종선 기자

육회장의 보유 토지 중 일부는 서울시 청년주택 부지로 선정돼 지상19층(용적률 700%)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2015년 근린생활 및 업무시설로 인허가를 받은 후 설치한 공사현황판은 색이 바랬다. 함종선 기자

 
중앙일보가 육회장 토지의 등기부등본을 떼 본 결과 육회장은 자신이 회장인 H건설 명의로 말죽거리근린공원 일대 토지를 2009년 매입했다. 2000년에 설립된 H건설은 육회장이 95%의 지분을 갖고 있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산은 1829억원,이익잉여금(이익을 회사에 쌓아둔 돈)이 1017억원이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380억원이다.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법으로 산림을 훼손하고 이를 저지한 구청 공무원이나 경찰에게 '내 땅에서 나가라'고 큰소리친 사람이 불법 행위 결과물로 인해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토지보상금을 더 많이 가져간 현실이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H건설 관계자는 "양재동 산20-2번지 일대는 경사도 등을 따졌을 때 충분히 주거시설 등으로 개발이 가능한 부지였으나 민간주도개발을 제한하기 위한 서울시의 '표적 수용'에 따라 우리 회사는 오히려 경제적 피해를 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년주택사업지도 서초구청의 계속된 사업방해로 정상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어 사업권과 사업지를 다른 건설업체에 매각했다"고 덧붙였다.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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