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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가해의 기억, 억압의 기억

중앙일보 2021.05.14 00:18 종합 26면 지면보기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도미야마 다에코(富山妙子, 1921~)는 제국주의 일본이 한국 근현대사에 드리운 상처를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형상화해 낸 드문 일본 현역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올해로 100세를 맞은 그녀의 판화와 유화·드로잉·슬라이드 등 한국과 연관된 170여 점이 ‘기억의 바다로’ 전을 통해 연세대박물관(~6월 30일)에서 선보이고 있다.
 
1938년 동경의 여자미술대학에 입학해 좌익 미술운동 가담자로 퇴학당한 그녀는 패전 후 규슈의 지쿠호 탄광에 들어가 10년간 ‘탄광화가’로 활동하며 강제징용 당한 조선인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일본의 번영이 한국 민족의 피땀 위에 이뤄졌음을 깨닫게 된다. 한국과의 본격적 인연은 그녀가 1960년대 남미 각국을 돌며 미국 패권주의에의 저항운동으로서 멕시코 벽화운동, 쿠바의 판화운동을 경험하고 1970년 한국을 방문한 후였다. 유신체제 하의 민주화운동을 목도한 그녀는 전쟁과 분단, 군사독재로 이어지는 한국의 현대사가 남미와 닮았으며 그 뿌리에 제국주의 일본이 존재함을 인지한다. 이후 ‘재일동포유학생 간첩단사건(1975)’으로 수감 중인 서승·서경식 형제의 구명운동에 동참했고, 투옥된 시인 김지하의 시에 자신의 판화와 음악을 입힌 실험적 슬라이드 작품 ‘묶인 손의 기도’를 제작하고, 이로써 1993년까지 한국 입국을 금지당한다.
 
광주의 피에타, 1980년, 석판화, 41x55㎝. [사진 연세대박물관]

광주의 피에타, 1980년, 석판화, 41x55㎝. [사진 연세대박물관]

그녀가 1980년 5월의 광주를 접한 것은 동경에서 뉴스와 신문을 통해서였다. “새우처럼 몸이 말린 채 결박당한 광주 학생들을 보며 휘몰아치는 분노 속에서(2019년 인터뷰)” 작업에 착수해 3주 만에 20여 폭의 ‘쓰러진 자를 위한 기도’ 연작을 완성했다. 석판화 본연의 섬세한 선을 버리고 케테 콜비츠를 연상시키는 굵고 거친 선으로 폭력에 맞서 궐기한 민중의 힘을 담아냈다. ‘광주의 피에타’는 폴 슈나이스 목사를 통해 1981년 독일에서 달력으로 제작되어 광주로 비밀리에 반입되었으며(사진), 파리와 베를린에 순회전시돼 5·18의 실상을 알렸다.
 
1980년대 중반 한국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종군위안부들을 취재한 도미야마는 귀향하지 못하고 죽어간 그녀들의 혼을 해저 세계에 켜켜이 쌓인 유골로 은유한 ‘바다의 기억’을 유화로 제작했고, 다시 이들의 구술과 증언, 탄식이 얹혀진 슬라이드로 제작해 동남아 각국으로 전했다.
 
소수와 약자에 공명하는 그녀의 작업은 ‘미술’을 넘어선 ‘운동’이 되어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확장되며, 그 중심에는 식민지배국 후예로서의 자기 성찰적 역사 인식이 숨어 있다. 그녀는 우리에게 칠흑 같은 막장에서, 남태평양 바다에서, 광주 금남로에서 소리 없이 죽어간 조선인을 기억하라고, 지금의 번영이 어떤 이들의 죽음 위에 세워진 것인지 기억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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