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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바다·마을…영도는 걷기여행 종합세트

중앙일보 2021.05.14 00:03 종합 20면 지면보기

다자우길 ② 남파랑길 부산 2코스

영도는 부산의 축소판과 같은 섬이다. 산에 기댄 마을이 바다를 바라본다. 배산임수(背山臨水)가 아니라 배산임해(背山臨海)다. 사진은 영도의 대표 명소 흰여울마을이다. 이 예쁜 마을에도 피란민의 애환이 서려 있다. 손민호 기자

영도는 부산의 축소판과 같은 섬이다. 산에 기댄 마을이 바다를 바라본다. 배산임수(背山臨水)가 아니라 배산임해(背山臨海)다. 사진은 영도의 대표 명소 흰여울마을이다. 이 예쁜 마을에도 피란민의 애환이 서려 있다. 손민호 기자

부산은 바다다. 부산을 대표하는 두 국민가요가 증거다. ‘부산 갈매기’와 ‘돌아와요 부산항에’ 모두 항구 부산의 삶을 노래한다. 아니다. 부산은 산이다. 이름부터 산이 들어 있다. 다닥다닥 들어앉은 달동네들을 다녀봤으면 부산은 산이 맞다.

영도할매 이야기 깃든 봉래산
태종대 자갈마당의 제주 해녀
절벽 위에 들어선 흰여울마을
내딛는 걸음마다 이야기 가득

 
이 모든 부산을 아울러 부산은 길이다. 계단을 따라 달동네 오르내리고, 바다 바라보며 해안을 걷다 보면 부산의 주인공은 길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부산에서도 영도를 걷고 왔다. 말하자면 영도는 부산의 축소판이다.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계단도 많고, 길도 많다. 하여 이야기도 많다.
 
남파랑길
 
부산에는 길이 많다. 동해안 종주 트레일 ‘해파랑길’도, 남해안 종주 트레일 ‘남파랑길’도 모두 부산에서 출발한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을 따라 770㎞ 이어진 길이 해파랑길이고,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남해안 1470㎞를 연결한 길이 남파랑길이다. 해파랑이 갖고 있던 국내 최장 트레일 기록을 지난해 11월 개통한 남파랑길이 거뜬히 깼다.
 
영도를 걷는 길은 남파랑길에 있다. 남파랑길 70개 코스 중에서 5개 코스가 부산에 있는데, 2코스가 영도를 한 바퀴 돌아 나온다. 부산역에서 시작해 부산대교로 영도에 들어갔다가 영도대교로 나온다. 전체 길이는 14.5㎞다.
 
영도에는 남파랑길 말고도 길이 많다. 부산 향토 트레일 ‘부산갈맷길’도 영도를 돌아 나온다. 부산갈맷길 3-3코스가 남파랑길 부산 2코스와 대부분 겹친다. 해양수산부가 조성한 ‘절영해안산책로’,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가 원도심 스토리투어 코스로 개발한 ‘깡깡이길’도 남파랑길 2코스 일부 구간과 중복된다. 이정표에 길 표식이 여러 개 붙어 있는 까닭이다. 영도에서는 길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 영도를 걸었다는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영도할매
 
남파랑길 부산 2코스는 영도의 명소를 들르거나 근처를 통과한다. 봉래산 숲길. 숲이 의외로 깊다.

남파랑길 부산 2코스는 영도의 명소를 들르거나 근처를 통과한다. 봉래산 숲길. 숲이 의외로 깊다.

멀리서 보면 영도는 바다에 뜬 산이다. 그 산이 봉래산(394m)이다. 험난한 현대사를 겪으며 봉래산 가파른 기슭에도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다. 육지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밀려온 삶들이다. 영도에서 섬과 산과 마을은 좀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부산 어묵의 대명사 ‘삼진어묵’의 어묵.

부산 어묵의 대명사 ‘삼진어묵’의 어묵.

영도에 들어온 길은 봉래동을 가로질러 봉래산을 오른다. 남파랑길 코스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봉래동을 지날 때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봉래시장 골목 옆에 있는 ‘삼진어묵’이다. 1953년 문을 열어 3대째 내려온다. 베이커리처럼 깔끔히 단장한 매장엔 사람이 많았다. 삼진어묵의 대표 메뉴 ‘어묵 고로케’는 갖다 놓기 무섭게 사라졌다.
 
봉래산에 들었다. 영도할매 전설이 깃든 곳이다. ‘영도 사람이 영도를 떠나면 영도할매의 미움을 사 망한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길라잡이로 나선 ‘부산의 아름다운 길’ 이동재(66) 전무이사가 마침 영도 출신이었다. 전설이 맞느냐 물었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망했잖아요.” 봉래산 정상에 영도할매 바위가 있다는데, 길은 정상을 오르지 않았다.
 
봉래산에서 내려온 길은 태종대로 향한다. 지금은 중간 구간이 공사 중이어서 태종대 입구까지 자동차로 이동해야 한다. 태종대는 신라 무열왕의 전설이 내려오는 유서 깊은 명승지다. 영도등대 아래 자갈마당에서 해녀가 해산물을 팔고 있었다. 영도는 ‘바깥물질’ 하러 나온 제주 해녀의 전초 기지였다. 지금도 영도 주민의 3분의 1 이상이 제주도 출신이라고 한다.
 
두 번째 송도
 
이제 영도 남쪽 해안을 걸을 차례다. 바위와 자갈이 널브러진 해안이 계속되는데, 이 해안을 부산에선 ‘이송도’라 부른다. 이송도를 알려면 먼저 송도를 알아야 한다. 영도 해안에 서면 바다 건너편에 송도 해수욕장이 보인다. 일제가 1913년 국내 최초로 개장한 해수욕장이다. 당시 송도 해수욕장은 요즘 말로 핫 플레이스였다. 영도 사람들이 바다 건너 핫 플레이스를 바라만 보다 영도 해변도 못지않다는 뜻으로 두 번째 송도, 즉 이송도라 이름 지었다.
 
이송도 앞바다에 배들이 점점이 떠 있다. 선박 주차장 묘박지(錨泊地)다. 화물선이 이 바다에서 부산항에 정박할 차례를 기다린다. 무질서하게 있는 것 같지만, 배마다 자리가 있다고 한다. 그림 같은 풍경이나 실상은 아름답지 않다. 화물선이 오래 정박해 있다는 건 그만큼 싣고 나갈 화물이 많지 않다는 뜻이란다.
 
이송도 길을 한참 걷다 보면 터널이 나온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난리가 난 명소다. 터널 안을 알록달록한 조명으로 단장했는데, 막상 인기가 있는 포인트는 반대편 터널 입구다. 오후 시간 터널 안쪽에서 역광을 받아 사진을 찍으면 소위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일부러 오후 시간에 맞춰 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아주 긴 줄이 서 있었다.
 
피란민 문재인
 
절영해안산책로의 인증사진 명소 터널.

절영해안산책로의 인증사진 명소 터널.

터널에서 나오면 연한 파란색을 칠한 포장도로가 펼쳐진다. 해수부의 절영해안산책로와 고스란히 겹치는 구간이다. 길 왼쪽에는 바다가 출렁이고, 오른쪽에는 가파른 절벽이 서 있다. 절벽 위로 위태로이 들어선 집들이 보인다. 그 유명한 흰여울마을이다. 남파랑길 코스에선 빠졌지만,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흰여울마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흰여울마을.

흰여울마을의 본래 이름은 이송도 마을이었다. 피난민들이 이송도 절벽 위에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이뤄졌다. 영도구가 달동네 정비사업을 개시한 2011년, 이송도 마을은 흰여울 문화마을로 거듭났다. 집마다 페인트를 칠하고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 넣었다. 마을이 시나브로 알려지던 2013년, 영화 ‘변호인’이 개봉했다. 천만 관객을 모은 이 영화에서 송우석(송강호) 변호사의 단골 국밥집 주인 최순애(김영애)의 집으로 흰여울마을의 단칸방 집이 등장했다.
 
이송도. 거친 해안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바다 건너 송도 해변처럼 곱다고 해서 이송도다.

이송도. 거친 해안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바다 건너 송도 해변처럼 곱다고 해서 이송도다.

영화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일화에서 비롯됐다. 흥미로운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어린 시절부터 영도에서 살았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영도에는 대통령이 다녔던 성당과 신혼살림을 했던 아파트가 남아 있다. 이송도는 월사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난 ‘학생 문재인’이 해 질 녘까지 서성거렸던 해변이다.
 
깡깡 우는 소리
 
영도대교 도개 장면. 코로나 사태로 중단됐다. [중앙포토]

영도대교 도개 장면. 코로나 사태로 중단됐다. [중앙포토]

이제 길이 끝나간다. 영도대교를 건너기 전 깡깡이마을에 들어선다. 깡깡이마을에 밴 사연도 곡진하다. 영도 어귀 대평동에는 1800년대 후반부터 조선소가 들어섰다. 대평동 조선소에서 ‘깡깡이’라는 말이 생겼다. 깡깡이는 망치로 선박의 찌그러진 부분을 펴고 녹을 벗겨내는 작업을 이른다. 망치질할 때 ‘깡깡’ 소리가 난다 해서 깡깡이다.
 
수리 조선소가 있는 깡깡이마을. [중앙포토]

수리 조선소가 있는 깡깡이마을. [중앙포토]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지매들이 깡깡이를 해서 생계를 유지했다. 아지매들은 아파트 4~5층 높이에 매달린 널빤지에 앉아 온종일 망치질을 했다. 소리 때문에 난청(難聽)이 된 아지매도, 널빤지에서 추락해 불구가 된 아지매도 많았다. 깡깡이마을도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예술 마을로 거듭났다.
 
깡깡이마을에서 나오면 영도대교다. 코로나 사태로 영도대교 도개 행사가 중단돼 아쉽다. 이제 다리를 건너 자갈치시장이 있는 남포동에 들어가면 길이 끝난다. 걸었던 길은 막상 길지 않은데,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절대 짧지 않다. 셀카봉 든 젊은 연인이 수레 끄는 꼬부랑 할매 곁을 까르르 웃으며 지나갔다.
 
◆길 정보
남파랑길 부산 2코스

남파랑길 부산 2코스

남파랑길 부산 2코스는 대부분 부산갈맷길 3-3코스와 겹친다. 부산갈맷길 이정표가 훨씬 많이 있으니, 부산갈맷길 이정표만 따라 걸어도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사회적 기업 ‘부산의 아름다운 길’이 남파랑길 체험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전문 길라잡이가 일정 내내 동행하며 숙박과 음식도 제공하는 패키지여행 상품이다. 코스와 일정을 상의해서 결정한다. 스토리텔링 전문여행사 ‘여행특공대’는 ‘절영마 영도스토리투어버스’를 운용한다. 7시간 동안 영도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상품이다.

 
부산=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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