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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과도 유족 아픔을 달랠 순 없다…‘모텔 방치 사망사건'이 남긴 분노

중앙일보 2021.05.13 11:24
“제 아들이 어쩌다 이런 기막힌 운명에 처했는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입니다. 아들은 경찰 제복 입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밝은 성격과 온화한 성품으로 유순한 아이였습니다.”
 

[사건추적]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에게도 ‘기막힌 운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가해자의 사과는 유족을 다시 기막히게 할 뿐이었다. 지난해 폭행을 당한 뒤 모텔에 방치돼 숨진 이모씨(사망 당시 22세)의 유족이 받은 편지는 시작부터 유족에게 상처가 되고 말았다. 가해자 엄마의 진심은 전달되지 못했다.
 

재판 앞두고 전달된 가해자 엄마의 편지

고인의 누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해서 “이 편지를 받고 말문이 막혔다”며 “그동안 재판장에서 가해자 측을 만나려고 수차례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일찍 와서 들어가 있고 가장 먼저 나가서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재판 이틀 전, 갑자기 변호사에게 이런 편지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사과를 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가해자의 다른 가족들도 유족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기막힌 운명을 만든 사건은 지난해 10월 부산시 부전동의 한 술집 앞 도로에서 일어났다. 이씨는 탁씨에게 폭행을 당한 뒤 의식을 잃었고, 탁씨 일행 4명이 그를 인근 모텔방으로 옮겼다. 별다른 응급조치는 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났고, 이씨는 홀로 12시간 넘게 방치돼 다음 날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달 27일, 가해자 A씨의 어머니가 유족들에게 보낸 편지. 유족 제공

지난달 27일, 가해자 A씨의 어머니가 유족들에게 보낸 편지. 유족 제공

“상해 알고도 구호 조치 안 했다 볼 수 없어”

지난 4일, 부산지법 제6형사부는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탁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해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중한 결과가 발생했고, 피해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상태에서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일행과 함께 모텔로 옮기고 떠났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도 “범행이 우발적으로 일어났고, 피고인에게 형사처분 전력이 없는 점, 범행 당시 피해자에게 눈에 잘 띄는 출혈이 발생하지는 않은 점, CCTV 상 피고인이나 그 일행이 상해를 살펴보지 않은 점에 비추어봤을 때 피고인이 피해자의 상해를 알거나 의심하면서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부산지법 청사. 연합뉴스

부산지법 청사. 연합뉴스

유족, “피가 머리 밖으로 흘러야 했느냐”

이씨의 누나는 해당 판결에도 분노했다. 그는 “동생은 뇌출혈로 사망했다. 단순히 피가 머리 밖으로 흐르지 않아 가해자들이 CCTV 상으로 다친 부분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감형이 된 건 납득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설사 당시에 머리 다친 걸 몰랐다 하더라도 동생이 한 시간 넘게 의식을 잃고 있었고, 모텔에 데려온 뒤에 다친 부분을 확인했을 수도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유족의 억울함은 경찰의 수사로 향했다. 유족들은 “경찰이 초동수사만 제대로 했어도 장례식장에서 가해자들을 그냥 보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이 목격자를 찾지 않아 탁씨와 그 일행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그는 “경찰은 ‘5명이 똑같이 말을 하니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한숨지었다.
 

“사건 당일의 일 여전히 의문…목격자 찾는다” 

이씨의 누나는 “사건 당일의 일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라며 “폭행 원인이 동생의 과격한 언행으로 보도가 됐다. 하지만 동생과 탁씨 일행이 술을 먹었던 술집 사장님은 큰소리 없이 술 먹다 계산도 잘하고 나갔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장님이 당시 싸움 현장을 본 뒤 술집에 두 팀이 더 들어왔다고 했고 주변이 나름 번화가라 목격자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그날의 의문을 풀기 위해 목격자를 꼭 찾고 싶다"고 덧붙였다.
 
재판 결과에 피고인과 검찰은 모두 항소했다. 이씨 누나는 “탁씨와 그의 일행은 우리에게 충분히 연락할 수 있었음에도 사과하지 않았다. 탁씨가 엄정한 판단을 다시 받았으면 좋겠고, 특히 제대로 된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탁씨의 가족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처음에는 경황이 없어 객관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라며 “유족들과 직접 만나서 사죄하고 싶어 여러 방면으로 요청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억울하게 보도된 부분도 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유족과 고인에 대한 용서와 사죄가 가장 먼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항소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견이 좁혀질지는 미지수다. 김경수 변호사(법률사무소 빛)는 “판결문에서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의 범위는 징역 3년에서 5년이지만, 개별 사실관계에 따라 권고형과 다른 판결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폭행 행위와 피해자의 사망까지 약 2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은 점, 폭행 직후 피해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점, 의식이 없는 피해자를 의료기관이 아닌 근처 모텔로 옮긴 점을 보면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구호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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