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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 추상의 거장, 서세옥 작품·컬렉션 3290점 기증

중앙일보 2021.05.13 00:03 종합 20면 지면보기
서세옥의 1989년 작품 ‘춤추는 사람들’. 닥종이에 수묵, 163.5x259㎝. [사진 성북구청]

서세옥의 1989년 작품 ‘춤추는 사람들’. 닥종이에 수묵, 163.5x259㎝. [사진 성북구청]

지난해 11월 29일 타계한 한국 수묵 추상의 거장 고(故) 산정(山丁) 서세옥(1929~ 2020) 화백이 남긴 작품 2300점과 평생 모은 미술 컬렉션 990여 점, 총 3290점의 미술품이 서울 성북구에 기증됐다. 12일 서 화백의 부인 정민자 여사, 장남 서도호 설치미술가(화상 연결), 차남 서을호 건축가, 며느리 김경은씨 등 유족과 이승로 성북구청장, 이건왕 성북문화재단 대표이사,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 유희영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등은 성북구청에 모여 ‘고 서세옥 작품 및 컬렉션 기증을 위한 협약식’을 열었다.
 

성북구, 서세옥미술관 건립 추진
유족 “늘 여럿이 봐야한다 하셨다”

협약에 따라 유족 측은 서 화백이 남긴 구상화와 추상화 등 주요 작품 450점을 비롯해 드로잉, 전각, 시고 등 2300여점을 무상으로 기증키로 했다.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소정 변관식, 소전 손재형, 근원 김용준 등 한국미술의 맥을 잇는 작품들이 포함된 990여 점의 서세옥 컬렉션도 함께 기증된다. 성북구는 서세옥 작가의 가치를 기리는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민자 여사는 이날 협약식에서 “서 화백은 생전에 ‘작품은 여러 사람이 보고 여러 사람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승로 구청장은 “훌륭한 작품을 기증하기로 한 유족에게 감사드린다. 예술 자원의 사회공헌에 초석을 세운 것”이라며 “비단 성북구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누구나 이 작품들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산정은 60년이 넘게 성북구에 거주하면서 문화예술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 고인을 중심으로 1978년 ‘성북장학회’가 시작됐다. 이 장학회는 성북의 미술인들이 작품을 판매한 기금을 지역 장학금으로 조성한 모임으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2009년 개관한 자치구 최초의 등록미술관인 성북구립미술관 건립을 추진했으며 명예관장을 맡았다.
 
산정은 1929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학자 서장환(1890~1970)으로 독립운동과 의병가족 지원을 위한 자금줄 역할을 한 항일지사였다. 어린 시절부터 한문과 서예, 시 쓰는 법을 배웠고, 1946년 서울대 미대 제1회 학생으로 입학해 1950년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해방 후 동양화 1세대였던 그는 서예 기법을 회화에 접목한 작업으로 평생 화단 변혁의 선두에 서 왔다. 먹으로 그리되 과거 문인화를 답습하는 대신에 간결한 선묘, 담채에 의한 담백한 공간 처리 등 파격적 수묵 추상으로 독창적 화풍을 개척했다. 1959년 묵림회(墨林會) 를 발족해 현대적 한국화의 바람을 이끌었으며, 26세에 서울대 교수가 된 뒤 40년간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그는 또한 2014년 자신의 시대별 대표작 등을 추려 100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으며, 지난 2월 문체부는 서 화백의 한국 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해 19일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앞서 산정은 1993년 국민훈장 석류장, 201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한편 성북구는 기증받은 작품들은 우선 외부 수장고에 옮긴 뒤 성북구립미술관 수장고 확장공사를 거쳐 작품들을 소장·관리할 예정이다. 올 하반기 서 화백 1주기에 즈음해 성북구립미술관에서 특별전을 열어 일부 작품을 대중에 공개한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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