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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미술관에 남북한 미술작품 나란히 걸렸다

중앙일보 2021.05.12 00:03 종합 18면 지면보기
한국 조각가 김인배의 2007년 작 ‘델러 혼 데이니(Deller hon Dainy). [사진 Sigg Collection]

한국 조각가 김인배의 2007년 작 ‘델러 혼 데이니(Deller hon Dainy). [사진 Sigg Collection]

남북한 미술이 유럽의 한 미술관에서 함께 전시 중이다. 지난달 30일 스위스 베른미술관(Bern Kunstmuseum)에서 개막한 ‘경계 넘기: 지그 컬렉션의 남북한 미술(Border Crossings. North and South Korean Art from the Sigg Collection)’ 전시. 스위스 수퍼 컬렉터 울리 지그(Uli Sigg·75)가 수집한 작품들이다.
 

수퍼 컬렉터 울리 지그 소장품
“두 체제 긴장감 보여주길 기대”
주 스위스 남북 대사 개막식 불참

지그는 1995~1998년 주중 스위스 대사를 지냈다. 중국 현대미술을 수집해 세계에 알렸고 1998년 ‘중국 현대미술상(CCAA)’도 제정했다. 그가 이번에 한국의 대표적 현대 미술 작품과 북한 만수대 창작사에서 제작된 미술품을 함께 소개하는 것을 두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남한과 북한 양쪽이 모두 불편해한 미술 전시(Korean Art Goes on Show, With Protests From North and South)’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개했다. 신문은 “이 전시는 하나의 문화 전통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완전히 달라진 두 세계를 한데 모은 드문 자리”라며 “그러나 전시는 남북한 양측에서 모두 환영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전체 전시작 중 상당수는 한국 현대미술이다. 박서보·정상화 등 단색화 작가와 이세현·김인배·이이남·정연두·신미경·전준호 등 한국 현대 작가 14인의 작품 총 40여 점이 포함됐다. 북한 미술은 7점. 전시작은 남북한으로 구분하지 않고 주제에 따라 분류했다.
 
북한 화가 박영철의 ‘미사일’(1994-2004). [사진 Sigg Collection]

북한 화가 박영철의 ‘미사일’(1994-2004). [사진 Sigg Collection]

북한 그림 중엔 풍경화도 있지만, 북한 체제 옹호 및 선전 그림이 대부분이다. 박영철의 ‘미사일’도 그중 하나다. 미사일과 화염을 배경으로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웃는 모습을 담았다. 뉴욕타임스는 “북한 미술은 연극의 한 장면처럼 연출된 장면이 들어가 있고 사실적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거의 종교적 우상으로 묘사되고 노동자들은 영웅으로 그려지는 한편 자연경관의 웅장함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한국 미술은 회화·조각·설치·도자·비디오 등 장르가 다양하다. 젊은 작가들의 실험 작품도 함께 아울렀다. ‘붉은 산수’로 유명한 이세현 작가의 대형 회화 ‘비트윈 레드 33’도 그중 하나다. 이세현 작가는 “2007년 런던에서 작업할 때 지그가 작업실을 찾아왔다”면서 “무명이었던 나의 작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작품을 사 갔다. 이 작품이 뜻깊은 전시에 소개돼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전시 기획자인 캐슬린 뷜러(Kathleen Bühler) 베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는 “분단선을 두고 남북한엔 활력 넘치는 현대미술과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이 공존한다”며 “극명하게 대비된 두 양식이 양 체제 차이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서울은 활기차고 다양한 갤러리가 있는 아시아의 예술 허브이지만, 북한에서는, 모든 전문 예술가들이 국제적으로 격리된 채 공산주의 독재 정권의 엄격한 통제 아래 (만수대창작소 등) 두 개의 공식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다”고 소개했다.
 
지그는 “내가 남북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한때 하나였던 두 체제 간 긴장 때문이었다”며 “이 전시가 그 긴장감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베른미술관은 전시 개막식에 스위스 주재 남북한 대사관에 초청장을 보냈으나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제교류재단은 이 전시에 7만7000달러를 지원했다. 교류재단이 북한 선전을 조장했다고 비난도 국내에선 나왔다. 지그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방어적 태도는 예상했지만, 자유민주국가인 한국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뷜러는 “예술은 어떠한 형태로든 시대와 환경을 반영한다. 관람객들이 이 작품들이 나온 조건과 배경을 들여다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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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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