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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둥이질만 학대냐” 혈우병 아이 '안아픈 주사' 막는 정부, 왜

중앙일보 2021.05.11 05:00
혈우병에 걸린 3살 임시환 군의 모습. 시환 군은 멍이 들면 쉽게 사라지지 않고 피가 잘 멈추지 않는 희귀난치질환 '혈우병'을 앓고 있다. 시환 군의 어머니 배한애씨는 기존 치료법인 면역관용요법 외에 새로운 치료제인 '헴리브라'를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독자 제공.

혈우병에 걸린 3살 임시환 군의 모습. 시환 군은 멍이 들면 쉽게 사라지지 않고 피가 잘 멈추지 않는 희귀난치질환 '혈우병'을 앓고 있다. 시환 군의 어머니 배한애씨는 기존 치료법인 면역관용요법 외에 새로운 치료제인 '헴리브라'를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독자 제공.

3살 임시환군의 어머니 배한애(37) 씨는 아이 몸에 든 멍을 볼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 집안은 온통 쿠션으로 도배돼 있다. 아이가 어딘가 부딪히기라도 하면 쉽게 멍이 드는데, 멍 하나만 들어도 큰 병원에 가야 해서다. 
 
시환이의 병을 알게된건 생후 7개월 때다.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어딘가에 부딪힌 시환이는 멍이 쉽게 들었는데, 한번 든 멍이 사라지지 않았다. 멍울이 잡혔고 피가 나면 지혈이 되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겨 찾은 병원에서는 혈우병이란 진단을 내렸다. 
 
혈우병은 몸의 X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의 선천성, 유전성 돌연변이로 혈액 안의 응고인자(피를 굳게 하는 물질)가 부족해져 발생하는 출혈성 질환이다. 1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성 난치질환으로 작은 상처에도 3일간 피가 멈추지 않을 만큼 지혈이 어려워 위험한 병이다. 
 
병을 알게 된 후 시환이는 일주일에 2~3번 면역관용요법(ITI) 치료를 위해 정맥에 주사를 맞아야 했다. 이 치료법은 혈우병 항체 환자에게 일정 기간 지속해서 혈액응고인자를 주입하는 시술이다.
 
치료 과정은 쉽지 않다. 어린 아이들은 정맥을 찾기 어려워 주사 바늘을 여러 번 꽂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멍이 생기거나 피가 나기도 했다. 아이에게 피가 나면 주사를 맞을 수 있는 병원이 근처에 없어 얼음팩을 상처부위에 찜질하며 우는 아이를 태우고 1시간 가량 떨어진 전문병원을 찾아야 했다. 
시환 군의 발 모습. 시환 군의 엄마 배한애 씨는 “아이들이 살은 통통해도 혈관이 없어서 발등까지 샅샅이 찾는다. 전문 간호사도 정맥주사 놓기가 어렵다. 여섯 번까지 주사를 꽂은 적도 있다”며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이도 울고 부모도 간호사도 운다”고 말했다. 독자 제공

시환 군의 발 모습. 시환 군의 엄마 배한애 씨는 “아이들이 살은 통통해도 혈관이 없어서 발등까지 샅샅이 찾는다. 전문 간호사도 정맥주사 놓기가 어렵다. 여섯 번까지 주사를 꽂은 적도 있다”며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이도 울고 부모도 간호사도 운다”고 말했다. 독자 제공

 
배씨는 “아이들이 살은 통통해도 혈관이 없어서 발등까지 샅샅이 찾는다. 전문 간호사도 정맥주사 놓기가 어렵다. 여섯 번까지 주사를 꽂은 적도 있다”며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이도 울고 부모도 간호사도 운다”고 말했다. 
 
좀 더 나은 치료법이 있다. 정맥주사를 맞지 않고 일주일의 한두 번 피하주사로 2~4주간 정상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신약 ‘헴리브라’가 개발됐다. 문제는 성인 1인 기준 연간 3억원 가량이 드는 치료비. 지난 2월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배씨는 걱정을 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환이는 신약을 처방받을 수 없었다. 12세 미만 혈우병 아이들의 헴리브라 처방 및 건강보험 적용 조건을 ‘면역관용요법(ITI)에 실패한 경우’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이 붙은 이유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측은 “해당 조건은 국내외 허가사항, 임상연구 문헌 등을 참고해 만든 것이다. 의학적 자문을 거쳤다. 정맥관을 삽입하는 ITI 요법이 안정성이 더 높다”라고 설명했다. 경제성과 형평성도 고려 대상이었다. 혈우병의 경우 평생 지원이 필요한 만큼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해야 하고 이 기준을 없앨 시 다른 난치질환 치료제 처방 기준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혈우병

혈우병

혈우병 아이를 둔 가족들은 ITI 용법과 헴리브라 치료법을 환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장한다. 혈우병 환자 엄마들은 지난 4일 강원도 원주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배씨는 “몽둥이로 아이를 직접 때려야만 학대가 아니다”며 “새 치료법을 환자와 가족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씨는 “(헴리브라 치료 시) 성인에게 연간 3억원 정도 비용이 든다는 얘기도 과장됐다. 아이에게 1년 간 헴리브라 치료했을 때 연간 6000만원 정도 비용이 들었다고 확인했고 이는 기존 치료 때 3~4분의 1수준이다”고 말했다. 
 
지난 9일에는 “헴리브라 급여기준 중 면역관용 요법 급여기준을 변경해 주세요”라는 게시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했다. 두 돌 된 혈우병 아기를 키우는 엄마라고 밝힌 청원인은 “고용량 약물을 거의 매일 수년간 맞아야 하는데 (ITI 치료는) 성공할 확률이 70%도 안 된다. 그런데 재발하거나 실패하면 (헴리브라를) 맞춰 주겠다고 한다. 왜 보호자에게 치료제와 치료법을 선택할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인가”라고 호소했다. 
 
유철우 을지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세계혈우연맹(WFH)은 헴리브라가 기존 치료보다 예방 요법의 효과가 높다고 권고하고 있다”며 “12세 미만에게 (투약을) 제한할 의학적 근거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한승민 연세암병원 소아혈액종양과 교수는 “다른 나라의 경우 12세 미만에게 헴리브라 사용을 제한하지는 않는다”면서도 “다만 ITI 요법은 항체를 없애는 치료로서 유용한 방법이기 때문에 어떤 치료를 우선순위에 놓을지는 나라마다 합의를 통해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심평원 오는 18일 전문가 회의 열어 신청 보류 사례 관련 인정 여부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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