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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만 바라보지 않겠다”→“조급해하지 않겠다” 신중해진 文, 왜?

중앙일보 2021.05.10 18:26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남북 관계와 관련해 "남은 임기에 쫓기거나 조급해하지 않겠다"며 "다만 평화의 시계를 다시 돌릴 기회가 온다면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층 신중해진 태도에 취임 초기부터 추진하던 '한반도 운전자론'을 사실상 내려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① 바이든 새 대북정책 만족감 반영된 듯 

이같은 입장 변화는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 방향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외교안보 부처 내에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한국의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됐다는 자평과 함께 고무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1년 전엔 "남북 간 할 수 있는 일 하자"
전문가 "한·미 동맹 중심 상황 관리 집중"
美 정책 공개 전 '너무 앞서간 평가' 지적도

 
실제 문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대북정책 전모가 다 안 밝혀졌지만 우리 정부가 바라는 방향과 거의 부합한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는 지난해 5월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말고 남북 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은 해 나가자"며 남북 관계 과속도 개의치 않는 듯 접근했던 것과 확연히 대조된다. 당시만 해도 운전석에 앉은 것은 한국이고, 미국이 자꾸 브레이크를 밟게 한다면 북한만 태운 채 출발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였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바라는 방향과 거의 부합하다"는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바이든 행정부가 설정한 '비핵화 네비게이션'의 경로가 문재인 정부가 추구해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일치한다는 평가로 읽힌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3일(현지시간) "북한이 외교의 기회를 잡길 바란다"고 말하는 등 북핵 문제에 있어 외교적 해법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운전대를 바이든 대통령에게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신뢰와 함께 이제 자신은 운전석에서 내려와 언제든 차량이 출발할 수 있도록 연료를 주입하는 주유소 같은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거란 비유도 가능하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임기가 1년 남은 문재인 정부로서는 내년 대선 등 국내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는 현실 인식이 필요하게 됐다"며 "이제는 북한에 매달리기보다는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한 상황 관리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바이든표 새 대북정책 뭐가 다를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바이든표 새 대북정책 뭐가 다를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② 한·미 정상회담 전 '北 도발 자제' 신호도

문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이런저런 반응이 있었지만, 대화를 거부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도 이제 마지막 판단의 시간을 가질 것"이라며 "다시 한번 마주앉아서 협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만큼 북한이 호응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열흘 남짓 남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중요 의제로 다룰 예정인 만큼 북한이 도발을 통해 판을 깨지 않도록 자제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거란 분석이다.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가 처음으로 대북 정책 방향을 발표한 직후인 지난 2일 하루동안 대남·대미 비판 담화 3개를 연달아 쏟아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미국의 새 대북 정책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고,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 연설과 미 국무부 대변인의 북한 인권 관련 발언을 문제삼는 식의 우회적 방법을 택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북한 역시 무조건 대화를 걷어찰 의도는 없는 것으로 해석, 북·미 대화 불씨가 살아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미국이 주최한 화상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듣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미국이 주최한 화상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듣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③디테일 공개도 안됐는데…'아전인수' 우려도

하지만 일각에선 여전히 한국이 앞서나간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싱가포르 선언의 토대 위에서 외교를 통해 유연하고 점진적·실용적 접근으로 풀어나가겠다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문재인 정부에 유리한 쪽으로만 상황을 바라보는 '아전인수식 해석'일 수 있어서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정책의 세부사항을 전혀 공개하지 않은 시점에서 제3자인 한국이 정책의 일면만 부각해 앞서나간 평가를 할 경우 북한에도 잘못된 신호를 주거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한·미 당국자의 발언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바이든 행정부 새 대북정책의 한 축이 '외교적 관여'인 건 맞지만 다른 한 축에는 여전히 '제재와 압박'이 존재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일 "비핵화라는 궁극적 목표를 두고 북한이 특정 조치(particular steps)를 취했을 때 (제재) 완화 등을 제공할 것"이라는 미 정부 당국자의 발언을 소개했다.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 없이 제재 완화는 없다는 뜻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바이든 행정부의 기본 입장은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면서도 대북 제재를 유지하고 인권 문제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미국이 북한을 향해 조정되고(calibrated) 단계적이며 실리적인 조치를 취하더라도 그 전제는 어디까지나 북한의 확실한 비핵화 의지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고 설명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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