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 번 만든 규제는 계속 간다"…일몰규제 100개중 폐기는 3개뿐

중앙일보 2021.05.10 14:32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력업종 규제개선 간담회 2차 회의’가 열렸다.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력업종 규제개선 간담회 2차 회의’가 열렸다.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 지난 2010년 시행된 대형마트 출점제한 규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당시 통상마찰을 우려해 3년 후 폐지를 전제로 도입됐다. 하지만 일몰 시점마다 기간이 3년 또는 5년씩 연장돼 현재는 일몰 시기가 2025년으로 미뤄졌다. 3년짜리 한시적 규제가 15년간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규제일몰제를 개선하기 위해 10년이 지난 규제는 자동으로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또 규제일몰제의 효력이 지난뒤에도 규제가 계속 필요하면 그 때는 재입법을 통해 신설하자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규제일몰제 개선방안을 10일 제안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재검토형 일몰 규제 9200건 중 실제 폐기된 건 266건인 2.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대부분(93.4%)의 규제는 연장된 것으로 집계됐다. 규제일몰제는 시행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 폐지되는 효력 상실형과, 일정 기간 경과 후 규제 연장 여부를 검토하는 재검토형이 있다. 전경련은 효력 상실형 일몰 규제 관련 통계는 공개되지 않아 이번 분석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일몰대상 규제는 부서 자체 평가를 거쳐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심사한 후 법령 내에서 정비를 추진하게 된다. 전경련은 이를 두고 “실질적인 영향 평가 없이 단순 재연장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형식적이고 부실한 심사”라고 지적했다. 한국법제연구원 입법평가연구를 통해 일몰규제 심사 평가 사례를 확인한 결과 “규제가 필요하므로 존속할 필요가 있다”거나“주기적인 검토가 필요하므로 연장할 필요가 있다”는 등 구체적인 이유 없이 일몰 시점이 연기됐다는 것이다. 
 

구체적 정보 없이 규제 연장 심사 

재검토형 일몰규제 심사결과.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재검토형 일몰규제 심사결과.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일몰제 운영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일몰 대상 규제 목록과 심사결과에 대한 정보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규제 개혁 백서를 통해 심사결과에 대한 전체 통계와 주요 정비사례만 확인할 수 있다. 전경련은 “일몰규제를 연장할지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규제개혁위원회 위원들조차 개별 규제의 검토 내용을 모르고 의결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일몰을 전제로 규제를 도입한 후 연장 또는 재연장을 거쳐 사실상 존속기한이 의미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규제는 그대로 두고 일몰기한만 삭제되기도 한다. 전경련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규제를 유지, 개선하기로 결정된 규제 8589건 중 21.7%(1862건)는 일몰설정이 해제됐다. 일몰제가 규제 도입시 반발을 낮추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몰규제, 효력상실 원칙이지만 98%는 재검토 

규제 일몰제는 행정규제기본법에 규정된 법정제도다. 1997년 8월 행정규제기본법 제정과 함께 효력상실형 일몰제가 도입됐고 2013년 법 개정을 통해 재검토형 일몰제가 도입됐다. 국무총리 훈령에 따라 신설·강화되는 경제규제는 원칙적으로 효력상실형 일몰제를 설정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일몰이 설정된 규제 가운데 효력상실형은 4767건 중 70건으로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규제는 모두 재검토형으로 설정돼 있다.
 
규제 사후영향 평가가 활발히 이뤄지는 호주의 경우 모든 규제가 발효일로부터 10년 후 자동으로 폐지된다. 만약 동일하거나 유사한 내용의 규제가 계속 필요한 경우 재입법 절차를 거쳐 새로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규제를 만들더라도 의회가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 해당 규제는 즉시 효력을 상실하고 6개월간 동일한 내용의 규제는 재입법할 수 없다.
 
호주 정부는 일몰제가 규제를 줄이는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 2017년 호주 법무부가 발표한 ‘일몰제 시행 결과 사후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일몰 대상 규제 34%가 대체 입법 없이 폐지됐고 28%는 일몰기한이 오기 전 폐지됐으며 38%는 대체입법이 만들어졌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모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 개혁을 추진하려면 효력상실형 일몰제 적용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며 “일몰제 관련 정보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