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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외교행낭

중앙일보 2021.05.10 00:22 종합 29면 지면보기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외교행낭이 불가촉 특전을 누리게 된 60년 전이다. 1961년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이런 특전이 명문화됐다. 세관검사도 받지 않고 X-레이 검사대상에서도 제외됐다. 말 그대로 프리패스였다.
 
외교행낭은 겉모습부터 다르다. 다른 화물과 구분하기 ‘diplomatic pouch’란 영문이 찍혀 있다. 규격 제한은 없다. 서류봉투부터 이민 가방까지 형태도 다양하다. 한국의 경우 가장 작은 것은 가로 70㎝, 세로 80㎝ 정도다. 드물지만 가로·세로가 2m에 달하는 것도 있다. 주로 본부와 재외공관 사이에서 서류나 외교관 생활용품을 옮기는 목적으로 활용하고 민간 여객기 등이 나른다.
 
외교행낭의 특전은 최근 깨지는 추세다. X-레이는 아니지만 금속탐지기는 거친다. 빈발하는 국제 테러로 외교행낭을 검사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특전을 악용한 사례가 많아서다. 2017년 김정남 독살에 사용한 신경작용제 VX도 외교행낭으로 반입됐을 것이라고 국가정보원은 추측했다. 2015년 방글라데시 주재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은 금괴 170개를 외교행낭에 넣어 반출하려다 체포됐다. 금괴는 약과다. 수류탄과 편지폭탄을 외교행낭으로 밀반입하려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외교행낭이 납치 용품으로 악용된 적도 있다. 나이지리아는 1984년 영국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에서 망명한 알하지디코 전 운수장관을 납치해 외교행낭에 담아 본국으로 납치하려다 적발됐다.
 
외교행낭은 제대로 활용하면 요긴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08년 국제우주정거장(ISS) 화장실 수리에 외교행낭을 활용했다. 러시아가 설치한 우주인 공용화장실이 펌프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 남자 우주인 3명은 임시 처리 방법으로 화장실 문제를 해결했으나 소변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곤란을 겪었다. NASA는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발사를 앞두고 러시아에서 0.5m 길이의 특수펌프를 들여왔다. 촉박한 일정 탓에 각종 장비는 외교행낭에 넣어 특별기편으로 운송했다.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부인의 영국 도자기 밀수 의혹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야당은 “외교행낭을 악용한 사례”라고 비판한다. 박 후보자는 “외교행낭을 이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해양수산부는 “외교행낭 반입 물품의 영리 행위는 처벌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외교행낭은 죄가 없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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