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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바다는 어떤 물도 가리지 않는다” 3김과 두루 손잡은 협치의 거목

중앙일보 2021.05.10 00:02 종합 16면 지면보기
이한동 전 총리가 지난 8일 별세했다. 1993년 12월 김영삼 대통령에게 민자당 원내총무 임명장을 받는 이한동 의원. [중앙포토]

이한동 전 총리가 지난 8일 별세했다. 1993년 12월 김영삼 대통령에게 민자당 원내총무 임명장을 받는 이한동 의원. [중앙포토]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지난 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7세.
 

이한동 전 국무총리
판·검사 뒤 포천서 국회의원 6선
“어려워도 여야 대화로 타협해야”
97 대선 경선 이인제에 8표차 3위
DJ 때 사상 첫 청문회 거친 총리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군 복무 중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전역 후(1963년) 서울지법 판사로 임관하며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짧은 변호사 생활을 거쳐 1969년 검찰로 자리를 옮겼다.
 
검사장 진급을 눈앞에 둔 1980년, 당시 막 집권한 신군부로부터 정계 입문을 제안받고 삶의 항로가 송두리째 바뀐다. 애초 검찰총장이 꿈이었던 데다, 아내가 거의 드러눕다시피 하며 정계 진출을 막아섰다고 한다. 고인의 의원 시절 보좌관을 지낸 김영웅씨는 “서슬 퍼렇던 신군부 시대에 명을 비껴갈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고인의 운명도 바뀐 것”이라고 했다.
 
2002년 2월 김대중 대통령과 국무회의 참석하는 이한동 총리. [중앙포토]

2002년 2월 김대중 대통령과 국무회의 참석하는 이한동 총리. [중앙포토]

1981년 당시 여당인 민정당 소속으로 고향인 경기 포천에서 당선돼(11대) 16대까지 내리 6선을 했다. 여당의 원내총무(현 원내대표)·사무총장·정책위의장 등 당 3역을 두루 지냈고, 노태우 정부 내무부 장관과 김영삼 정부 때 국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의원 시절 고인의 신조는 ‘아무리 어려운 협상도 대화를 통해 여야 간 타협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좌우명도 ‘해불양수(海不讓水·바다는 어떤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였다. 1987년 개헌 협상에 민정당 측 대표로 참여해 야당과 원만한 협의를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의 정책 비서로 정계 입문한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은 고인에 대해 “정치권의 갈등을 언제나 최소화하려 노력했던 분”이라고 평했다.
 
2002년 5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만난 이 총리. [중앙포토]

2002년 5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만난 이 총리. [중앙포토]

고인이 여권의 ‘9룡’ 중 한명으로 뛰었던 1997년 신한국당 대선 경선은 한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고인은 2위 이인제 후보에게 불과 5표 차(1776 대 1771, 재검표 뒤 8표 차이로 확인) 뒤진 3위를 기록했다. 2위를 차지한 이 후보는 결선 투표에서 1위 이회창 후보에게 패한 뒤 탈당을 감행, 독자 출마했다. 만일 고인이 2위를 했다면 ‘이인제 탈당’이 불가능했을 거란 해석이 많다. 그럴 경우, 그해 말 대선이 어떻게 흘렀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고인은 김대중(DJ) 정부 2년 차이던 1999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로 활동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이 115석(총 273석)에 그치자 DJ는 ‘식물 청와대’를 극복하기 위해 17석이던 자민련과의 공조 복원을 꾀했다. 그 과정에서 고인을 국무총리에 임명했는데, 헌정사상 인사청문회를 거친 첫 총리였다.
 
2002년 대선 출마선언 모습. [중앙포토]

2002년 대선 출마선언 모습. [중앙포토]

이 전 총리의 별명은 그의 이름을 딴 ‘한또’ 등이다. 말술인 그는 폭탄주를 즐겼지만, 정계 은퇴 후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을 빈소에 보내 유족에게 조의를 표시했다. 유 실장은 조문 뒤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우리나라 정치에서 통합의 큰 흔적을 남기고 지도력을 발휘한 이 전 총리님을 기리고, 유족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전해달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설명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이용모 건국대 교수와 딸 지원·정원씨, 사위 허태수 GS그룹 회장과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사장, 며느리 문지순 동덕여대 교수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발인은 11일이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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