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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82m 황룡사탑 본딴 ‘경주타워’ 디자인 도둑질 사건

중앙일보 2021.05.09 09:00

[더,오래] 류희림의 천년 신라 이야기(1)

KBS 기자, YTN워싱턴특파원, YTN사이언스TV 본부장, YTN 플러스 대표이사 등 30년이 넘는 기자 생활을 거친 신라 문화 지킴이다. 현재 경주엑스포 사무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우리 민족의 기본이자 뿌리가 되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희미해지고 있는 시대에 천년을 잇는 신라와 서라벌의 이야기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의 길을 제시해본다. <편집자>

 
고대신화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등장하는 비범한 인물과 장소의 시작은 한결같다. 평범하지 않은 출생의 비밀. 오늘부터 전할 신라역사 또한 마찬가지. 알에서 나온 혁거세는 지구상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천년왕조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서도 이번 이야기의 중심은 ‘황룡사 9층 목탑’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상징하는 225척의 불탑으로 현재 높이로 환산하면 입이 쩍 벌어지는 82m에 이른다. 이 탑은 삼국통일 과정을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 보았지만, 몽골의 침입으로 불에 타 사라지고 그 실체는 마치 전설처럼 전해진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의 '황룡사 9층 목탑' 모형. [사진 경주시]

황룡사 역사문화관의 '황룡사 9층 목탑' 모형. [사진 경주시]

 
이 황룡사 9층 목탑의 실물 크기를 그대로 본떠 만든 현대건축물 또한 탄생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경주엑스포대공원 가운데 우뚝 서 있는 경주의 랜드마크 ‘경주타워’의 비하인드 스토리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경주타워’는 지난 2004년 건축물 설계 공모를 거쳐 2007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실크로드를 상징하는 유리와 철골구조. 황룡사 9층 목탑의 실제 높이 82m를 음각으로 새긴 유려한 디자인은 신라 역사문화의 상징성을 그대로 담아내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사실 이 디자인은 공모에서 1위를 차지한 건축가의 작품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2위를 차지한 재일교포 건축가 유동룡 선생(활동명 이타미 준)이 제출한 것이다. 그의 디자인은 공모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돼 상금 1000만원을 받고 최종 당선작에는 뽑히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경주타워는 유 선생의 출품 디자인과 흡사했던 것.
 
지역적 특성과 건축이 위치할 공간의 조화를 추구했던 유동룡 선생은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타워 중심에 음각으로 새겨진 빈 공간을 통해 신라 건축문화의 상징을 표현하는 불탑의 모습을 되살리고자 했다는 것이 후문이다.
 
건물이 준공된 직후인 2007년 유 선생은 제자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건축으로 인정받던 거장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걸음에 나섰다. 쉽지 않은 줄은 알았지만 4년이나 걸렸다.
 
2009년 엑스포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이 소송은 항소심까지 가서 승소했다. 이는 2012년 ‘건축물 저작권자 성명을 표시해 달라’는 소송으로 이어졌고 원고 일부 승소판정을 받으며 원 디자인 저작권자로 권리를 찾았다. 그러나 최종판결이 있기 1년 전 유동룡 선생은 유명을 달리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사실 필자가 현재 경주엑스포의 사무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만큼, 이 이야기는 부끄러운 이야기다. 그러나 중요한 이야기다. 때문에 많은 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연지에서 바라본 경주타워. [사진 경주엑스포대공원]

연지에서 바라본 경주타워. [사진 경주엑스포대공원]

 
지난 2019년 첫 부임 후 경주타워와 관련된 디자인 저작권 소송에 대한 보고를 받고 말 그대로 충격에 휩싸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사장인 이철우 경북도지사에게 해당 내용을 보고했고, 이철우 도지사는 “즉각적인 사과와 적극적인 시정조치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이같은 대승적인 결단으로 전임자들의 과오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의 마음을 유가족에게 전했고, 지난해 2월 선생의 유가족이 참여한 대대적인 ‘경주타워 원 디자인 저작권자’ 선포식을 진행했다. 또 상처받은 거장의 명예회복을 위해 작품 전시 등 다양한 협력을 지속해 추진키로 했다.
 
경주타워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화려한 외관과 조명과 어우러진 웅장한 모습으로 경주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방송과 광고 등의 촬영 배경으로도 꾸준하게 모습을 보이며 명실상부한 경주의 랜드마크이자, 21세기에 만나볼 수 있는 황룡사 9층 목탑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경주타워가 아프고 먼 길을 돌아온 만큼 더욱 뜨거운 결실을 맺어, 거장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는 명품건축물로 지속해 성장하길 바란다.
 
경주엑스포대공원 사무총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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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희림 류희림 경주엑스포대공원 사무총장 필진

[류희림의 천년 신라 이야기] 세상일에 관심이 많던 기자에서 신라문화의 글로벌 관심을 이끄는 역할로. 현재 경주엑스포 사무총장으로 재직. KBS 기자, YTN워싱턴특파원, YTN사이언스TV 본부장, YTN 플러스 대표이사 등 30년이 넘는 기자생활을 통해 느낀 흔들리지 않는 기본의 중요성. 우리 민족의 기본이자 뿌리가 되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희미해지고 있는 시대. 천년을 잇는 신라와 서라벌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의 길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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