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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임금 푼돈" 벼락거지에 좌절…심리방역 비상걸린 기업들

중앙일보 2021.05.09 06:00
코로나블루 [아산병원]

코로나블루 [아산병원]

대기업 사원인 박모(34·여)씨는 "내가 생각해도 요즘 짜증이 부쩍 심해졌다"고 말했다. 조그만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재택근무 중에는 외출을 거의 못 했다. 집콕 생활을 하며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일상이 됐다. 불어나는 체중만큼 온갖 걱정이 그를 휘감았다. 진료를 받아볼까도 생각했지만 '다들 그런데, 뭐'라며 넘겼다. 청소, 가구 재배치 같은 집안일에도 매달려봤지만 소용없었다. 업무 처리 속도는 덩달아 느려졌다. "이러다 무기력해져서 사회 생활에 지장을 받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늘 머리 속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36)씨는 "제 연봉이 적은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푼돈으로 보여요"라고 말했다. 무주택자인 이씨는 부동산 가격 폭등에 "내가 받는 연봉으로도 (내 집 마련은) 완전히 물 건너갔어요"라고 했다. "월급명세서에서 세금 떼가는 것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한다. 이 와중에 주식과 코인 광풍이 불면서 "누군가 수 억원, 수 십억원을 벌었다는 얘기가 들릴 때면 '나는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에 진이 빠진다"고 한다. 그는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있습니까"라며 "출·퇴근은 그저 관성의 법칙일 뿐"이라고 말했다.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에 설치된 전광판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알트코인 시황을 나타내고 있다.  이더리움과 이더리움클래식 등 알트코인 투자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자 국내 4대 가상자산 거래소의 하루 거래량이 45조원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스피 하루 거래량의 3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뉴스1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에 설치된 전광판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알트코인 시황을 나타내고 있다. 이더리움과 이더리움클래식 등 알트코인 투자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자 국내 4대 가상자산 거래소의 하루 거래량이 45조원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스피 하루 거래량의 3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뉴스1

 
직장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우울증(코로나 블루)에 정책 실패에 따른 집값 폭등, 코인 광풍 등에 따른 자괴감과 상대적 박탈감까지 겹치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통계에 따르면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과 같은 심리적 불안정성이 업무 관련 전체 질병의 44%를 유발한다. 근로 손실 일수의 57%가 이로 인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코로나19가 덮친 지난해 정신질환과 관련된 산재 신청이 517건(11월 말 현재)에 달했다. 2019년 331건에 비해 56.2%나 늘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최대치다.
 
서울시의 '2020 서울서베이 도시정책지표조사'에선 지난해 일상생활의 스트레스 체감율이 44.3%였다. 전년(39.4%) 대비 4.9%포인트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 경험률은 50.7%나 됐다.
 
기업들은 비상이다. 모 그룹의 임원은 "일부 직원의 경우 허공에 붕 떠 있는 것 같다"며 "생산성이 확연하게 떨어지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우울증과 불안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연 1조 달러에 달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 임원은 "코로나 블루에 벼락거지로 인한 허탈감이 덧씌워져 임금 같은 근로조건을 좋게 한다고 다잡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면서도 "사내 건강성을 높이기 위해 심리방역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8일 오전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영업부에서 고객들이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공모주 일반청약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8일 오전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영업부에서 고객들이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공모주 일반청약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포스코는 기존에 운영하던 심리상담 프로그램인 '휴(休)토피아'를 강화했다. 자존감 회복에 중점을 두면서 가족 문제와 육아까지 케어한다. 지난해에만 2146명의 직원이 이 프로그램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했다. 박진우 포스코 커뮤니케이션 실장은 "최근에는 직원 가족에 대한 상담이 부쩍 많아졌다"며 "육아스트레스는 물론 가정 내 갈등, 부모의 노년기 우울증까지 케어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전국 100여 개 심리상담센터를 갖추고 직원 힐링프로그램(EHP)를 활성화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특히 롯데쇼핑은 직원 심리방역 프로그램인 '리조이스'를 롯데백화점에도 개설해 고객이나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심리방역 기부에 나서고 있다. 롯데는 단순한 상담을 넘어 커피나 원예 같은 친숙한 소재로 힐링 테라피를 제공하고, 뇌파 측정을 통한 스트레스 지수를 관리하는 등 토탈 마음 안정 프로그램으로 확대하고 있다.
 
서울시는 코로나19로 무력감과 우울함을 느끼는 시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3월 말까지 집 앞 골목길부터, 주요 도심지 및 상권,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과 선별진료소 주변 등에 봄꽃거리를 조성했다. 연합뉴스

서울시는 코로나19로 무력감과 우울함을 느끼는 시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3월 말까지 집 앞 골목길부터, 주요 도심지 및 상권,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과 선별진료소 주변 등에 봄꽃거리를 조성했다. 연합뉴스

SK텔레콤은 직원을 대상으로 하던 '마음 챙김 프로그램'을 일반인을 위한 상품으로 업그레이드해 출시하기도 했다. 명상 프로그램인 '마음 엿보기 앱'이다.
 
쿠팡은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쿠레스트', 힐링을 위한 '스트레스 톡톡' 등 상황별 심리 방역 체계를 운영 중이다. 이석호 쿠팡 전무는 "최근에는 직무로 인한 상담보다 개인적인 일을 상담(60%)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코로나 블루에 대처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멘탈 응급프로그램인 'First Aid Program'이다. 사고 등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거나 코로나19로 인한 공포감을 덜어주기 위한 심리방역 제도다.
 
외국 기업도 직원들의 심리 방역에 공을 들이기는 마찬가지다.
 
일본 닛산식품홀딩스는 지난해 8월 '재택근무 우울증 예방팀'을 발족시켜 이틀에 한 번꼴로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한다. 관리가 필요한 지수를 기록한 직원에겐 전담 간호사를 배정해 주기적으로 온라인 면담을 한다. NTT도 전 계열사 직원을 대상으로 매주 온라인 정신건강 검사를 한다. 이 검사를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소통창구로 기능을 확장하고 있다.
 
영국 로이드는 1년에 5만 파운드(약 7800만원)까지 정신과 진료와 치료를 지원한다. 수면관리, 정신분석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푸르덴셜보험은 직원 설문을 통해 생산성과 웰빙 수준을 주기적으로 측정한다, 가장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분야에 지원 프로그램 집중한다. 폴크스바겐은 사내 메일을 오후 6시 15분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발송 중단토록 하는 등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사안을 체크해 조정한다.
 
박두용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코로나19의 대유행에다 극심한 사회변동 등으로 심리방역은 이제 필수가 됐다"며 "심리적 불안이 사회와 기업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심리방역을 의료의 영역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와 기업의 영역으로 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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