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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가지 말고 돈 벌라” 고용허가제 탓 가족 상봉 못 해

중앙선데이 2021.05.08 00:20 735호 9면 지면보기

[SPECIAL REPORT] 외국인 230만 시대 

지난해 6월 30일 청와대 앞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생존과 체류 보장을 요구하는 이주 노동자 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스1]

지난해 6월 30일 청와대 앞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생존과 체류 보장을 요구하는 이주 노동자 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스1]

이주노동희망센터 한국어교실에서 수업받는 남성 네팔 노동자는 연장근로수당‘도’ 챙겨주는 회사가 한식도 제공하고 있다며 근무지에 대해 매우 만족해했다. 1인 1실 기숙사도 지급돼 상대적으로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있기까지 하다고 했다. 회사 칭찬 일색인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운 좋게도 그가 괜찮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그가 돌도 채 되지 않은 딸을 네팔에 두고 온 지 4년10개월. 한국에서 드디어 딸을 만났다는 얘기에 가슴이 저렸다. 연차를 써서 네팔에 다녀올 수 없었냐고 물으니, 고용주가 ‘돈 벌러 왔으니 네팔도 가지 말고 돈 벌라’고 했단다. 네팔 노동자는 재입국 특례(옛 성실근로자)로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 앞으로 4년10개월은 더 일하고 싶을 것이다. 한쪽 팔에 안을 수 있었던 딸은 다시 만날 땐 십 대 사춘기 소녀일 테다. 돈 벌러 한국에 왔으니 당연히 불편, 부당함은 노동자 혼자서 다 감수해야 하는 일일까.
 

갓난아이 딸 두고온 네팔 노동자
5년 만에 만났다는 현실 가슴 아파

이주노동자 인권 침해 사례 많아
국제기구 “사업장 변경 제한 없애야”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230만 명 시대. 일거리·결혼·공부 등 각자 한국을 찾는 이유도 다양하다. 이중 약 50만 명이 노동자에 속한다. 고용허가를 받은 정식 노동자뿐 아니라 적지 않은 외국인이 소득을 올리기 위해 한국에서 일을 한다. 여기에 미등록 이주민까지 고려한다면 한국은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다문화, 다민족 국가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주민을 위한 처우, 복지 수준은 여전히 과거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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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오늘날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에 따라 단순기능직 단기 체류자격의 정주 금지 원칙에서 출발했다. 쉽게 말해 단순 노동하는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오래 머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는 취업 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기업들의 요구에 부응해 최장 9년8개월까지 재계약해 일할 수 있도록 했다. 특정기한이나 일회성 사업이 아닌 상시적 업무에 한해 일손을 구하지 못할 경우 외국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는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문화에 적응하며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살아도 가족을 초청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한국에서 살기 위해 거주 또는 영주 비자로 변경하고 싶어도 그 방법 또한 없다.
 
송은정 이주노동희망센터 사무국장

송은정 이주노동희망센터 사무국장

최근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숙소환경을 고발하는 사진전을 개최했다. 숙소사진의 제목이 ‘정말 너무합니다’‘화장실이 아니라 뒷간’‘여기서 살라구요?’ 등일 정도로 경악스럽고 충격적이다. 많은 이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에 분노하고 대안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초래한 것은 일부 사용자들의 사악함이 아니다. 정부가 만든 외국인고용 제도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해야만 한다. 경제적 소득을 위해 한국을 찾은 이주노동자는 씻거나 먹을 수 있는 제대로 된 공간이 없어도, 성폭력의 위협을 당해도,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사업장이어도, 사업장을 변경하기가 쉽지 않다.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등 국제기구는 여러 차례 고용허가제 상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규정을 없앨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문제가 될 때마다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는 ‘사유’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하에서 이주노동자는 쉽게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수입을 위해 입국했으니 돈 벌게 해주는 한국에 고마워하고 떠나면 된다는 식이다. 정부는 이주민 정책 공백과 차별적 제도가 만든 녹록지 않은 이주민의 삶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 아주 극단적으로 ‘불쌍’한 상황에 부닥친 이주민들의 사례만 화제가 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정부가 변동하는 국제 경제 상황에 맞게 인력시장을 관리하고 외국인 고용을 감독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 것은 맞다. 이런 분야에서 국가가 광범위한 재량권을 가진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가 이주민에게 입국이나 근로 가능 여부를 허가한다고 해서 해당 노동자가 가진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전 세계적 기승을 부리기 직전 방글라데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길을 다닐 때 철없는 아이들에게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코로나’라고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다. 코로나19에 대해 직접적인 피해 경험이 없었음에도 가만히 혐오 표현을 마주해야 했다. 여러 번 반복해 듣다 보니 심리적 위축은 당연했다. 한국 사회에 사는 이주민들의 일상이 아마 그렇지 않을까. 한국어교실에서 공부하는 네팔 노동자가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그의 딸을 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꿈꿔본다.
 
송은정 이주노동희망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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