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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열심히 배워도 ‘까불지 마’ 무시” “외국인 거칠어 조심해야” 삐딱한 시선 여전

중앙선데이 2021.05.08 00:20 735호 7면 지면보기

[SPECIAL REPORT] 외국인 230만 시대 

최다 외국인 거주지인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의 밤 풍경. 정준희 인턴기자

최다 외국인 거주지인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의 밤 풍경. 정준희 인턴기자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의 한 채소 가게에서 동남아시아계 직원이 가게를 찾은 손님을 향해 외치고 있다. 이국적인 외모가 눈에 띄지만 한국어 실력은 놀랄 만큼 유창하다. 가게를 등지고 마을을 둘러보니 외국어로 쓰인 간판이 즐비하다. 중국어, 러시아어 등 외국어 간판 사이에 한국어 간판이 마치 끼어있는 듯하다. “지난번에 5만6000원 빌려 갔잖아, 빨리 갚아!” 채소 가게 옆 횟집 식당에서는 한국계 중국인(중국 동포) 점주와 손님이 외상값을 두고 실랑이가 한창이다. 시끄러운 매장 음악 소리와 눈부신 간판 빛이 몰려드는 생활용품 할인점은 출입구부터 외국인들로 인산인해다. 저렴하게 제품을 판매하는 덕에 상대적으로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지역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외국인 11% 국내 1위, 안산 르포
104개 국가 8만여 명 모여 살아
‘안 살고 싶은 도시’ 비하 표현도

상인 “대부분 성실하고 심성 착해”
‘우범지역’이란 편견은 잘못된 것

안산시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안산시 통계의 외국인 주민 현황(2021년 3월 기준)을 살펴보면 안산시의 외국인 수는 약 8만1000여 명. 전체 지역 주민(73만7000여 명) 중 11%가 외국인이다. 시·군·구 단위 기준으로 전국 1위다. 출신 국가 수만 104개에 달한다. 한국인까지 하면 105개 나라 사람들이 함께 모여 동고동락하는 지역이다. 다문화 다인종 사람들이 매일 살 부딪히며 살다 보니 이주민과 원주민이 각자 겪는 고충도 적지 않다. 이곳을 생활 터전으로 살아가는 외국인들은 언어 소통의 답답함을 느끼고, 편견과 차별적 시선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지난 3일 취재진이 안산 유통상가 인근에서 행인에게 안산역으로 가는 길을 묻자 “조심해라. 거기 사람들 매우 거칠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유를 묻자 “그곳은 한국땅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외국이랑 다를 바 없다”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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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에 사는 외국인 중에는 단연 근로자 수가 가장 많다. 지역 내 외국인 중 1만8700여 명(23%)이 각종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이곳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부족한 한국어 실력과 한국의 강도 높은 노동 현장 탓에 일터에서 겪는 불평·부당함은 오롯이 이들이 견뎌내야 할 때가 많다. 동남아시아계로 한국에 온 지 2년이 된 쯔안(가명·28)씨는 “근로 계약서로는 농장에서 하루 8시간만 일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매일 10시간씩 일해야 했다”라며 “토요일까지 주 6일씩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일했지만 계약서에 나온 8시간만 일한 것으로 계산해, 한 달 월급은 177만원 정도 받았다” 고 했다. 숙소는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였다. 변변찮은 숙소지만 매달 사용 비용으로 14만원씩 월급에서 공제됐다.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힘들어하던 그는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3주 전 ‘지구인의 정류장’로 옮겨 생활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민간 쉼터이자 인권 단체다. 이곳을 운영하는 김이찬 대표는 “실제 노동시간을 증명할 책임이 전적으로 노동자에게 있다”며 “예를 들어, 출퇴근 시간에 찍은 동영상 등 모든 순간의 객관적 증거가 없으면 노동자의 주장이 인정되지 않는 식이다”고 했다. 어디서나 그렇지만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철저한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안산시 다문화특구에 설치된 표지판에는 세계각국의 방향과 거리가 적혀있다. [중앙포토]

안산시 다문화특구에 설치된 표지판에는 세계각국의 방향과 거리가 적혀있다. [중앙포토]

노동 현장에서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도 이들을 힘들게 하지만 외국인 강력범죄가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이곳 사람들은 혐오와 증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는 안산시를 비디오 게임 ‘GTA’의 무법도시 ‘산 안드레아스’에 빗대 ‘안 산드레아스’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안 살고 싶은 도시’라는 의미다. 외국인 거주자들은 안산시를 향한 혐오와 선입견에 억울함을 호소한다. 할랄푸드 마켓을 운영하는 무하마드 샤하아룸(50)씨는 서툰 한국어 실력 때문에 겪는 차별이 싫어 한국어 공부를 악착같이 했다. 환경미화원 등 여러 가지 일을 해 왔다는 그는 “심지어 나는 귀화해 엄연히 한국 국적을 얻었지만 일하면서 ‘까불지 마’ 같은 거친 언사로 무시당하는 경험을 적지 않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말을 더 잘하게 되면 이런 차별을 덜 받지 않을까 싶어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다지 달라진 건 없었다”며 “한국이 경제적인 면에서는 선진국이 됐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그에 걸맞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안산시에서 10년째 중국어 통번역사로 일하고 있는 김모(50)씨는 “외국인 범죄 뉴스같은 부정적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그 불똥이 이 지역 내 외국인에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원곡동에서 21년째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김미경(52)씨는 “실제 겪어보면 이곳 외국인 거주자들 대부분은 성실하고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며 “강력 범죄자로 그들을 이미지화하는 영화나 극소수의 외국인 범죄 관련 보도만 보고 이곳을 범죄도시처럼 여기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도 했다. 원곡동 다문화안전 경찰센터 관계자는 “안산시가 다른 지역보다 범죄 발생이 특별히 더 자주 발생하는 우범지대라는 일부의 인식은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안산시는 외국인 거주자와 원주민 간 있을 수 있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외국인주민지원본부에서 외환송금센터, 상담지원센터를 통해 외국인 거주자의 생활 안정과 편의를 지원한다. 외국인과 더불어 사는 삶에 익숙지 않은 기성세대나 학생들을 위해 세계문화체험관도 상시 운영 중이다.  
 
이곳에선 중국, 일본, 우즈베키스탄, 나이지리아, 콩고민주공화국, 베트남 선생님 등 다양한 국적의 지도사들이 각국의 문화와 전통을 교육하고 있다. 김하림 세계문화체험관 사업총괄은 “전통악기 연주 등 다양한 각국의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방문한다”며 “외국인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어 희망적이다”라고 말했다.
 
김나윤 기자, 안산=오유진·윤혜인·정준희 인턴기자 jeong.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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